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은 소나무가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나이테가 수십 줄은 쳐져 있을 것 같은 이 나무의 굽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이 나무를 못 본 이에게 들려주면 거짓말이라 하기 십상일 모습이다. 뿌리를 박은 땅에서 제법 굵어지며 잘 살아 올라오다가 거의 직각을 이룬 상태로 굽어졌다. 굽은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절로 저리 굽을 수가 있을까. 제법 굵게 자라다가 피할 수 없는 계기를 맞아 아프게 굽어진 것 같다. 굽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곧바로 앞을 향해 예닐곱 자 가량을 뻗어 나갔다. 굽이에서 그만 하게 뻗어 나가자면 숱한 세월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그냥 그대로 앞을 향해 뻗어나간 것만은 아니다. 어찌하면 위로 솟을 수 있을까, 마음 졸이며 때를 엿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꿈틀거린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시도하다가 실패한 자취도 보인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 때를 어떻게 포착했는지는 자신만이 알겠지만 때를 만나서는 곧바로 위쪽을 향해 치솟았다. 주저 없이 뻗어 올랐다. 솟아오른 높이만큼이나 또 수많은 세월을 감아야 했을 것이다. 그 세월이 힘에 겨웠던지 고개를 조금 숙이기도 했지만 향해야 할 목적지는 결코 잊지 않았다. 목적하는 곳이 없었다면 그리도 한 곳만을 향해 오르려 했을까.
이 나무가 간곡하게 바라보며 향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사실은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주위의 다른 것들도 다들 향하고 있는 곳이다. 모두들 바라보고 있는 곳을 전들 왜 향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곳은 모든 나무들이 향하고 싶고 다다르고 싶은 곳이다. 영원히 이르지 못할 곳일지 몰라도 나무들은 향해야만 할 곳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굽은 소나무는 제 뜻과는 다른 쪽으로 몸이 굽혀 있기에 마음이 더욱 간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곳이 그리웠을 것이다. 한생을 오직 그곳을 향하는 일에 매달렸을 것이다. 때로는 다른 나무들이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났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래서 각진 굽이에 몸부림치면서도 오롯이 그곳을 향하지 않았던가.
그래, 모든 나무들이 그리도 목말라 하며 향하고 싶은 곳은 어디란 말인가. 세상에 태어나자말자 쳐다보는 곳, 오직 그곳을 그리며 솟아오르고 싶은 곳, 팔을 벌려도 그곳을 향해 벌리고, 고개를 들어도 그곳을 향해 바라보고 싶은 곳, 그곳은 어디일까. 하늘이다. 나무는 오직 하늘을 바라며 산다. 제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무는 하늘에서 났다. 누가 심어주지 않아도 나고, 누가 길러주지 않아도 자라났다. 누가 돋우어 주지 않아도 잎을 열고 꽃을 피웠다. 오직 하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거늘 어찌 그립지 않으랴. 어찌 향하고 싶지 않으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설레는 하늘이다. 향하여 팔을 벌리고만 있어도 포근해지고 푸근해지는 하늘이다. 그런 하늘이기에, 그렇게 그리운 하늘이기에 나무는 결코 하늘을 향해 왼고개를 치거나 등을 돌릴 수가 없다. 오직 향할 뿐이다.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그런 나무들과 더불어 사람의 명줄도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 하고 싶은가, 사람들이여. 그런 사람이 왜 하늘을 우러를 줄 모르는가, 왜 하늘을 그리워할 줄 모르는가.오직 힘들고 어려울 때만 하늘을 쳐다보려 하는가. 그럴 때만 하늘 향해 두 손 모으려 하는가. 그렇게 하늘 향한다고 사람도 하늘로부터 났다고 하려는가. 나무가 언제 힘들 때만 하늘을 그리워하던가.

각진 굽이를 세우면서까지 오로지 하늘을 향하던 그 소나무는 어찌 되었는가. 그렇게 수십 년을 두고 하늘을 향하던 그 나무가 애석하게도 지금은 말라가고 있다. 말라 껍질도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하여 하늘로 향했건만 주위에 있는 상수리나무며 물푸레나무 산벚나무를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소나무는 제 몸에 칠팔십 퍼센트 이상 햇빛이 와 닿아야 한다는데, 그렇게 애써 올라도 그렇지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걸 학자들은 우점도(優占度)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도를 충족하지 못하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겠다. 마치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그리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끝내 가 닿을 수 없는 하늘을 보며 애처롭게 말라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무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다. 인간들처럼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다만 말라갈 뿐이다. 마르다가 내려앉을 것이다. 내려앉아 땅을 닮아가다가 땅 속으로 들 것이다. 다시 솟아 새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하늘을 바라볼 수만 있으면 된다. 그리워할 수 있으면 된다. 팔을 높이 벌려 그리워할 하늘이 있으면 된다. 하늘처럼 살면 된다. 간절하면 닿는다 하지 않던가.
나무는 언제나 하늘이 그립다. 하늘을 그리워하며, 제 난 곳을 사무쳐하며 산다. 그 나무가 곧 하늘이다. 언제나 하늘 향해 사는 나무가 하늘이 아니고 무엇인가. 높고 푸른 하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2019.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