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일기(6)
-고진감래
대처 병원까지 가기에는 차비 부담이 녹록지 않지만,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관장하고, 금식 상태로 정해준 시각까지 병원에 도착하자면 다른 수단으로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타의보다는 자의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대가라 할까.
병원이 원하는 시각에 도착했다. 딸과 손녀가 바라지 마중을 나왔다. 오늘의 주 치료인 생분해성 물질 주입술 시술을 위해 항생제와 진통제 주사를 먼저 맞으라 했다. 넘치는 환자들 속에서. 차분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살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일이 어디 이뿐일까.
치료는 치료로 이어진다. 오늘 치료는 다음 치료들로 나아갈 전 단계다. 다음의 모의 치료를 거쳐서 본격적인 방사선 양성자 치료로 들어간다 했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치료도 기다려야 하고, 치료 후 나를 맞을 날도 기다려야 한다.
한 시간여를 기다리니 전광판에 내 이름이 떴다. 내 차례가 있다는 것은 곧 내가 살아있다는 게 아닌가. 고대하던 이름을 따라 주사실로 들어가 두 가지 주사를 맞았다. 조금 아플 거라 했지만, 간호사의 친절로 상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사 자리를 가볍게 문지르며 주사실을 나와 방사선종양학과로 갔다. 접수하고 기다렸다. 이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시술실로 들었다. 환자복으로 완전히 갈아입고 치료대에 누우라 했다. 누웠다. 환자복은 의사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누운 채로 의사가 원하는 자세를 갖추고 있으니 치료에 필요한 곳을 열었다. 몸 한 공간을 통해 어디에 무얼 집어넣는 것 같다. 평소에는 닫혀 있던 곳을 강제로 열어 무얼 넣으려니 살이 찢어지는 듯했다. 참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따끔한 느낌이 부위 몇 곳을 찔러 왔다. 아까는 안 하고, 인제 마취를 시키는 거라 했다. 까닭이 있을 거라 여기며 참았다. 이제 참을 일이 없어졌다. 어떤 부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치료대에 다리를 들어 얹고 누워 있기만 하면 된다. 내 감각과 의지는 잠겨 버렸다.
하나에서 열까지 세 번을 헤아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고 일어나라 한 사람은 시술한 의사였다. 조무사가 받쳐주어 일어났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오라 했다. 몸이 기우뚱했다.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옷을 찾아 갈아입었다. 나를 찾은 것 같았다.
내가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치료실 밖에서 보호자와 함께 30분쯤 앉아 있다가 별 이상이 없으면 가도 좋다 했다. 오늘 내 보호자는 딸과 손녀다. 딸은 치료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수습하고, 손녀는 나를 부축하며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다.
먼 외국으로 출장 나가 있는 아들이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려 전화했다. 그 멀리서도 아비 걱정을 떨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시술이 무사히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말고 업무를 잘 수행하고 오라 했다. 그사이에 30분이 흘렀다. 좀 어지럽긴 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것 같다.
점심을 먹자 하고 병원 내 식당으로 갔다. 금식하고 있던 터라 시장기가 느껴져 왔다. 딸과 손녀 셋이서 점심을 먹으며, 이제 정신 차릴 만하니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딸이 절대 안 된다 했다. 갑자기 기운을 잃고 쓰러질 수도 있으니 며칠 간은 조심하라고 간호사가 주의를 시키더라며, 집까지 꼭 택시를 타고 가셔야 한다 했다. 벌써 예약해 놓았단다. 이 보호자가 없었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버스를 탔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호하던 아이들이었지만, 이제 이 아이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 두 남매 내 보호자들이 딴은 성심을 다해 나를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 집에 가서도 오늘은 저녁 운동도 나가지 말고 조용히 쉬시라며 당부했다.
딸이 태워 주는 택시를 타고 집을 향해 출발했다. 무슨 미련에서인지 차에 앉는 내 모습을 핸드폰에 담기도 했다. 잘 가라, 잘 있으라며 서로 손을 흔들었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공연한 것이 나와 힘들게 할 것도 같았다.
살 만큼 살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이렇게 살려고 몸부림해야 하고, 살리려고 골몰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살려는, 살리려는 의식도 없이 본능적으로 모두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겨운 원초 본능이다.
차는 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나갔다. 어떤 곳을 달리다 보니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듯이 쏟아지면서 차창을 들입다 막아버리기도 했다. 차는 속도를 줄였다 늘였다 하며 빗속을 용하게 헤쳐나갔다. 드디어 집이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날이 차츰 개어 갔다.
집에 이르렀을 때는 구름 사이에 푸른 하늘이 드러나면서 맑고 밝고 뜨거운 볕살이 내렸다. 날씨가 무슨 은유 같기도 했다. 나도 보호자들도 오늘 같은 일들을 잘 견뎌내면 서로 눈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이 볕살 같은 날이 오리라 이르는 것도 같았다.
딸이 당부한 대로 늘 하는 해거름 산책 운동도 나가지 않다. 침대에 편안히 누웠다. 고요히 눈을 감았다.♣(2026.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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