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지금 이 순간만을

이청산 2024. 5. 12. 12:03

지금 이 순간만을

 

  어느 문학지에서 한 시인과 김소월 시인의 가상 인터뷰를 읽었다. 시인의 물음에 대한 답변 중에 소월 시인은 ‘우리는 대개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만 하다가 인생을 마치는 게 아닐까.’ 싶다며 ‘생과 사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소월이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나올 만한 답변을 상상하며 건넨 질문의 답을 적어본 것이지만, 마치 내 삶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아 쉬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특히, ‘지금 이 순간만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동공이 굳어졌다.

  이 순간만을 산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과거와 미래에 너무 많이 매여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나이가 이슥해진 탓인지 떠오르는 지난 일들이 많다.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중년 시절. 지금의 황혼기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문득문득 돌아 보이곤 한다.

  지금에서 먼 지난 시절보다는 가까운 때의 일이 더 뚜렷이 떠오르는 건 물론이지만, 아득한 옛일 중에서도 뇌리에 깊고 또렷하게 박혀 있는 것도 없지 않다. 다른 이도 다 그럴까. 좋은 기억보다는 잊고 싶고.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돌아볼수록 내 살아온 삶이란 실수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창피한 일, 그로 인하여 남에게 손가락질받고, 비소도 당했을 수도 있었을 걸 생각하니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중에는 억울한 부끄럼도 없지 않은 것 같지만.

  딴은 최선의 길이라 여긴 것이 좀 힘들거나 몹시 험난한 길이기도 했다. 뜻밖에 당한 치욕과 불행에 전율과 비통을 안아야 했던 일도 떠오르는 게 많다. 내가 잘하고,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송구한 일도 적지 않게 생각난다.

  그 반면에 기쁜 일, 즐거운 일, 보람된 일은 열 손가락을 다 채우지도 못할 정도로 한미한 것 같다. 내가 그토록 모자라고 못난 사람이었단 말인가. 누가 날 보고 참 못나고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 해도 별 대척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석양의 노을빛을 벗 삼고 있는 지금에까지 이리 살아왔다면 남은 삶인들 얼마나 곱게 살 수 있을까. 잘 살래야 그 시간이 별로 많지도 않고, 썩 잘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할수록 민연한 비감만 안겨 올 뿐이다.

  지금 나는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외떨어져 있는 것 같다. 슬하가 있다 하나 모두 제 삶들을 건사하면서 품 안을 떠난 지 오래다. 어쩌다 외기러기 처지가 되어 혼자만 날아야 하는 하늘이 너무 멀고도 험하다. 얼마 남지 않은 생애에 염려가 없지 아니하다.

  몸이 튼실한 것도 아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은 앓이에 들었다. 나라 기관에서 보내주는 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회복해 가고 있다. 움직임은 겨우 되찾을 수 있을지라도 전 같지는 않을 것 같다. 도와주는 분의 성심이 고마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홀로 지내다가 더 큰 앓이라도 당하게 되면 일이 어찌 될까. 기우일지 모르지만, 혼자 심히 앓다가 남몰래 숨줄이라도 놓아버리게 되면, 그래서 몇 날 며칠이 흐르고 나면 잠자리에 하얀 모골로만 남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참상이다.

  돌아보아도 내다보아도 밝고 따뜻한 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소월 시 한 구절이 속에서 굼실거린다.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초혼」)” ‘그대’는 여러 가지로 새겨볼 수 있겠다.

  그렇구나. 소월도 그래서 ‘이 순간만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지도 모르겠다. 소월이 아내에게 한 마지막 말이 “여보, 세상은 살기가 힘든 것 같구려,”라 했다지 않은가. 문득 ‘미래를 원하지도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우울해하지도 않는’ 사람이 ’평안한 사람‘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려 오는 듯하다.

  미래를 원하지 않고 과거를 우울해하지 않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순간만을 사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순간순간을 온기와 화기로 살다 보면 따뜻한 과거가 되고, 밝은 미래가 되지 않으랴.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이 순간들에 즐겁고 따뜻한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수필 가족들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참 명랑한 순간들을 선사하고 있다. 수필이란 삶의 진솔한 고백이 아니던가. 그 고백을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내 온전하지 못한 심신을 온전히 할 수 있도록 지성을 다해주는 분의 헌신과 성심은 나에게 가득한 화기로 다가온다. 그 성심을 내 마음의 불씨로 삼아 나도 남을 향해 피워낼 수 있다면 그 순간은 또 얼마나 따뜻할까.

  이런 글이라도 쓰면서 맺힌 정과 뜻을 풀어보기도 하는 순간은 늘 내 삶의 의미를 청량하게 해주고 있다. 글 쓰는 일은 무언가를 새로 짓는 즐거움도 주지만, 찌든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살뜰한 수세미도 되지 않는가.

  순간순간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남은 삶도 살 만하지 않으랴.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함께 진실을 나눌 수필 가족의 시간이 기다려진다. 아침이면 적적한 문을 열고 들어설 성심의 손길이 그리워진다. 글거리를 찾아가는 걸음이 아늑해진다.

  그 순간들을 위하여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삶을 바라며-.♣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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