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산은 방이다

이청산 2021. 8. 26. 15:56

산은 방이다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녹음이 한창 무성하다. 커다란 나무는 커다란 대로, 조그만 나무는 조그만 대로 저마다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 햇살이 뜨겁고 세찰수록 그늘은 더욱 후덕해진다. 

  산을 오르다가 우거진 나무 아래 그늘을 두르고 앉아 땀을 긋는다. 길고도 억센 잎이 빽빽이 모여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바람이 지날 때는 잎사귀가 그 바람을 부드럽게 재워 땅 위로 뿌려준다. 저 무슨 소리인가. 경쾌한 새소리 벌레 소리를 따라 나뭇잎이 춤을 춘다.

  무슨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먼 곳 어디 그리던 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어디서 날아오는 향기일까. 나긋한 꽃 내음 같기도 하고, 풋풋한 풀 내음 같기도 하다. 나무 그늘은 반갑고 향긋한 저네들 세상 소식을 넌지시 들려준다.

  아늑하다. 그 향긋한 소식에 어느 바깥세상에서 듣다 온 어지러운 소리가 다 씻어지는 것 같다. 사지가 편안해진다. 누워본다. 쌓인 잎이 포근하다. 나뭇잎 사이에서 햇빛이 아롱진다. 그립고도 어여쁜 이의 손짓 같기도 하다. 미소가 그려진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그리운 이도 생각나고 글도 쓰고 싶어진다.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쓸까. 지나온 삶을 정리하면서 그 삶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을 쓸까. 평안하다 할까, 번뇌롭다 할까. 이 그늘은 번뇌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방이다. 방이란 무엇인가. 태어나고 살아가는 곳이면서, 쉬기도 하면서 상념에도 잠기는 곳이 아닌가. 세상살이가 좀 갈등스러울지라도 그걸 달랠 수 있는 곳도 방이요, 새로운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곳도 방이 아닌가.

  산, 그 숲 그늘은 방이다. 아늑히 쉬게 해주면서 세상의 미운 것들을 씻어내 주고, 거친 것들을 부드럽게 갈아주면서 맑은 생각이 떠오르게 하는 방이다. 다시 살아보고 싶게 하고, 사랑해 보고 싶게 하는 포근하고 따뜻한 방이다.

  산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방이 있다. 그렇다고 산은 방 장사꾼이 아니다. 그 방은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준다.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는다. 찾아와 안기는 이라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미물이라도 좋고, 날짐승 길짐승도 가리지 않는다. 

  산의 방은 언제나 푸르다. 아니다. 푸르지 않을 때도 있다. 누를 때도 있고 붉을 때도 있다. 때로는 벽 칸살이며 천장이 다 드러나 하늘이 훤히 보일 때도 있다. 그래도 방은 늘 살아 있다. 어느 때 들어도 방이 지닌 정겨운 생명력은 잦아들지 않는다.

  산의 방은 나무가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다. 산이 품고 있는 작고 크고, 얕고 깊은 골짜기가 모두 방이다. 그 방들은 생명의 물을 품고 있다. 그 물은 산의 혈관에서 나오기도 하고, 산의 심장 속으로 흘러들기도 한다.

  그 골짜기에서 온갖 것이 다 난다. 풀도 나고 나무도 나고, 작은 벌레도 나고 큰 짐승도 난다. 우리의 방이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터도 되듯이 산의 방 골짜기도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된다. 골짜기가 있기에 산이 서 있고, 산이 있어 골짜기는 방이 된다. 산의 안방이다.

  사람의 방은 이따금 창과 문이 막히는 수가 있다. 그래서 세상과의 줄이 끊어지게도 하고, 홀로 된 외로움을 씹게도 한다. 산의 방은 결코 막히는 법이 없다. 오히려 세상과 줄을 이어주기도 하고, 홀로된 이들을 품어 위안을 주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어렵고 막막하던 시절 /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고’(이성복,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1」) 고백하지 않던가. 그 나무는 곧 산의 방이다. 산의 방은 바라보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고즈넉한 위안이 온몸을 적시게 해준다.

  산의 방은 나를 찾게 해준다. 그 방의 품에 안겨 쉬면서, 그 쉼을 통해 세상의 티끌들을 씻어내다 보면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 모습이 창백해 보일 때도 있고, 생기로워 보일 때도 있지만, 어떤 모습으로든 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반갑다. 

산을 오르고 싶다. 그 방으로 들어 세상의 잡음도, 권속의 쇄언도 다 씻어내고 싶다. 위안도 받고 싶고 내 모습도 찾고 싶다.

  상경한 초의선사가 자꾸 산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그의 벗 추사가 그를 가지 못하게 붙들며 “네 마음 고요할 땐 저자라도 산과 같고, 네 마음 들렐 때는 산이어도 저자일세. 다만 마음 그 속에서, 저자와 산이 나뉜다네.”(儞心靜時 雖闤亦山 儞心鬧時雖山亦闤. 只於心上 闤山自分, 「靜偈」)라고 했다 한다.

  산을 오르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산, 그 방에 든들 마음이 들레면 산 같지 아니할까. 오직 마음 탓일까. 어찌하였든 산의 방은 아늑하다. 그 방에서 세상 걱정을 다 못 떨칠지라도, 방은 늘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방은 포근하다.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쉽게 틔워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그 방을 찾아 오른다. 위안을 찾아, 생명력을 찾아 오른다. 나를 찾아 오른다.

  산은 방이다, 아늑한 방이다.♣(202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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