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추억을 아름답게

이청산 2020. 5. 10. 11:31

추억을 아름답게

 

월간 수필문학지에 실린 글 한 편이 망각 세포 속 깊숙이 잠겨 있던 55년 전 그 기억의 심연 속으로 소용돌이처럼 빨려들게 했다. 그리운 대구, 김옥기-. 까까머리 고교생 시절에 만났던, 그때 그 사람일까? 간혹 기억 속을 맴돌곤 했던 이름이다.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국 이민 25년쯤 되던 해 어느 날 문득 옛사람이 그리웠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고교 시절 함께 문학 활동을 했던 한 시인을 찾게 되었고 했다. 그 후 뉴욕 평통 일원으로 서울에 와서 그를 만나 옛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추억 속의 몇 사람들과 반가운 해후를 나누었다며 회상을 이어갔다. 그 시절 우리들의 대장격이었던 어느 시인도, 서울 와서 만났던 예전 동네 친구 시인도, 서울 만남을 이끌어주었던 그 시인도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며, 아쉬움과 함께 문청 시절의 추억들을 풀어냈다.

그런 추억 속을 살았었다면 그 사람이 틀림없다. 그 속에 나는 왜 없을까 싶기도 했지만, 내 기억은 회오리로 솟아올랐다. 갈래머리에 단정한 교복 차림, 얼굴엔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 여학생-. 문학회 활동을 같이하면서 그 대장집에서, 혹은 어느 다과점에서 이따금 만나 시와 문학을 이야기하고, 풋풋한 꿈들을 함께 나누던 이들 중의 한 사람, 같은 또래고 보면 그도 나와 같이 종심(從心)을 벌써 넘어섰겠다.

특히, 서울 어느 대학교 문예 콩쿠르에 함께 참여했던 고3 때의 일을 잊을 수 없다. 먼저 제출한 작품으로 입선자를 뽑아서 백일장을 열어 최종 입상자를 가리는 대회였다. 함께 활동하는 문학회원 중에 그와 내가 나란히 그 선에 들었다. 백일장 참석을 위해 함께 서울로 가는데, 회장을 비롯한 몇 회원들도 응원대로 같이 갔다. 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밤을 새우고, 이튿날 백일장에 나갔다. 지금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 그 글로 아쉽게 입상은 못 했지만, 서울 구경도 하고 백일장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했다.

그의 글을 읽고 새겨지는 이런 나의 옛 기억을 그냥 묻어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프로필에 이메일 주소가 보였다. “……님의 이름을 보고 익은 이름이라 여기며 읽어나가다가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일들에 제 눈길은 얼어붙고 말았습니다.……라며 함께했던 추억을 말하고, “……다시 뵐 날이야 기약할 수가 있겠습니까만,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로 여기며 이 글을 드립니다.……며 맺었다.

두어 주일쯤 뒤, 이제야 메일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 내 연락처를 찾았다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문득문득 그리워서 눈물짓곤 하던 대구의 그 시절…… 얼굴은 잊었지만, 그 시절의 저를 기억하는 님의 메일을 보고는 큰 위로와 기쁨을 느꼈습니다.……라는 사연과 함께 가끔 고국에 오는데, 온 지 한 달쯤 되었다며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버튼을 눌렀다. 반세기도 넘는 세월 속의 기억을 함께 돌이키는 일로 그도 나도 목소리가 가볍게 들떴다. 어디 어디에서 누구누구랑 문학도 논하고 환담도 즐기고 하지 않았느냐, 서울 어느 대학 백일장도 함께 참여하지 않았느냐며 추억담부터 펼쳐냈다.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난다며 너무 반갑다고 했다. 옛 기억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 세월의 강, 그 강심으로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서로의 근황도 나누었다. 나는 십 년 전에 공직 한 생애를 마감하고 지금은 어느 벽촌에서 은퇴 노옹으로 살고 있는데, 학교를 졸업하면서 문학에서 좀 멀어졌다가 어찌어찌하여 수필과 인연을 맺고 쓰는 생활을 즐기며 지낸다고 했다. 자기는 삼십여 년 전 뉴욕에 이민하여 살면서 가끔 귀국해 어머니 집에 기거하고 있다며, 교포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글과 다시 접하게 되어 수필로 고국 문단에 등단했다 한다. 나도 그도 문청 시절의 꿈을 한동안 떠나기도 했지만, 결코 문학을 떠날 수 없는 어떤 인자 같은 것이 몸속에 계속 흐르고 있었던 같다.

그는 아련한 추억을 더욱 생기롭게 하려는 듯, 옛날 함께 백일장에 참여했던 흔적을 웹 자료에서 어렵게 찾아내어 보내왔다. 그 속에는 둘의 이름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가진 옛 책들을 뒤지다 보니 그 시절 함께했던 문학회에서 프린트 판으로 낸 동인지가 보였다. 창연히 퇴색되어 만지기만 해도 으스러질 것 같은 그 책 첫 면에 나와 그의 시가 나란히 실려 있었다. 사진으로 담아 보내 주었더니 아주 귀한 자료라며, 학창 시절 즐겨 썼던 어휘들이 보여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내 글들을 싣고 있는 웹사이트를 알려주면서, 그의 근작도 보고 싶다 했더니 근년에 낸 수필집을 보내 주었다. 고국 출판사에서 낸 그 책 속에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외딸이면서도 고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회한이 짙게 서려 있었다. 또한, 문화부 기자, 부장으로 일하면서 백남준 비디오예술가를 비롯한 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교류했던 일들이며 그림과 화가를 좋아해 직접 화랑까지 열게 된 삶의 면면들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었다. 그의 삶을 읽는 사이에 내 삶이 왜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오래된 기억의 한 부분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릿하면서 즐겁기도 하지만, 그만큼 삶의 많은 연륜이 우리에게 쌓여 있다는 사실이 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추억이란 과거 속에 있는 것이기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현재가 과거 속 추억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으로 새긴 그 기억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꾸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진솔한 삶의 고백을 담은 글로 읽는 이에게 조그만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 추억도 새로이 아름다워지지 않으랴. 여태 글을 써오면서도 쉽사리 이루지 못한 일이지만, 문청 시절의 그 풋풋했던 꿈을 다시 여며 볼 일이다.

그런 날을 그리며 조용히 글을 다듬어 볼 일이다.(20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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