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이경종 선생의 목소리

이청산 2026. 1. 21. 14:55

이경종 선생의 목소리

 

  이경종 선생은 울릉도 북쪽 천부초등학교 교사였다. 지금부터 50년 전 1976년 1월 17일 천부항에서 배가 난파되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생은 재빠르게 목판을 잡고 뭍을 향하려던 순간, 제자 둘이 탈진 상태로 허우적대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몸을 돌려 가까스로 두 아이를 끌어당겨 함께 파도를 헤치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파도 폭발을 이기지 못해 모두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 선생은 35세, 교직의 창창한 꿈을 그리던 청년 교사 시절이었다.

  그 후 그의 아름다운 인간애를 추앙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과 훈장이 수여되고 순직비가 세워졌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빗돌 앞에 제수를 차리고 꽃을 바치며 2백5십만 년 전 화산섬 울릉도를 흘러내린 용암보다 더 뜨거웠던 그 열정 어린 사람 사랑을 기리고 새겼다.

  내가 선생의 순직비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던 것은 두 번째로 울릉도를 삶의 터로 삼아 울릉종고에 재직하던 때인 2008년 1월 17일, 32주기 추모식에서였다. 눈이 빗돌을 덮고 있었다. 그 위기 앞에서 나는 그런 의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를 돌아보니, 선생의 그 숭고한 정신이 더욱 우러러졌다.

  그때 제자를 안고 있는 형상을 한 추모 빗돌이 지반 침하로 인해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기울다 보면 선생의 품에 안긴 아이들이 추락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선생의 꽃다운 넋이 망각의 늪 속으로 매몰되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가 들어 마음을 아려하기도 했었다.  

  섬사람들은 선생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동안 이전과 재정비 논의를 해오다가 드디어 2020년 12월, 45주기를 앞두고 추모비와 주변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더욱 튼튼하게 조성한 기단 위에 추모 빗돌이 안전하고 안락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 선생은 제자들을 더 사랑스럽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선생의 정신을 더 높이 승화시켜 오래도록 모든 스승의 귀감이 될 수 있게 해보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마침내 울릉 출신인 김진규 39대 울릉교육청 교육장이 울릉교육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한 교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경종 스승상」 제정 기틀을 마련하고. 뒤이어 2025년 3월 1일 자로 부임한 40대 이동신 교육장이 실행에 옮기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2026년 1월 17일 선생의 50주기 며칠 전, 이 교육장이 나에게 전화했다. 50주기를 기념한 첫 시상에 다른 두 분과 함께 내가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당혹스럽고 난감했다.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것도 그 섬을 떠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사람에게 그런 상을 주려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한 일이 제대로 있어야 상을 받아도 떳떳할 것이고, 자랑삼을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내 섬 살이를 돌이켜 보면, 몸 붙이고 있는 섬을 사랑하고, 삶의 터전인 그곳 학교를 사랑하고, 오직 내 할 일인 학교 아이들을 사랑하려 애썼을 뿐이다. 교직을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섬 사랑만으로 오롯이 책 한 권 낸 일이 있고, 섬에 예술 문화적 풍토를 조성해 보자 싶어 섬 최초로 문학회를 만들어 섬사람들 글을 모은 책 발간을 주선하기도 했다. 섬의 수려한 풍광 속을 사는 사람이면, 그런 예술적 정서도 없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런 일이라면 학교 교육 외적인 일 아닌가.

  어찌하였든, 섬의 교육과 문화 발전에 이바지해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며 1월 17일 추모식 및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 했다. 그런 상을 받는 것도 송구한데, 다시 한번 송구하다 했다. 바다를 건널 자신이 없었다. 섬 살이를 할 때만 해도 한창때였던지 섬 사랑과 함께 즐겁게 바다를 오갔는데, 세월 탓인지 이제는 몸이 따라 주지를 않을 것 같았다. 교육장께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이경종 선생의 당시 모습을 다시 새겨본다. 폭발하고 부서지기를 거듭한 뒤의 바다에는 깨어진 배 조각들만 떠다닐 뿐이었다. 제자를 끌어안고 사나운 파도와 싸우던 선생의 열정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선생의 시신은 닷새 뒤인 22일 천부항 부근 천년포 해안에서 인양되었다. 시신은 바닷물에 침윤되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비보를 받고 뭍에서 달려온 부인에 의해 남보다 큰 발과 다리의 점으로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동문학가 김진태 선생이 지은 비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높새바람이 분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다. 우는 바람 고요히 귀를 기울이면 애끊는 흐느낌이 들려 온다. /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어린 양들의 목숨을 구하려던 갸륵한 이경종 님의 얼굴이다. 사랑하는 어린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던 스승의 목소리다.……”

 이제 나는 그 얼굴, 그 목소리를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에게 주는 상은 그간의 내 행적에 주는 상이 아니라, 그 모습을 내 가슴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라고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목소리가 쟁쟁히 울려 오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어찌하며 살아야 할까. ♣(202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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