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임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이청산 2019. 8. 11. 15:33

임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사람은 모두 무엇인가를 희구하며 산다. 그런 것이 없다면 무엇으로 살 수 있으랴. 그런 것이 없거나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저린 속을 안고 헤매야 할까. 나에게는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고, 그릴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살 수 있다.

아버지는 소년에 성가하여 다른 세상을 접하면서 소년 부인을 홀로 둔 채 이국땅을 헤매며 자기를 찾기 위해 애썼다. 개척의 투지라 할까. 그런 뜻과 더불어 힘써 건사한 재물을 집안 살림에 다 보태고 그 대가로 부모님의 배려를 얻어 겨우 분가하여 때늦은 신접을 조촐히 차렸다.

그 후 아버지는 식민 시절의 고난, 해방공간의 혼란, 동족상잔의 비극 등 민족사의 숱한 난관을 어머니와 함께 겪어왔다. 아버지에게는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어머니는 거기에 고독의 고초까지를 더하면서 험난한 세파를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 했다.

그런 세월이 지났다. 가형은 그래도 아버지의 그 개척과 도전의 정신을 이어받았는지 어려움을 가르며 도시로 진학하고, 회사원이 되었다가 자영 업체를 경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누이의 오라버니 출세를 돕는 일이야 으레 하는 일로 여겨지던 세태 속에서 가형은 그렇게 길을 이루어 나갔다.

나는 어쩌면 아버지와 가형의 그 정신과 기질을 그리도 물려받지를 못했던가. 어찌어찌하여 겨우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와 적수공권이나마 가정을 꾸렸지만, 처세며 이재란 남의 일인 양 아득하게 살 뿐이었다. 어머니는 늘 우매한 아들 걱정에 숱한 날밤을 가슴 졸이며 지내셔야 했다. 이승을 떠나실 때까지도 마음은 언제나 그 아들을 안고 있었다.

고난을 억척으로 이겨내셨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월을 뒤로한 채, 가형도 나도 아버지가 사세하실 적보다 더 많은 세월의 바퀴를 안아가고 있다. 가형은 젊을 적이나 지금이나 사업가로 한세상을 그윽이 누리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는 부모님께 평안을 드리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 사는 것이란 기적만 같다. 주어진 일에 성심을 쌓으면 그런대로 부지할 수 있는 공직 한평생이 아니었으면 각박한 세태를 어찌 건사해 내었을까. 그 한세상을 마감하면서 세상 모든 풍파를 떨치고 싶어 나무가 있고 물이 있는 곳을 찾아와 조용한 숨결 가누며 살고 있다.

어딘들 사람살이가 다를까. 조용한 곳이란 따로 있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조용이 남의 소란이 될 수도 있고, 남의 편리가 나의 불편이 될 수 있음을 살아가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도 삶의 한 모습이 아니던가. 고독은 어느 곳에서나 사람의 일이 될 수밖에 없는가 보았다.

어머니가 지명의 고개를 넘어가시던 어름이었을까. 나라의 전쟁도 숙지고 살길을 찾기 위해 너나없이 애쓰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도 시대의 고단한 행적들을 쓸어안고 도시 어느 변두리에 자리를 잡아 다시 지난한 생애를 꾸려나가고 있을 때였다.

어느 해 추석 무렵이었던 것 같다. 가족 친지들이 둘러앉아 놀며 노래 한 자락씩 부르는데, 그 자리서 불렀던 어머니의 노래가 지금도 귀에 아련하다.

강남 달이 밝아서 임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려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새울까

언제 어머니가 그 노래를 가슴에 심어 두었던지, 강물에 달 흐르듯 구성진 초성으로 부르는 가락에 모두 듣는 귀를 의심했다. 한을 자아내듯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몰래 품어왔던 고난과 고독의 한을 이 노래에 담아 비로소 풀어내는 것 같았다.

세월은 또 흘러갔다. 아버지는 그리 많지는 않은 재산이지만 큰자식에게 다 물려주고 생활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 자식에게 의지하여 힘들게 사시다가 끔찍이도 좋아했던 대통령이 시해되고 하루 조금 더 지난 새벽에 눈을 감으셨다. 홀로된 세월이 십수 년 흐른 뒤의 어느 해 봄,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두 분 모두 마음 편히 사셨던 날이 몇 날이나 되었을까.

멀찍이서 속정으로만 그릴 뿐,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셔서나 언제 한 번 이렇다 하게 모셔보지 못한 세월이 무람히 흐른 어느 해 제삿날, 어머니의 강남 달이 덧난 생채기처럼 아릿하게 가슴을 저며 왔다.

멀고 먼 님의 나라 차마 그리워/ 적막한 가람 가에 물새가 우네/ 오늘밤도 쓸쓸히 달은 지노니/ 사랑의 그늘 속에 재워나 주오

멀고 먼 나라는 어머니와 내가 달리하고 있는 세상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붙이들이 떨어져 살고 있는 심경의 거리이기도 했다.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나누어 마련하기로 한 제수를 싸들고 가형 집으로 간다. 부모 그리는 정이야 다르랴만, 그 마음만큼 붙이들의 마음도 푼푼이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무던한 일일 수 있을까.

하현달이 창밖을 흐르고 있다. 오늘따라 강남 달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사람살이라는 게 원래 고적한 것이라 하지만, 때로는 손을 잡고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볼 사람이 있다면 그래도 세상이 한결 살갑지 않으랴.

독작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며 달 가는 길에 가슴 한 자락을 느꺼이 걸어본다.

강남에 달이 지면 외로운 신세/ 부평의 잎사귀에 벌레가 우네/ 차라리 이 몸이 잠들리로다/ 님이 절로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어머니가 계실 그 그리운 세상, 어머니는 지금도 간혹 강남 달애틋한 가락을 그 세상에 싣고 계실까. 그 세상 어머니를 그리며 나도 잠들고 싶다. 어머니가 오시어서 깨울 때까지-.

어머니, 그때 저를 깨우며 학교 가라!’ 많이 하셨잖아요!(20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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