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어머니 제삿날

이청산 2024. 6. 9. 15:55

어머니 제삿날

 

  설날, 형님이 의논을 좀 하자며 어렵게 운을 뗀다. 나이 자꾸 더해가다 보니 기력들이 전 같지 않아 형수 혼잣손으로 제상을 차리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어머니 제사를 아버지 제사와 합치고, 설은 간소히 쇠고, 추석 차례는 성묘 겸해서 산소에서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속이 아릿하게 저며오는 듯했지만,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형님 내외 모두 여든을 훨씬 넘어 구순을 바라보고 있는 데다가 일손도 마땅치 않은 처지고, 나도 멀리 떨어져 살아 도움이 되지 못할 지경이어서 묵묵히 들으면서 가는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제수를 진설한 제상 앞에서 강신례에 이어 헌작하며 형님은 나에게 글을 하나 읽으라며 주었다. 아들딸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에 이어 ‘세상의 변화에 어려움이 많아 제사를 함께 모시고자 하오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사’ 하는 말씀을 부모님께 사뢰는 내용이었다.

  내가 독축하듯 읽어 나가자 형님은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지듯 속 깊은 울음을 솟구쳐냈다. 나도 목이 메고 말았다. 불효자로 흘리는 회한의 눈물일까, 못난 자식으로 자아내는 무렴의 눈물일까. 설날 제상 앞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어머니 제삿날이 돌아왔다. 아버지와 합사하기로 했으니 형님댁에서는 어머니께 추모의 정은 드릴지언정 제사는 모시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나는 혼잣몸이 된 터에다 질고 중이라 무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립고, 곁을 떠난 사람이 아리게 떠올랐다.

  마음속 그리운 정만으로 제삿날을 보내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하루 중 잠시나마 나를 도와주고 있는 분이 있어 그분의 손을 좀 빌리기로 했다. 홀로 치병하기 어렵다고 건강관리기관에서 보내준 분이다.

  사정을 말하고, 제사를 모시려는 게 아니라 미성으로나마 추모의 정을 드리고 싶다 하며 전 조금만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기꺼이 해주겠다고 했다. 출타했다가 돌아와 보니 나물 전 몇 가지에,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대추, 밤, 곶감을 몇 알씩 갖추어 놓고 돌아갔다.

나중에 들으니, 마침 자기 집에 있는 것 조금 가져와 준비해 놓았다 했다. 치병에 도움을 주는 분이 내 심정까지도 치유해 주려는 것 같았다. 이래저래 민망하고 고마운 마음에 이는 회오와 감동이 눈자위를 뜨겁게 했다.

  어머니 앞에 앉았다. 지방 대신 영정을 띄운 노트북을 상 앞머리에 앉혔다. 그 앞에 잔을 놓고 고맙게 마련해준 실과와 전을 차렸다. 의식은 갖출 수 없어도 헌작 배례는 드리고 싶어 잔 올리고 절을 드리는데, 어머니의 지난 생애가 파노라마로 머릿속을 아리게 지나간다.

  신행 날 바로 집을 떠나 일본이며 만주며 이국땅을 전전하는 소년 신랑을 애태워 기다리며 층층시하를 살아야 했던 소녀 새댁의 속눈물 신접살이, 해방 공간의 혼란과 동족상잔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신 은신과 피란으로 겪어야 했던 험악한 시대적 고초, 아들 하나 잃고 마흔에 얻은 작은아들을 또 잃을세라 금이야 옥이야 학교를 들 때까지도 등에서 떼지 못했던 애절한 모정, 혁명 시절, 큰아들을 군대 보내고 엄동설한에도 하루도 거름 없이 얼굴 다 트도록 찬물로 세수하고 정화수 앞에서 아들 무사를 빌고 빌던 간구 치성, 자식 학업을 위해 무작정 도시로 뛰어든 아버지와 함께 온갖 간난을 이 악물며 싸안아야 했던 말할 수 없이 신고한 살림살이…….

  자리보전을 하시면서도 고향 대통령을 좋아했던 아버지께서는 그 대통령 시해弑害 이틀 넘긴 새벽, 벽지 근무 중인 작은아들이 달려오자마자 힘들게 잡고 있던 숨줄을 놓으셨다. 그 후, 어머니는 17년을 어렵게 간고해 오시던 중에 이 세상 막바지에서 수족 마비되고 언어 끊긴 난병을 한 해나 앓으시다가 세상을 바꾸셨다. 돌아볼수록 어머니의 생애는 고초와 고난으로만 점철되어 온 것 같아 명치가 따갑게 저며온다.

  가신 뒤에도 평안 세월 누리지 못하고, 제상조차 따로 받으실 처지가 못 된 것이 못내 송구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더욱이 지금 내가 온전치 못한 홀몸으로 다른 이 도움을 받아가며 지내고 있는 처지를 아신다면 또 얼마나 상심이 크실까.

  눈앞이 어리어 영정조차 바로 볼 수 없지만, 부질없는 눈물이다. 이 또한 어머니 마음을 아리게 할 것임에야 눈물 흘리기도 면구하여 눈두덩 지그시 찍어 누른다.

  제삿날 아닌 이 기일에, 이제부터라도 어머니 속을 조금이라 편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명치에 깊이 새기며 무거운 몸을 추스른다. 내 한 몸 온전히 건사하여 큰 탈 없이 사는 것 말고 어머니가 바라시는 일이 또 있을까. 영정을 거두어 모시며 다시 한번 절 올린다.

  일기장을 펼쳐, 그리움을 담아 올린 제상 아닌 제상을 적고, 내일 아침 가뿐하게 일어나 하늘을 향해 가슴 환히 열고, 몸 가벼운 체조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 적어본다. 지극 자정 기리며, 사는 날까지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하루하루를 엮어가리라고도 적는다. ♣(202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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