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고맙습니다

이청산 2026. 1. 3. 16:04

고맙습니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제로-”

  “공모가 55,000 현재가 61,600” 팡파르가 울리면서 거래소의 커다란 스크린에 숫자가 큼지막하게 떴다. 장내는 우렁찬 박수와 함성으로 터져 올랐다.

  이李 대표 회사가 비로소 주식을 상장上場하는 날이다. 장내에는 주식 상장에 관계된 많은 인사며 관계자들이 모여 있고, 중앙에는 식장이 스텐딩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식전 행사로 이 대표가 증권회사 대표들에게 제품 설명해 나갔다. 세계 최초의 상·하·좌·우 90도 다관절 복강경 수술 기구의 성능과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듣는 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 깊게 듣고 보고 있었다.

  식이 시작되면서 내빈 소개에 이어 회사와 제품을 안내하는 홍보 영상이 상영되고, 이어서 증권회사 대표와 이 대표가 상장 증서에 서명하고, 서로 교환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이 대표는 누가 나와 갈아입힌 붉은색 재킷 차림을 한 채 장내 한쪽에 놓여 있는 큰 북 앞으로 올랐다. 용호가 힘차게 포효하는 무늬가 새겨진 북 앞에 서서 북채를 들어 힘차게 내쳤다. 장내는 또 한 번 박수와 함성의 도가니를 이루었다.

  정면 식대로 와서, 회사와 증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슨 버튼을 누르자 카운트 다운 숫자와 함께 폭죽이 터지듯 하는 팡파르가 울려면서 주가가 떠올랐다. 이 순간을 바라보는 이 대표의 감회는 어떠했을까. 보고 있는 나도 온몸에 전율이 돋으면서 누선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사회자의 대표 기념 연설 소개와 함께 이 대표가 객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것이 저희의 목표인데요. 세상과 시장의 법칙을 잘 꿰뚫고 이해를 해서 거기에 맞게 살아가면 성공을 거둔다고 믿었습니다. ……큰 성공이라는 것은 재무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저는 선진화된 의료 기술을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만들겠다는 거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2011년 창사 이래 14년 동안 온갖 어려움을 무릎 쓰고 ‘로컬 맥시마(Local Maxima·국소적 최적점)’를 넘고 넘어서, 언젠가 마주할 ‘그랜드 맥시마(Grand Maxima)’인 에베레스트산을 향해 줄기차게 노력해 왔다면서 감회에 젖기도 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기술 혁신을 위해 정진을 계속해 왔다며,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혁신이라 믿으며 타제품과의 초격차 성능과 함께 원가 절감을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세상에 없는 최초의 유일무이한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 초 마이크로 베어링을 비롯한 미세한 부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구안하고 제작하여 원하는 걸 만들어 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무려 200건이 넘는 특허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각광받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가 제 일의 시작이라고도 했다.

  이런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일수록 내 모습은 작아져만 보였다. 아들이 불러서 참석은 했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해준 일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감격해 하는 것조차 무람한 일이 될 것 같았다.

  제가 자랄 때 내가 호기심을 갖게 해주었다 싶은 게 하나 있다면, 지금부터 한 사십 년 전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될 때, 나도 잘 모르는 걸 구해서 안겨준 일이 기억 난다. 그때 저는 초등 저학년 시절이었는데, 흥미를 느끼면서 재미있어했다. 그게 계기가 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때부터 과학과 수학에 관심을 가지고 고등학교와 대학을 과학 기술 계통으로 나아갔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의학에 관심을 가지더니 대학원은 제가 전공한 전자공학에 의학을 접목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갔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학위를 받고 어느 대학교에 가서 연구 교수 생활을 얼마 동안 하더니, 제가 조그만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그사이에 무슨 무슨 상을 받기도 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저 딴은 고생도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러한 일을 해 오는 동안 나는 저에게 무어라 해준 말도, 보태어 준 힘도 없었다. 일찍부터 집을 떠나 있었고, 학비조차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은 곳을 다녀 나에게는 별 부담도 지우지 않았다. 저의 공부며 일이 내 평생을 두고 살아온 분야와는 전혀 달라 나는 잘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식구끼리도 아들은 돌연변이 같다 했다.

  행사 과정에서 아들이 나를 여러 사람에게 소개할 때, 나는 그저 “고맙습니다.”라고만 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아들의 일을 주변에서 잘 도와주어 고맙고, 일을 이루게 해준 세상이 고맙고, 묵묵히 제 일을 잘해 낸 아들에게도 고맙다는 뜻을 담은 말이었다.

  제 말마따나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른다. 저의 연구로 출시할 제품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 했다. 모든 일을 잘 이루어내기만을 빌 뿐,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제 포부대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술 혁신’을 빛나게 이루어낼 수 있기를 빌며, 조용히 행사장을 나섰다. 하늘이 부시게 푸르러 보였다.

  하늘을 우러르며 다시 말했다. “고맙습니다.”♣(2025.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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