난병 일기(8)
-신경 쓰지 마세요
커다란 원통형의 방문 없는 방이었다. 돌아눕지도 못할 좁다란 치료대가 놓여 있고 천장에서 여러 개의 무슨 렌즈 같은 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옆에는 네모난 검은색 계기판 같은 게 높다랗게 달려 치료대를 향하고 있었다.
남녀 치료사 두 사람이 나를 부축하여 세 개의 계단을 밟고 치료대에 오르게 했다. 앉으면서 신발을 벗고 머리를 안쪽으로 두고 누우라 했다. 무릎 부분을 돋우는 보조대를 받쳐 주면서 발과 다리 고정판을 갖다 대고 끼워주며 치료가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말라 했다.
속옷도 없는 환자복을 아예 벗겨내고 타올로 몸을 덮었다. 환부 거죽에 무슨 물질을 바르며 소변량을 측정한다 했다. 몸 여러 부위를 살피는 듯하더니 준비 과정이 다 끝난 듯 이제 시작하겠다 했다. 움직이면 치료가 실패할 수 있으니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며 다시 당부했다.
눈을 감았다. 무슨 멜로디 같은 음이 계속 흘러나왔다. 휘릭 휘릭 휘파람 같은 소리가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다가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한순간 터지기도 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은 소리뿐이었다. 소리로 치료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같았다. 끝났다고 내려오라 했다. 일어나 신발 신고 내려오는 나를 대기실까지 부축하여 데려다주었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보호자는 한 사람만 들어와서 멀리서 지켜보라 했었다. 따라와 지켜봤던 아들에게 물으니 10여 분쯤 걸렸다 했다.
그 10여 분이 몸을, 앞으로의 삶의 모습을 바꾸어 놓을까. 나중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라도 지금은 내 몸의 무엇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치료 중에도 소리만 들려올 뿐, 다른 감각은 느껴져 오는 것도 없고, 컨디션도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원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양성자 치료란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양성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하여 병 세포를 파괴한다 했다. 몸속을 통과하는 정상 조직에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충분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치료법이라 했다.
그 치료 기기는 약 100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성자의 생성과 전달 과정에 밀리미터 단위의 정밀성을 유지하면서 각 부품이 최적의 조건에서 작동해야 하는데, 온도, 습도 등의 기후 변화에도 민감하게 달라질 수 있다 했다.
나는 꼼짝 않고 누운 채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어도, 그러한 과학의 원리가 그러한 기계를 통하여 내 몸속에 들어와 내 난병 세포를 무찌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무감각 중에 그 원리, 그 기계가 나를 그늘 세계에서 빛의 세상으로 끌어내고 있었을 것도 같다.
그 치료를 아직은 네 번 더 받아야 한다. 그 무감각 속을 네 번 더 누워 있으면 내 난병 세포는 파멸하여 드디어 환부는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이고, 나는 빛의 세상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다가 마침내는 빛 속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부푼 기대를 안고 집으로 가는 차를 달린다. 그 기대에 욕심을 걸지는 않는다. 큰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병 없이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그늘도 빛도 떠올릴 일이 없는 세상에서 고요히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걱정해 주는 주위 사람들이 병 중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내 보호자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아들딸 남매는 물론이고, 그리운 사람들이 내 그리움의 부피보다 더 큰 관심을 보내주곤 한다. 나는 그들에게 잘 치료받고 있다는 걸 웃음으로 말해 준다.
병원에는 ‘오픈 카드’ 제도라는 걸 두고 있다.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으면 치료 후 별도의 수납 절차 없이 바로 병원을 나와도 카드로 치료비를 자동 결제하여 영수증을 메일로 보내주는 제도다. 아들은 제 카드를 내 치료비 수납 카드로 등록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이르렀다.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메일을 열어보고는 섬찟했다. 그 과학, 그 기계가 나에게, 아니 아들에게 엄청난 치료비를 안겼다. 10여 분간의 치료비가 열 손가락을 거의 다 꼽아야 할 수백만 원이었다.
돈보다 귀한 건 사람이란 걸 모르지는 않을 일이고, 누구에게 말해도 ‘그게 문제냐!’고 할 일이지만, 막상 내 앞의 문제가 되고 보니, 내가 너무 비싸게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상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 영수증은 치료비를 내는 아들한테로 가는 게 아니고 나에게로 온다. 아들도 나중에 제 카드 결제 명세를 보면 알 일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오늘의 일을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영수증을 캡처하여 아들의 에스앤에스에 넣어 주었다. 한마디 답이 왔다.
“신경 쓰지 마세요. ㅎㅎ” 아들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 신경 쓰지 않으마. 너희들 걱정시키지 않도록 치료나 잘 받도록 할게. 내 병원 길 안 나서는 게 나도 좋고, 너희들도 즐거운 일 아니겠느냐? 그 첨단 치료기가 나와 너희들을 위해서 생겨났는지도 모르겠구나.ㅎㅎ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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