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

이청산 2022. 12. 12. 13:42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

 

  나뭇잎이 푸르고 붉었던 열정의 계절을 보내고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고 있는 늦가을 어느 날 저물녘, 문학상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글과 더불어 살아온 평생에 ‘나도 이런 상 한번 받아 보고 싶다’라는 선망이 왜 없었을까만, 막상 그 일이 내 앞에 오고 보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주저로운 느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지금 한창 의기롭게 글을 빚고 있는 젊은 문학인들도 많을 텐데, 의기와 열정의 시절을 다 떨쳐 보내고, 조용히 살 거라며 한촌 산곡에 깃들어 살고 있는 내가 껴안는 빛나는 상패와 근엄한 상장이 몸에 맞지 않은 옷 같지나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오늘 수상 대상이 된 내 책이 첫 책을 낸 지 꼭 이십 년 만에 우여곡절과 더불어 낸 것이라, 그에 대한 소곳한 애착도 없지는 않았다.

  백여 명의 문학인들이 모인 시상식장에 섰다. 송년문학축제 자리다. 한 해 동안 문협이 해온 일들을 오늘 다 모아 자축하자는 회장 인사와 함께 심사위원장의 심사 경과보고에 이어 시상이 진행되었다. 심사위원장이 회장을 대신해 주는 상패와 상장, 상금 증서를 받았다. 상 명칭과 내 이름이 적인 장방체 상패는 한 손으로 들기가 쉽지 않을 만큼 무거웠다. 상의 무게를 말하는 것일까, 상을 아주 무겁게 생각하고 더욱 좋은 글을 쓰라는 채근일까. 객석의 박수 소리를 타고 몇 축하객이 뛰쳐나와 축하의 말과 함께 꽃바구니며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수상 소감을 발표하라며 마이크를 건넨다. 책은 자기를 위해 내는 건지, 남을 위해 내는 건지, 아니면 무엇을 위해 내는 건지에 관한 스스로에 대한 물음으로 20년을 보냈다 했다. 자기 희열을 위해 내자니 힘이 너무 들고, 남을 생각하며 내자니 남, 그 독자가 얼마나 감싸 안아줄지 알 수 없고, 아니면 우리 문학사에 단 한마디의 역사로라도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쉽사리 책 낼 용기를 얻을 수 없었다 했다.

  그러함에도 무슨 천형天刑의 고질痼疾인지 글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어 꾸역꾸역 써나가다 보니 수백 편의 글이 쌓이게 되었다. 산중 삶으로 제2막의 삶을 엮고 있은 지 십여 년 세월에만 해도 삼백여 편이 쌓였다. 그 무게에 눌려 스스로 압사할 것만 같은 위기감(?)에 전율이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 속을 살고 있었다 했다.

  그러던 중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예술인 인증을 받고 그와 더불어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어 만용을 부려 짐을 좀 부려놓은 것이 여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했다. 황혼 녘 생애에 거두는 소담한 열매로 삼고 싶다 했다. 객석의 박수 소리가 앞에 놓인 꽃다발을 에워쌌다.

  실로 그랬다. 나에게 글이라는 게, 문학이라는 게 뭔지 떼놓고는 살 수가 없었다. 글을 안 쓰거나 못 쓰고 있을 때 느끼는 불안감보다 글을 쓰면서 겪어야 하는 노역이며 고뇌가 차라리 낫고 쉬웠다. 가수는 안 해도 노래는 안 부르고 살 수 없었다는 어느 가수의 고백이며, 스스로 병이라 한 이규보李奎報의 「시벽詩癖」이 상기되기도 했다.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 준 문협 회장님과 회원들, 우리 문학사의 말석에나마 이름을 얹을 수 있도록 눈여겨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하고, 더욱 익은 고뇌를 통해 문학의 발전을 위한 잘 삭은 거름이 되기를 애쓰는 일로 여력과 여생을 다하겠다며 소감 인사를 맺었다. 시상식은 작가상, 작품상, 신인상으로 이어졌다. 박수와 꽃다발이 어우러져 나갔다.

  수상자와 하객들이 어우러져 오늘의 기쁘고 감사한 일들을 기억 속에 오래 남기리라며 카메라 앞에 섰다. 나도 고마운 하객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서서 미소를 머금었다. 오늘의 미소며 축언祝言들을 속 깊이 다져 넣었다. 나의 영혼과 글 속으로 녹아들어 정갈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문장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쟁였다.

  시상의 모든 절차며 축제가 끝났다. 덕담 인사들을 다시 나누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책을 못 낸 빈자리가 오늘 조금 메워진 듯한 위안감이며 모든 축언들을 곱게 싸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상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상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잠시 고뇌했다. 소모적인 일에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장기를 나누어주어 또 다른 생명이 되게 하는 일을 떠올렸다. 무언가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일에 쓰고 싶었다. 그 마음을 정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을 잘라 내가 창립한 수필문학회의 기금으로 보냈다. 몇 년 전 내가 받은 조그만 상의 상금을 종자 기금으로 하여 만든 문학회다. 더욱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며 작은 거름이나마 주고 싶었다. 반은 아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좌에 넣어 주었다. 미소할까.

  돌이켜 생각하니 문학회나 아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모두 나를 위한 일인 것 같다. 문학회도, 아내도 모두 나에게 거름을 주고 열매를 맺게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내 통장에 자리 잡기 전에 정겨운 손을 흔들며 얼른 다 떠나보냈다.

  글을 쓰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는다. 창밖 서녘 하늘이 곱게 물들고 있다. 채운 한 자락이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가 되어 내 품속으로 든다. 연간으로 내는 문학회 회지 출판기념회가 곧 열릴 것이라 한다. 문학회 회지도, 아내 미소도 내 글 밭의 거름이 되어 내 글 안으로 다시 들 것이다.

  나는, 내 글은 또 누구를, 무엇을 위한 거름이 되고 열매가 될 수 있을까. ♣(202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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