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기다림에 대하여(8)

이청산 2025. 12. 21. 14:20

기다림에 대하여(8)

 

  시골 버스는 승강장에 도착하는 시각이 제 도착 시각이고, 출발하는 시각이 제 출발 시각이다. 승강장마다 행선지와 출발 시각을 안내하는 표지가 붙어있지만,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다. 승객들은 곁눈질로 슬쩍 한번 보면 된다.

  지켜지지도 않을, 이런 쓸모없는 것을 왜 붙여 놓았을까. 붙여 놓았으면 지켜야 할 게 아닌가. 시골살이가 참 힘들구나, 하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비하면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려 타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버스 노선 번호별로 경유지, 목적지가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을 뿐만아니라, 몇 분 후에는 차가 도착할 것이며, 지금은 어디쯤 오고 있다는 전광판 안내에 이어, 이제는 전 승강장을 통과하여 곧 도착할 것이라는 여성 목소리 안내 방송이 나긋하게 흘러나온다.

  차별이 이리 심한 곳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무언가 손해를 보고 있는 듯도 하고, 문명한 곳에서 살지 못하는 비문명의 처지를 비감하게 느낄 수도 있다. 주민을 위한 복지와 편리를 도모할 줄 모른다며 행정기관을 원망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시골에 오래 살아보지 않은 탓이거나, 늙어보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시골에 오래 산 사람, 나이 지긋이 든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려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출발하면 비로소 가는 줄 안다.

시골에는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중에도 칠팔십 대가 많다. 노인의 나이가 그냥 드는 게 아니다. 한두 가지 병은 다 안고 늙어간다. 그중에서도 허리, 무릎의 관절을 많이 앓고 있다. 나도 그렇다. 노화 현상인 걸 어쩌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운전을 안 하거나 못 한다. 성치도 않은 몸을 끌고 버스를 오르내리려니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없다. 한 발을 올려놓고 손잡이 힘껏 잡아당기면서 천천히 올라야 하고, 내릴 때는 한 발씩 조심조심 내려야 한다.

  시골 버스 기사는 인내심이 없으면 안 된다. 승객이 몸을 완전히 올려 자리에 안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타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내심은 더 강해야 한다. 내리려 할 때는 차가 설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 하고, 차체에서 몸이 완전히 떨어진 후에 차를 움직여야 한다.

  배차 시간이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안전이 제일 아닌가. 급정거 시 방어해 줄 앞자리 등받이가 없는 맨 앞자리는 승객이 앉지 못하게 종이상자라도 묶어놓아야 한다. 요철이 심한 길일수록 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노인은 버틸 힘이 약하다.

  차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안다. 시각을 비교적 잘 맞춘다 싶게 도착하면 빈 차거나 한두 사람이 탔을 뿐이다. 차가 제 도착 시각보다 늦을수록 승객이 많을 거라는 걸 짐작한다. 장날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2·7장, 3·8장을 곧잘 떠 올린다.

  어떤 날은 앞서 와야 할 차가 뒤차보다 더 늦게 승강장에 도착하는 수도 있다. 그 앞차에는 사람이 많이 타고, 뒤차는 승객이 별로 없는 탓이다. 거쳐 오는 곳이 달라 승강장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을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가 일찍 오든 좀 늦게 오든 말없이 탄다. 어디 대처 볼일이 있어 역이나 터미널로 가서 그곳 원행 차의 출발 시각을 맞추려 하면, 길을 좀 더 일찍 나서 한 차례 앞 차를 기다려 타야 한다. 기다리는 차가 언제 와 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다 차가 빨리 좀 움직여 역이나 터미널에 이르러 대처 차 출발을 ‘쓸데없이’ 오래 기다려야 할지라도 그 쓸데없는 시간을 아깝다 할 수 없다. 뒤뚱거리며 타고 내리는 내 몸을 말없이 기다리며 태워준 기사가 얼마나 고마운가.

  도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오는 사람이 약봉지를 들고 차를 느릿느릿 타니, 젊은 버스 기사가 빨리 타지 않는다고 버럭 소리 지르더란다. 승강장 방송 시각에 쫓긴 탓일까, 인내심이 부족한 탓일까.

  시골 사람들은 기다린다. 타고 갈 차를 기다리고, 타는 사람이 느릿하게라도 다 오를 때를 기다리고,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누구도 성급해 하지 않는다. 기사는 더욱 마찬가지다. 저 관절염 환자들이 잘 타고 잘 내리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도 그 승객 중의 한 사람이다.

  기다림의 지루함과 초조함은 다른 세상 이야기다. 시골 버스 승강장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따뜻하다. 그 속에는 배려가 있고, 인간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속의 시간들은 오직 그런 것들을 위해 이바지해 준다.

  오늘도 나는 승강장 벤치에 앉아 그 따뜻한 시간을 누린다. 이 차를 타고 달리면 내 즐거운 벗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기다림을 향해 달려오는 이 따뜻한 기다림, 언제 올지 몰라도 그 차 오면 내 뒤뚱거리는 몸은 즐거이 오를 것이다.

  내 시외버스 터미널 차는 얼마를 기다려 타도 좋다.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5. 12. 14)

 

※글 속의 삽화는 AI가 그려준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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