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나뭇잎 행복

이청산 2021. 8. 10. 15:42

나뭇잎 행복

 

이   일   배

 

  오늘도 산을 오른다. 숲 그늘이 날로 짙어지고 있다. 잎새의 잎파랑이가 더는 푸르러질 수 없으리만치 푸르러진 것 같다. 햇살에 반짝이는 빛깔이 눈부시다.

  생강나무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 잎눈을 수줍게 틔우기 시작했다. 세상을 향해 조금씩 눈을 떠나가다가 움이 되고 잎이 되어 세상의 빛을 안았다. 시나브로 깃을 세워 몸피를 불려 나가며 빛깔도 연두 연한 빛이 점점 초록 짙은 빛으로 변해갔다.

  마치 어린 것이 세상에 태어나 젖니가 나고, 걷고,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듯이 잎도 그렇게 푸름을 더해간다. 청년이 기운과 기백을 한껏 펼치듯, 잎은 그 기백으로 무성한 녹음을 이루어낸다. 이제 잎은 어떻게 될 것인가.

  청년이 생애의 꿈을 가꾸며 장년이 되어 자신과 함께 이웃을 위해 이바지도 하면서 원숙한 삶을 이루어 나가듯, 나뭇잎도 넓고 튼실한 잎으로 두꺼운 그늘을 드리며 많은 이들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삶을 이어 간다.

  불볕으로 내리쬐던 여름도 지나 바람이 소슬해지는 가을이 이르면, 우리의 삶이 황혼의 빛깔로 익어가듯 잎도 한 생애의 종언을 예감하면서 노랗고 붉게 익어간다. 바람이 차가워진다 싶을 때 그 바람을 타고 제 태어난 지상으로 사붓이 내려앉는다.

  나뭇잎은, 채비 없이 문득 세상을 떠나곤 하는 어떤 이들처럼 느닷없이 가지를 떠나지는 않는다. 제 잎자루 끝에 떨켜라는 새로운 켜를 하나 쳐서 제게로 오는 물길을 막는다. 저를 낳은 가지가 설한풍 겨울을 무사히 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고 저는 미련 없이 떨어져 내린다.

  나뭇잎은 행복하다. 제 눈을 틔워준 가지와 연하여 움이 트고 잎으로 피어났다. 가슴을 한껏 펼쳐 원 없이 푸르러 가면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게 했다. 그 꽃과 열매를 따듯이 싸안아도 주다가 생애를 다하여 소곳이 내려앉게 되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편안히 내려앉을 자리가 언제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먼저 자리 잡은 이들이 터를 포근하게 잘 지켜주고 있다. 그 아늑한 터의 품에 안기면 된다. 먼저 지상으로 내려온 잎들은 내려온 잎을 맞아주고는 서서히 흙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내려앉으면 한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내리는 잎을 따스하게 품어주고, 먼저 앉은 이들이 그랬듯 흙 속으로 들어 흙으로 몸을 바꾸면 된다. 새 씨앗의 거름이 되어 새 생명으로 태어나면 된다. 이 얼마나 평안하고도 아늑한 일인가.

  잎의 생애를 다시 돌아본다. 볕살이 따스하던 어느 봄날 햇살의 은총을 받으며 눈을 트고 움이 터 잎으로 피어난다. 비와 바람과 어우러지며 푸름이 그 빛을 다할 때까지 거칠 것 없이 푸르러져 간다. 그러다가 생애가 다했다 싶으면 내릴 자리로 조용히 내려앉는다.

  저 인간 군상들을 보라! 많은 생명이 축복 속에 태어나긴 하지만, 그렇지 못하게 태어나는 목숨도 없지 않다. 서로 나누는 사랑으로 살아들 가지만, 온갖 고뇌와 고통 속에 삶을 짓이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속이고 속고, 뜯고 싸우고, 밟고 밟히면서 사는 이들도 드물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제 자리 잘 잡아 안락하게 사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설 자리를 얻지 못해 평생을 헤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음도 제대로 맞을 수 없어 허망하게 스러져 가는 이들도 있다. 저세상 누울 자리마저 얻지 못해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영혼도 없지 않다.

  이런 목숨들에 비하면 나뭇잎의 한생이며 그 뒤에 이어지는 생들은 얼마나 큰 천행인가. 하늘이 나게 하고, 그 하늘이 내려주는 볕과 바람과 비로 살다가 그렇게 난 자리로 돌아가는 생애란 얼마나 복 받은 것인가.

  세상의 모든 나뭇잎이 마냥 그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에 서 있는 가로수 잎들을 보라. 청량한 바람 속보다는 숨 막히는 매연 속을 살아야 한다. 생애를 다하고 내려앉을 때도 자리를 얻지 못해 이리저리 굴리어 다니다가 둔중한 바퀴에 깔려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기도 해야 한다. 아니면 미화원의 빗자루에 쓸려 한 줌의 재로 사라지든지-.

  사랑받으며 살 것 같은 뉘 집 정원수의 잎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저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하고 주인의 눈길 손길을 따라 이리저리 잘리고 베이기도 해야 한다. 떨어진 잎조차도 태어난 흙 속으로 들지 못하고 밟히고 짓이겨지다가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해야 한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건가.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제 나고 살고 죽을 자리에 행복이 있는 것 같다. 나뭇잎의 제자리는 어디인가. 당연히 산이다. 산이야말로 나뭇잎의 행복을 키워주고 지켜주고 감싸 안아 주는 곳이 아닌가. 산의 잎이라야 제 행복 제대로 누릴 수 있지 않으랴.

  나는 제자리를 살고 있는가. 제자리가 주는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내려앉을 때도 제자리로 돌아가 고즈넉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오르고 있는 산의 나뭇잎을 다시 한번 쳐다본다.

  어쩌면 나는 제자리를 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자리를 산다면 밤마다 꿈자리가 그리 어지러울까. 그리운 일은 어찌 이리 많은가.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미련과 번뇌와 후회로 새워야 하는 낮밤이 적지 않은 것도 제 자리를 살고 있지 못한 탓이 아닐까.

  오늘도 산을 오른다. 행복한 나뭇잎을 그리며 오른다. 그 행복에 젖으러 오른다. 이렇게 오르다 보면 이 잎새들의 행복을 닮아갈 수 있을까.♣(2021.7.31)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술관으로 탈출하다  (0) 2021.09.08
산은 방이다  (0) 2021.08.26
산, 몸을 찾아서  (0) 2021.07.24
사람은 땅을 본받고  (0) 2021.07.12
엉겅퀴 사연  (0) 2021.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