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청산 2021. 10. 26. 21:48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일  배

 

  가을이 여물어가는 강둑을 걷는다. 강물은 언제나 반짝이는 윤슬로 무늬를 새기며 쉼 없이 흘러가고 있다. 유유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배경 삼아 서 있는 둑의 벚나무는 화사했던 지난날꽃 시절을 뒤로 한 채 머리에서부터 붉은 물을 들여가고 있다. 

억센 줄기로 벚나무를 힘차게 기어오르던 칡넝쿨은 한풀 꺾인 듯 넓은 잎을 추레하게 늘어뜨리고 있고, 길섶을 온통 제 세상으로 만들던 환삼덩굴도 기가 한껏 죽었다. 길쭉한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해맑게 피워내던 달맞이꽃도 머리를 수그린다.

  그 꽃대에 가느다란 넝쿨을 감아올리며 빨간 꽃을 앙증하게 피워내던 둥근잎유홍초는 져가고 있지만, 산국이 줄기를 서로 기대며 조그만 꽃잎 속에 노란 미소를 담아내고 있다. 보라 쑥부쟁이도 하늘거리며 해맑은 눈짓을 날리고 있다.

  대지를 온통 푸름으로 덮었던 철이 지나가면서, 이울 것은 이울어 가고 피어날 것은 이리 피어나고 있다. 처음 보는 풍경은 아니다. 이맘때가 되면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펼쳐지던 풍경이었다. 무엇이 저렇게 해마다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는가.

  마치 잘 짜놓은 정류장의 발차 시각표처럼, 교실의 학습 시간표처럼 언제나 어느 때나 변함없는 일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다시 그런 해가 오고 그런 계절이 오고 그런 달이 오고 그런 날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해를 보내야 하고 달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시각표, 시간표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 무한 반복하게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한번 짜놓은 이것들은 아주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굳센 틀 속에서 세상이 흘러가고 있다. 이 틀이 바로 자연이요, 그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시계가 시간을 가리키며 돌고 있는가. 그 시계의 시간이라는 것, 그것은 인간이 억지로 나누고 갈라 구분 지어 놓은 것일 뿐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면서 낮과 밤이 새고 바뀌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가면서 꽃과 잎이 피고 지고 할지언정 시간이라는 게 과연 있는가.

과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1년은 365일 5시간 49분 16초라 한다. 시간이라는 게 있었다면 왜 이렇게 아귀가 맞지 않는 계산이 나오는 건가. 그래서 어느 해는 365일도 되고 366일도 되고 하는 건가. 시간이 존재하는 거라면, 어렵게 계산하지 않아도 딱 떨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 계산과는 아랑곳없이 해와 달과 날이 바뀌어 간다. 이 우주 지구 어디, 어느 날은 해가 오래 머물기도 하고, 어느 밤은 달이 길게 빛을 드리우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어디는 몹시 덥기도 하고 매우 춥기도 한다. 그런 것도 시간을 따라 그렇게 되는 건가.

  모든 것은 변해간다. 만물은 태어나 장성해 가기도 하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기도 한다. 꽃이 피고 잎이 피고 열매 맺다가 꽃도 잎도 져가기도 한다. 열매가 땅속에 들어 다시 꽃으로 잎으로 피어난다. 시간이야 있든 없든 세상은 이리 변해간다.

  시간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일들이 과연 시간과 관계가 있는가. 시간이란 게 필요하여 부른다고 달려오던가, 있는 시간이 거추장스러워 가라니 가던가. 와 있는 시간이 긴요하여 머물러 달라니 있어 주던가. 그런 시간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나 한가. 

강물이 흘러가고 있다. 흐르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머물긴 해도 넘어서면 다시 유장하게 흘러 흘러간다. 강둑의 나무도 풀도, 그 강물과 나무와 풀의 길을 걷고 있는 나도, 언제나 쉼 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흘러갈 뿐이다. 그냥 변해 갈 뿐이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어디 앉을 곳을 만나면 잠시 앉기도 하고, 주막을 만나면 잔을 기울이기도 하면서 흘러간다. 그렇게 흘러가다가 누울 곳을 만나면 누웠다가 영원한 잠에 들면 깊게 자면 된다. 그 흐름에 어찌 시간이며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노자도 ‘만물은 저절로 변해 간다.(萬物將自化, 道德經 第37章)’고 했다. 저절로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이 만물일 바에야 무슨 큰 욕심을 가질 일이 있을까. 노자도 욕심을 전혀 모르진 않았던 모양이다. ‘저절로 달라지는데도 무슨 욕심이 생기면 무명의 질박한 도로 이를 누른다.(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고 했다.

  욕심이 일 때는 마음을 순박하게 가다듬는다는 말이겠다. 누가, 무엇이 조화를 부려서 변해가는 것도 아닌 바에야 발버둥 치면 무얼 하고 안간힘 쓰면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노자는 또 ‘욕심 없이 고요하게 있으면 세상이 절로 안정될 것이다. (不欲以靜 天下將自定)’라고도 했다. 

하기야 누구나 다 노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거저 범속하게 살다 보면 욕심에도 빠지게 되고, 그러다가 화를 당하기도 마련인 게 범인의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의 힘으로 우리가 변해가는 게 아니라 절로 변해간다는 것을 알고 살긴 해야겠다. 그 ‘무엇의 힘’이라면 주로 시간의 힘이라 여겨질 터이지만, 시간을 본 이가 있는가.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우리를 변화시키며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란 어디에 있는가. 아니, 흐를 수 있는 시간이라는 형체가 있기나 한 건가. 만물은 절로 변해간다. 우리가 어떤 욕심을 가져도 세상은 거저 변해간다.

  우리는 그냥 흘러갈 뿐이다.♣(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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