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무는 그저 산다

이청산 2022. 5. 9. 14:59

나무는 그저 산다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늘 오르는 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모습이 다르다. 산을 덮고 있는 나무의 빛깔이며 모양이 볼 때마다 새롭다. 저 둥치 줄기 어디에다 고갱이를 간직해 두었다가 철 맞추고 때에 맞추어 이리 새 모습으로 바꾸어내는 것일까.

  엊그제만 해도 맨살 가지에 겨우 움이 트는가 싶더니 연둣빛 애잎이 돋고, 파릇한 새잎이 어느새 현란한 푸른 잎이 되어 가지를 감싸고 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라도 할 양이면, 그 빛깔이며 모양이 바뀌고 달라지는 모습이 고속 영상처럼 빠르게 피어날 것 같다.

연둣빛 푸른빛이라 하지만 눈여겨보면 나무마다 빛깔이 조금씩 다 다르다. 여리고 진하기도 다르고, 밝고 어둡기도 다 다르다. 빛깔뿐만 아니라 크기도 문채도 같은 게 없다. 둥글고 모진 것도 있고, 넓적하고 조그만 것도 있어 가지각색이다.

  이파리만 그런 게 아니다. 줄기며 가지도 어느 것 하나도 같거나 닮은 모양이 없다. 가는 것도 있고 굵다란 것도 있고, 길쭉한 것도 있고 짤막한 것도 있다. 애가지도 있고 제법 연륜을 둘둘 감고 있는 것도 있다.

  저 나무의 잎과 가지, 저 모양 저 빛깔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떡갈나무 잎은 어느 나뭇잎보다 크게 피워 보고 싶어 하여 저리 넓적하게 생긴 것일까. 상수리나무 잎은 예쁘게 피워 보리라 해서 저리 작고 둥그스름하게 핀 걸까. 물푸레나무는 줄기에 무늬라도 새겨 멋 나게 해보리라 하고 흰 띠를 저리 두르고 있는 걸까.

나는 샛노란 빛으로 봄을 아롱지게 꾸며보리라 하여 생강나무 저 꽃은 저리 노랗고, 나는 짙붉은 빛으로 내 아린 속을 세상에 보여주리라 하고 저 진달래 저리 붉은가. 나는 연한 빛으로 가지를 은은히 꾸며보리라, 나는 내 모든 물씨를 한껏 드러내어 진초록 세상을 만들어 보리라 하여 빛깔들이 저리 여리고 짙은가.

  모든 나무의 으뜸이 되어 뭇나무들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리라 하고 저 나무 둥치는 저리 굵고 튼실한가. 쥐똥나무는 태어난 것만으로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며 작은 잎 가는 가지로 저리 하늘거리고 있는 걸까.

  여혹 나무들이 그런 뜻들을 품고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한다면 이 산이 어찌 되어 있을까. 나무의 종과 유가 좀 많은가. 서로 아리따운 빛깔, 멋진 모양, 굳고 센 힘을 다툴 양이면 산은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산의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산은 언제 들어도 아늑하다. 산을 꾸미고 있는 나무들은 언제 보아도 풋풋하고 싱그럽다. 단풍든 모습은 정겹고 다 벗은 맨살의 모습은 오히려 숭엄해 보인다.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은 은근하면서도 우렁찬 한 편의 교향악 같다. 바람 소리 새소리까지 어우러지면 누구든 산을 향해 나무를 향해 가슴을 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떤 이가 나무 우거진 저 산의 빛깔을 멀리하고 싶어 하랴. 바로 서 있든 굽고 휘어져 뻗든 저 나무 저 모양을 누가 기껍잖다 할 수 있는가. 짙고 여린 갖은 빛깔들이 모여 저절로 조화를 이루고, 갖가지 모양이 어울려 자아내는 저 풍경이 어찌 느껍잖을 수 있는가.

  나무는 이루려는 게 없다. 나무는 주어진 색깔과 모양대로 태어나고, 태어난 모습과 빛깔대로 산다. 내 빛깔이 왜 이럴까 곁을 돌아보는 법도 없고, 내 모양이 어찌 이리 났을까 다른 이를 건너다볼 줄도 모른다. 오직 제 빛깔 제 모양으로, 난 대로 살 뿐이다. 

나무는 서로 다투려 하지 않는다. 꼭 한 가지 다투려 하는 것은 없지 않다. 다른 이보다 하늘을 더 많이 보고 싶다. 하늘 볕살을 더 많이 쬐고 싶다. 그렇다고 다른 것을 꺾고 제치지는 않는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우르러 그리워하고 싶은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누가 보아도 살고 안 보아도 산다. 누가 보고 있다고 해서 모양을 다듬어가며 살려고도 하지 않고, 누가 안 본다고 해서 모든 걸 흩트려 놓고 살지도 않는다. 나는 대로 나고 사는 대로 날 뿐이다. 나무는 살기 위해 애쓰는 일이 없다.

  나무는 그저 산다. 그래도 꽃은 필 때 피고 질 때 진다. 열매 맺을 철이면 맺고 떨어져 흙 속으로 들 때면 든다. 다시 나올 때가 되고 나오고, 나오면 볕살 따라 바람 따라 자라고 살아간다. 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다.

나무는 살 때도 그저 사는 것처럼 죽을 때도 그저 죽는다. 명을 다 해도 그저 서 있으면 된다. 바람이 넘어뜨리기라도 하면 넘어지면 된다. 땅속으로 들 때가 되면 그저 묻히면 된다. 난 자리가 산 자리고 산 자리가 죽는 자리다. 나무에게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나무를 다시 본다. 그저 살아서는 사는 게 아니라는 세상은 왜 있는가. 세상은 이루려 할수록 왜 이루기가 어렵기만 한가. 남을 이기기 위해 서로 겨루고 다투는 세상이 있는 건 무슨 까닭인가. 다투다 못해 서로 해치고 끝내는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세상은 또 어느 세상인가. 그런 세상이 있는 곳은 어디고, 그저 사는 나무가 있는 세상은 또 어디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무를 다시 본다. 멍하니 바라다본다.

  나무는 그저 살고 있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202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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