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산은 영원하다

이청산 2020. 6. 14. 14:54

 

 

오늘도 산을 오른다. 산은 언제나처럼 무성한 녹음으로 우거진 나무들을 넉넉한 품으로 안고 있다. 키가 크고 작은 나무, 몸통이 굵고 가는 나무, 잎이 넓고 좁은 나무……, 나무의 모양은 각양각색일지라도 모든 나무를 분별없이 너그럽게 품고 있다.

우거진 푸른 잎새들은 바뀌는 철을 따라 색색 물이 들었다가 마르고 떨어져 제 태어난 땅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가지들은 부지런한 생명 작용으로 떨어진 잎을 거름 삼아 새로운 잎과 꽃을 피워낼 것이다. 천명을 다한 나무는 강대나무가 되었다가 제 태어난 흙 위에 길게 몸을 누일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 떨어진 잎들이 그랬던 것처럼 흙이 되어 새 생명으로 태어날 것이다.

나무는 저들의 섭리를 따라 나고 지는 변전을 거듭한다. 이 나무들을 안고 있는 산은 철 따라 세월 따라 거듭 바꾸어 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의 몸 바꾸기를 밀어주고 도와줄 뿐 제 모습을 바꾸지는 않는다. 철 맞추어 나고 살게 해 주면서도, 이렇게 이들을 포근히 껴안고 있노라고 저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거저 묵묵할 뿐이다. 그 함묵(含默) 때문일까. 산의 모습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노자(老子)의 목소리가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메아리진다.

천지는 영원하다. 천지가 영원한 까닭은 자기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궁할 수 있는 것이다.(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道德經7)”

산도 천지의 하나이고 보면, 노자의 이 말은 산을 두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은 무엇을 얻기 위해 나무를 길러주고, 뭇 짐승을 보듬어 주고, 바람과 물을 품어주는 것이 아니다. 거저 길러주고 보듬어 주고 품어줄 뿐이다. 그렇기에 산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낳아주되 갖지 않고, 위해 주되 바라지 않고, 길러주되 간섭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묘한 덕이 한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上同 第51)”고 한 노자의 말씀을 다시 빌려 보면, 그 현묘한 덕을 지닌 존재가 바로 산일 것 같다.

노자의 말씀에 계속 귀를 기울이노라면 산은 어느덧 성인(聖人)의 경지로 간다.

……그래서 성인은 자신을 뒤로하되 앞에 서게 되고, 자신을 밖에 두되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자기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上同 第7)”

노자의 성인(聖人)이란 바로 천지자연이다. 따라서 산이라 해도 좋다. 산은 늘 모든 것보다 저를 뒤로하고 늘 저를 버리기에 언제나 변함없이 늠름하고 듬직한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산이 이러하다면, 노자의 말씀이란 바로 산을 두고 한 것이 아닐까.

어디 산 같은 사람이 없을까. 지금 세상을 보면 상생(相生)하려는 사람들보다 자생(自生)하려는 사람들로 온통 들끓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자생이라는 말은 자기만을 위한 삶이라는 뜻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정치판에 더욱 두드러진 것 같다. 사회적, 정치적 혐의를 지고 있으면서 어찌어찌하여 권력을 차지하더니, ‘그 죄를 다스리려는 쪽을 향해 어디 두고 보자.’며 벼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와 역사의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사람들이 그 역사의 피해자를 앞세워 다른 속을 차리고, 그 속을 이용해 권세를 누리려 하는 사람은 또 무엇인가. 그들을 꼭 껴안아 두둔하고 있는 그들의 진영은 또 누구를 위해 사는 사람들인가. 이런 이들이 어찌 영원할 수 있을까.

이들처럼 세상은 온통 자생을 위해 아귀다툼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 아수라장 같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저들만의 삶과

이득을 위하여 상생을 짓밟고 있는 집단과 사람들을 일일이 다 헤아리는 것이 오히려 뜻 없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상에는 낙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밤 깊은 골짜기의 등불 같은 희망도 없지 않다. 우리는 보았다.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하여 병원마다 쓰러진 사람들이 넘쳐나면서 의료 인력도 모자라고 병상도 딸릴 때, 이 바이러스와 분연히 싸우겠다고 생업도 사사의 안위도 내던지고 의병처럼 일어나 병원으로 몰려들었던 의료진들이며, 우리에게로 오라며 기꺼이 병상을 내놓던 의로운 이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런 이들이야말로 제 몸을 뒤로하기에 남의 앞이 될 수 있고, 제 몸을 내놓아 존재를 오히려 빛나게 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렇게 사사로움을 이겨 뭇 사람들의 영웅이 되지 않았는가.

산을 다시 본다. 결코, 저를 내세우지 않기에 더욱 푸르러지는 산을 본다. 산은 영원하다. 이 영원의 품에 살포시 안겨 본다. 따뜻한 숨결이 몸속으로 젖어 든다. 이런 산이 있는 세상이면 산처럼 사는 사람도 없지 않으리라는 바람을 안고 산을 내린다. 내일도 오를 산을 다시 돌아보며 가든한 걸음으로 내린다.(20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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