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의 밥벌이

이청산 2022. 11. 23. 15:52

나무의 밥벌이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을 다채로이 수놓던 나뭇잎들이 지고 있다. 어떤 나무는 벌써 드러낸 맨살로 하늘을 바라고 있다. 떨어지는 잎의 몸짓이 유장하다. 마치 일꾼이 이제는 할 일을 다 했노라며 가벼이 손을 털고 일터를 나서는 모습 같다.

  가지도 한결 가볍다. 지난 철 동안 우린 열심히 살았다. 나는 물을 대어주고 너는 양식을 마련하여 먹거리를 만들고 하면서 알콩달콩 잘 지냈구나. 새 철이 오면 우리 다시 만나 또 한 번 아기자기 지내보자꾸나. 흔드는 가지의 손길이 정겹다.

  가지와 잎의 정담이 귓전에 어른거린다. 저들은 결코 헤어지는 게 아니다. 어디에 있으나 한 몸이기 때문이다. 주어진 철들을 저마다의 일들로 열심히 살다가 한철 편안히 휴가에 든다. 그 휴가에서 돌아오면 다시 다시 한 몸 되어 즐거이 삶의 일로 들 것이다.

  저들은 애초부터 한 몸으로 세상에 왔다. 원형질의 알갱이 속에는 세상의 삶을 여는 데 필요한 것들이 한 덩어리로 어우러져 있다. 물론 모체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제 그것으로 삶을 이루어내는 일은 순전히 저의 몫이다.

  흙을 자궁 삼아 영양소가 될 만한 주위의 것들을 부지런히 섭취하며 제 하늘 열 길을 찾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서 움이 트고 그것을 밖으로 내밀어 싹을 솟게 했다.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비를 맞으며 몸피를 키워나갔다.

  해가 뜨고 지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사이에 싹이 줄기가 되고, 줄기에서 가지가 벌고, 가지는 잎을 솟구쳐나게 했다. 그렇게 벌고 커지는 사이에 뿌리가 끌어 올리는 물만으로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들을 충분히 채울 수가 없다.

  잎과 가지가 힘을 합쳐 살기 위한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생업 전선에 떨쳐나서야 하는 것이다. 줄기와 잎은 해야 할 일을 나누어 공동 전선을 편다. 줄기는 물을 실어 올리고, 줄기는 햇살을 빨아들여 물과 섞어 탄수화물 밥을 짓고, 잎파랑치로 녹말이며 당도 만든다.

  그러자면 가장 긴요한 게 햇살이다. 어쨌든 햇빛을 붙들어야 한다. 몸체가 다른 것들보다 헌칠하다면 햇빛을 쉽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좁쌀 햇빛이라도 잡아야 한다. 끈질기게 매달려야만 한다.

  그 빛살을 잡기 위해 줄기를 휘고 굽혀가면서 햇살이 있는 곳으로 뻗어야 하고, 키가 작을수록 잎을 크게 키워서 한 톨의 빛 알갱이라도 더 붙잡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가지는 이리저리 뻗어 나가야 하고, 잎은 햇빛 바라기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 힘든 밥벌이가 나무에게는 지겨움일까, 즐거움일까. 아니면 숙명으로 알고 그저 그렇게 하는 걸까. 어느 작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 작가는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무슨 목표가 따로 있다는 걸까. 그 ‘우리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이들일까. 저마다 다른 목표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누구’와 ‘무엇’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나무도 다른 도리가 없어 밥벌이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단순히 밥벌이 자체가 목표였다면, 그리 눈부시게 싱그러운 모습들을 지어낼 수 있을까. 나무에게 밥벌이 이상의 다른 목표가 있다면, 정성을 다해 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모두 그 정성을 타고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나무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색깔로 그리 어여쁜 꽃들을 피울 수 있을까. 어느 가지 가릴 것 없이 찬연히 푸른 잎을 피워낼 수 있을까. 모든 나무는 한결같이 사는 일에 모두 천품 정성을 다 바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봄여름, 열정으로 살았다. 부지런히 빛살을 찾아다니며 밥을 짓고 찬거리를 어울렀다. 잘 먹고 잘 지내면서 원 없이 푸름을 뿜어내고 피우고 싶은 꽃을 피웠다. 이제 열매를 맺으며 쉴 차례다. 붉고 노란 단장도 해가며 즐기다가 휴식에 들면 된다.

  한껏 살아왔으니 인제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다. 치열한 삶 뒤의 휴식이란 얼마나 단 것인가. 가지는 모든 걸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늘을 바라며 묵상에 든다. 잎은 울긋불긋 치장했던 몸빛을 벗고 지상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모두 편안한 휴식에 든다.

  저 나무를 보며 나의 철을 돌아본다. 나도 지금 저들처럼 타오르던 열정의 시절은 넘어선 것 같다. 나는 가지인가, 잎인가. 무엇이라도 좋다. 내가 가지라면 지난날을 돌아보며 긴 사색에 잠겨 있을 것이며, 잎이라면 지상에 터를 잡아 조용히 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저들과 다른 게 있다면, 나의 사색과 휴식은 영원한 세상을 향해 내달을 것이지만, 저들은 그 묵상과 휴식을 통하여 또 다음 세상을 예비한다는 것이다. 아니다. 나에게도 다음 세상이 올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세상이 있을 것이다.

  나무도, 나도 치열한 밥벌이가 끝끝내의 목표가 아니라, 이 사색과 휴식의 시간이 마침내 맞고 싶은 지고의 목표였던지도 모르겠다. 그를 그리며 치열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정성스런 밥벌이 뒤에 올 아늑한 휴식을 위하여-.

  오늘도 산을 오른다. 저 가지, 나뭇잎과 함께하는 사색과 휴식의 세상을 만나러 오른다.

  그렇게 저들 속으로 든다.♣ (202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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