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일기(7)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옷을 벗고 큰 타올로 몸을 가리고 CT실 촬영대에 누웠다.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치료 과정이라 했다. 촬영 기사가 방광 주변에 무얼 바르고 한참 살피더니 일어나라 했다. 소변이 너무 많이 차 있다며 안쪽에 눈금이 새겨진 종이컵을 쥐여주었다. 눈금 어디까지 소변 보고는 변기에 쏟고 오라 했다. 옷을 걸치고 화장실로 가서 그렇게 하고 와 다시 누웠다.
눈을 감았다. 움직이지 말라 하고는 몸을 기계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라 했다. 관장이 덜 되어 있어서 약 처방해 놓았다며, 약을 받아 20분 동안 관장하고 다시 오라 했다. 대기실로 나오니 나를 바라지하는 딸이 벌써 알고 병원 약국에 가서 관장약을 받아 왔다. 화장실로 가서 투약하고 나와 변의가 오기를 기다렸다. 20분이 어찌 그리 길던가.
병원의 사전 안내문 따라 아침밥 먹고는 정해진 시각에 관장하여 속을 다 비우고, 두 시간여를 허위어휘 달려 병원으로 왔다. 병원이 정해준 시각에 소변 보고 300cc 물 마시고 기다리고 있으니 간호사가 불렀다. 오른손 한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고 무슨 약을 주사했다. 바늘은 전 과정이 끝날 때까지 꽂고 있어야 한다 했다.
CT실로 들 시각 되어 들었다가 촬영은 못 한 채 변의만을 이리 고대하고 있다. 정한 20분이 지나고 30분, 40분도 넘어섰다. 이 일정이 틀어지면 다음 일도 진행될 수 없다. 또다시 먼 길을 달려와야 할까. 이런 고초가 없다. 아무리 바빠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쓸 수 없다 하듯 모든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다는 것을 이 변의가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50분이 지날 무렵 기미가 왔다. 얼른 화장실로 가서 죽을 용을 썼다. 이주 조금이 그렇게 애를 먹인다. 다시 촬영대에 누웠다. 관장 상태도 소변량도 이제 괜찮은 것 같다 했다. 죽은 듯 눈을 감았다. 내 몸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시간이 흘러갔다. 몸에다 무얼 대고 무슨 금을 죽죽 긋는 것 같았다.
테이프로 할까, 문신으로 할까 물었다. 방사선 치료 지점을 몸에 표시해야 하는데 팬으로 점을 찍고 지워지지 않게 테이프로 덮거나, 영구히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겨야 한다 했다. 무려 15곳이라 했다. 테이프로 덮어놓아도 잘 관리하면 유지될 수도 있다 했다. 문득 ‘주홍글씨’가 떠올랐다. 그 문신 보며 평생 이 난병을 상기해야 할까. 테이프로 해달라 했다.
예정보다 늦긴 했지만, 이제 한 절차가 끝났다. 늦은 것도 절차를 갖추기 위해서임은 물론이다. 절차는 또 절차를 부른다. 다음 절차는 MRI 촬영이다. 이 또한 CT와 함께 방사선 치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아래위 옷을 완전히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라며 경의실로 안내해 주었다.
병원에 당도하자마자 간호사가 MRI 촬영을 위한 동의서를 받았었다. 전자 기기로 내용을 보여주고 서명하라 했다. 중대한 문제가 걸려있는 것 같았지만, 병원의 절차를 따르자면 내용이 어떻든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어느 방으로 안내받아 방광의 소변량을 측정했다. 또 비우고 오라는 만큼 비우고 왔다. 혈관에 뭘 주입하더니 MRI실로 가라 했다.
MRI실에 누웠다. 자기장과 고주파를 이용한 검사라며 30분 정도 걸린다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눈을 감았다. 허리를 어떻게 하고, 다리를 어떻게 두고, 피사 자세를 잡는 데 한참 걸렸다. 방사선 치료 자세와 관계가 있다 했다. 속이 조금 화끈거릴 거라며 조영제를 주사한다 했다. 뱃속으로 뜨끈한 국물이 스미고 있는 듯했다. 몸이 어디로 미끄러져 드는 것 같았다.
깨지고 터지고 부서지는 듯한 굉음들이 3, 4분마다 바뀌면서 잇달아 터져 나왔다. 귀마개를 해주었지만,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MRI 기계가 인체 내부 영상 신호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 하는데, 이해가 쉽지 않다. 소리 사이에 호흡 조절이며 체위를 어떻게 하라는 안내가 흘러나오다가 괜찮으냐고 묻는 말로 끝냈다.
이 과정들은 CT와 MRI 두 영상을 합성하여 어느 정도 깊이로 병소의 정확한 어떤 모양에 양성자선을 쏠 3차원 입체 지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했다. 어떻게 하든 잘 낫게만 해주기를 바랄 뿐, 나는 그저 그 절차를 따르는 수밖에 없다. 두 가지 과정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한동안 방향 감각이 흐려지기도 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의 모든 절차를 다 마치고 집을 향해 달려간다. 다음 달부터 진행될 방사선 양성자 치료 일정을 안고 달린다. 오늘 내 몸을 둘렀던 절차들은 그 치료 절차로 달려가기 위한 것들이었다. 돌아 보인다. 내 삶은 절차를 잘 챙기며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오늘 내가 겪어야 했던 절차와 순서만큼 잘 챙기면서 살아왔던가.
집에 이르러 내 벗은 몸을 보니 찍힌 점을 덮은 테이프 조각이 곳곳에 붙어 있다. 저 테이프를 내 몸에서 떼어낼 수 있을 때, 내 병과도 작별할 수 있을까. 그런 절차와 순서가 내게로 올까. ♣(202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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