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어느 무덤

이청산 2021. 9. 22. 12:55

어느 무덤

 

이  일  배

 

  어느 날 산을 오르는데 나란히 자리 잡은 두 무덤이 보였다. 어느 산에나 무덤은 많이 있고, 내외가 나란히 누운 쌍분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 본 그 무덤이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죽죽 뻗은 소나무 숲속 비탈에 땅을 잘 골라 봉분도 반듯하고 둥그스름하게 잘 다듬어 놓았다. 크기도 작지 않은 묘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마른 잔디 위에 솔잎들이 정갈하게 덮여 있었다. 잡풀도 많이 나 있지 않아 말끔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소를 쓸 때만 해도 후손들이 범절을 고루 갖추어 조상을 잘 모시려고 애쓴 것 같다. 봉도 보기 좋게 짓고 주변도 잘 정리해 놓았다. 제법 지체 있는 집안의 산소에 후손들도 다 덩실할 것 같았다.

  봉분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로 보면 산소를 쓴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보인다. 아니다. 수십 년은 훨씬 넘게 지난 것 같다. 봉우리를 비롯한 봉분 몇 곳에 굵고 큰 소나무가 곧게 뻗어 있다. 나이테 지름이 어림잡아 한 뼘은 훨씬 넘을 것 같아 수령들이 십수 년, 더 나아가면 수십 년은 족히 될 듯하다.

  묘 위에 일부러 나무를 심을 까닭은 없을 터이고, 솔 씨가 떨어져 싹이 터서 줄기가 나고 잎이 돋아 저토록 크게 되었을 것이다. 나무가 움이 나 저리 자랄 때까지 후손들이 전혀 돌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시기에서 발길마저 뚝 끊었을지도 모르겠다.

  장례 후로 참배를 이어갔다면, 이 산소의 역사는 그 참배 기간과 저 나무의 나이를 보탠 만큼의 시간을 품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 산소는 꽤 오래된 세월을 안고 있는 것 같다. 못되어도 반세기 이상은 되어 보인다.

  그 세월 속에서도 봉분이 이지러지지도 않고,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망자의 복인가, 후손의 덕인가. 명당을 잘 가려 묘를 썼기 때문인가, 우거진 숲과 지형이 잘 지켜 준 덕분인가. 그 후손은 지금 어찌 되어 있을까.

  모든 것이 덧없고 허망하다. 복이 있으면 무얼 하고, 덕이 좋으면 저리되었을까. 명당이면 무얼 하고, 잘 지켜주었으면 저 나무들을 저리 나게 하였을까. 그 후손들은 찾아뵙지 못하는 조상을 두고 마음을 졸였을까. 망자는 후손의 소식을 궁금해했을까.

  한동안은 마음에 두었을지라도 지금은 그 마음 다 잊었을지도 모르겠고,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구나 지하의 혼령이야 무엇을 알고 느낄 것인가. 저 봉분 저리 크고 둥글면 무얼 하며, 언제까지 저 모습을 지키고 있어야 할까.

  어쩌면 비바람에 쓸리고 깎이어 고요한 산비탈로 돌아가 저 나무의 바른 자리가 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저 땅은 애초부터 나무의 터전이 아니었던가. 산에게 나무에게 잠시 빌린 땅일진대, 이내 돌려주어야 할 일 아닌가. 애초에 빌리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노자는 대저 잘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삶을 귀하게 하려는 것보다 더 낫다.(夫唯無以生爲者 是賢於貴生, 道德經75)”라 했다. ‘잘 살려고 하지 않는 것이란 유위(有爲)의 삶이 아니라 무위(無爲)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꾸밈없이 물 흐르듯 무위로 사는 삶이 일부러 귀하게 만들려고 하는 삶보다 낫다는 말이다.

  삶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죽음에서랴. 죽고 난 다음에 어찌 둥글고 큰 봉분 짓기를 바랄 것이며, 그 앞에 빛나는 검은 돌 상판이며 깊게 새긴 휘()는 왜 있어야 할까. 그렇게 짓고 새기고 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이며 무엇을 기리는 일이 될까. 흙을 딛고 물을 따라 태어난 목숨이라면, 갈 때도 그 흙이 되고 물이 되어 자취 없이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저 무덤을 다시 본다. 저 무덤을 지은 이에게는 서운할 일이 될지는 몰라도, 애초에 저 무덤을 저리 짓지 않았더라면 못 받드는 불손에 애태울 일도 없었을 것이요, 저 소나무도 제 자리도 아닌 곳에 뿌리를 박아 백골의 옆구리를 찌르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무덤을 본다면 누가 저 일을 다시 할까. 그리하기를 또 애써야 할까.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내 다른 세상으로 갈 때는 어찌해야 할까.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라 저세상으로 가는 나를 지킬 아들에게 곡진히 일러두고 싶다.

  “아들아! 언젠가 내 눈을 감게 되거들랑 고운 재로 만들어, 나 즐겨 다니던 산길 어디쯤 서 있는 듬직한 나무 아래에다 고즈넉한 흙이 되게 해 다오. 그다음은 속으로 조용히 헤아리다가 세월에 그냥 묻어가면 되지 않겠느냐…….”(202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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