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늙기 싫으세요?

이청산 2022. 4. 12. 14:34

늙기 싫으세요?

 

이  일  배

 

  오늘도 벚나무 줄지어 선 아침 강둑 산책길을 나선다. 아니, 이 무슨 변란인가! 다른 길, 딴 세상을 걷는 것 같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아침마다 걷는 길이건만 오늘은 전혀 다른 길이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줍어 수줍어하며 몽우리 속에서 꼬물꼬물 옥이고만 있던 꽃잎이 한꺼번에 현란하게 터져 별천지를 이루었다. 이 꽃들이 일시에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에는 무슨 기총소사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을 것 같다.

  어라, 이 나무 좀 보게! 온몸에 꽃 이리 화사하고 해사하게 피워놓고 제 몸뚱이는 왜 이 모양인가. 둥치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불을 뿜다가 버려져 검게 녹슬고 터진 포열 같기도 하고, 껍질은 이곳저곳이 갈라지고 거칠어진 늙은 농군의 투박한 손등 같기도 하다.

  꽃은 늘어뜨린 가지에만 달고 있는 게 아니다. 제 몸 구석 어디라도, 어떤 모양이라도 꽃을 피울 수 있겠다 싶으면 꽃을 달았다. 몸뚱이 가장자리든 한가운데든, 꽃가지가 길든 짧든 가리지 않고 날렵한 꽃잎들을 달고 있다.

  이 나무가 할 일이라고 여긴 건 오직 꽃 피우는 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제 뼈며 살이며 살갗이야 어떻게 되든 좋은 날 좋은 때에 활짝 꽃을 피워내는 것만이 제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며 갖은 힘을 다 써 온 듯했다.

  꽃 이리 피워내고는 제 한생 이대로 종언을 고한다고 해도 아무런 후회나 미련이 없을 것 같은 결기가 드러나 보이기도 한다. 꽃 피우는 일 말고는 제 몸을 위하여 무엇 하나라도 살피고 보듬은 듯한 기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구나. 그 집념이 이 꽃들 이렇게 현란히 피워냈구나. 제 몸에 지닌 정력과 기력을 다 바쳐 제 몸을 온통 꽃의 천지로 만들었구나. 무서우리만치 강인한 그 집심이 일시에 이리 일매지게 깜짝 놀랄 세상을 만들었구나.

  그렇게 생애의 모든 것을 다 털어 피운 꽃이면 천년만년을 달고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토록 모진 산고를 싸안으며 피워낸 꽃을 길어야 고작 열흘을 달고 있다니-. 질 때는 또 피워낼 때의 그 통고를 다 잊은 듯 그리 분분하고도 가볍게 내려앉게 하다니-.

  일여덟 해 넘는 세월을 알로 애벌레로 지내다가 성충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 겨우 한 달쯤 짧은 삶을 살고 한 살이를 마감하는 매미를 돌아보며 위안 삼을까. 저 꽃 지는 광경을 그려보면 활짝 피어있는 꽃이 외려 심통을 더한다.

  저 꽃 보는 마음 어찌 아파 만하랴! 저 나무는 세상을 길이 누릴 욕심을 품고 제 몸 모든 걸 받쳐 꽃 저리 피워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저렇게 피워내는 것으로, 그리하여 피어나는 것만으로 제 삶의 보람을 얻는 일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 보람이 차라리 미쁘고 아름답지 않은가. 제가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싶은 생의 과업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저 모습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제가 이룩해낸 것이 무엇을 누리게 해주지 못할지라도 무언가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래서 이 꽃 이리 애틋한 아름다움을 주는가. 붉고 푸른 원색의 현란은 없을지라도 잎 잎마다 소담하게 담고 있는 해사한 빛깔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어룽진다. 그리운 꽃잎이 화사한 봄날 속으로 정겨이 흘러들고 있다. 봄이 꽃 되고 꽃이 봄 되어 흐르고 있다.

 

  이 아름다움 혼자서만 새겨두기가 아까워 렌즈에 담아 정다운 이에게 보낸다. 답을 보내왔다.

  “……꽃이 피는 건 좋은데, 저 혼자 빠르게 달라빼는(달아나는) 세월을 조금이라도 잡을 수만 있으면~” 이 꽃에서 그는 세월을 보았구나. 답의 답을 이렇게 보냈다.

  “늙기 싫으세요~?! ㅎ” 이 답의 답으로 그는 ‘ㅎ~’만 보내왔다. 늙기가 싫다는 말일까, 싫지 않다는 말일까. 늙는 게 왜 싫을까. 좋을 일도 없지만 싫을 일도 없다. 저 꽃 저리 피고 지듯 세월 가고 청춘 가면서 늙고 죽고 하는 거야 마땅히 그리해야 할 일 아니던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돌아보아 저 꽃처럼 제 모든 것을 다 바친 집심을 불태우면서 살아본 일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니면 살아갈 날 속에 그런 불 지를 일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까?

  어느 시인이 ‘누구에게나 / 불탈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김주완, 「불길」)라 했지만, 그나 나나 그 불 그리 태울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저 꽃들을 피워낸 나무를 다시 본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고, 살아갈 시간을 헤아려 본다. 누가 나에게 이리 묻는다면 내 삶은 또 무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늙기 싫으세요?”♣(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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