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살아보지 못한 과거 속으로

이청산 2018. 9. 23. 15:14

살아보지 못한 과거 속으로

 

황혼 빛이 시나브로 짙어가는 나이 탓일까조금씩 재어지고 있는 삶의 이력 탓일까지나온 날이며 과거사가 가끔씩 돌아보인다돌아볼수록 내 지나온 날이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 스스로 민연해지기도 하지만그 어쭙잖은 삶과 함께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나의 과거도 돌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내가 지금 아무 연고도 없는 이 한촌의 산과 물을 찾아와 살고 있는 것처럼 이 마을을 맨 처음 찾아와 산 사람은 누구였을까내가 태어난 곳을 맨 처음 살았던 조상은 누구였을까 하는 것들을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이 가끔씩 드는 것이다그런 것이 모두 내가 살아보지 못한나를 있게 한 나의 과거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풍진의 한 생애를 마감하고 풀과 흙에 묻혀 조용히 살리라며 이 한촌을 찾아온 지도 강산이 변할 세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앞에는 강을 거느리고 뒤에는 산을 세워두고 기름진 들판에 서른 대여섯 집이 모여 오순도순 살고 있는 이 마을을 농촌진흥청에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전국 100대 마을’ 중의 하나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곳을 살고부터 앞 강둑을 거닐고 뒷산을 오르는 일은 나의 오롯한 즐거움이자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과가 되었다이런 마을을 맨 처음 일군 사람은 누구였을까그래서 이 마을과 내가 인연을 맺게 했을까.이 마을을 유구히 살았다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아는 이가 없다뿌리 마른 나무 앞에 선 것 같았다사람들이 모르는 일은 산에게 물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그 산을 헤매던 어느 날중허리쯤에서 용두 묘비가 서있는 널따란 묘역을 발견했다내가 궁금해 하던 답은 그 묘비에 숨어 있었다조선 선조25(1592) 임진왜란을 당하여 충주에 살던 선비 김해김씨 김준직(金俊直)이 이곳으로 피란을 와서 터 잡아 산 것이 시초라고 한다그 후 대를 이어 살아오다가 6세손 명조(命祚)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는 바람에 5대조인 준직이 통정대부에 추증되었다고 한다후손을 잘 두어 조상이 광영을 입은 것이다그러고 보니 4백여 년 유구한 역사가 깃든 마을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마을 사람들은 그 묘역을 큰묏등이라 부르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그 후손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고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지난날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다보니 그 묘비조차도 지나쳐 보아 마을의 과거가 묻혀버린 것이다이 마을을 사는 나의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물론 누가 지켜주기를 바랄 수도 없고후손이 잘 간직해주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지만그러한 망각이 때로는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찌하였든 내가 지금 이 산수 좋은 마을에 살 수 있게 된 것은 마을을 일군 사람들이 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그 역사도 나의 과거임에 틀림없다생각은 또 과거를 타고 달린다내 태생지의 조상님들은 어떤 분들이었으며 맨 처음 그 향리(鄕里)를 일군 조상님은 누구였을까그 답도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문중 족보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문중사(門中史)를 거슬러 올라가보니내가 태어난 선산(善山해평(海平)에 맨 처음 자리 잡은 조상은 전주이씨(全州李파조(派祖완창대군(完昌大君)으로부터 10세가 되는 열남(悅南()으로 조선 인조 경오년(1630)에 태어나 가선대부(2)로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4)을 지내고 숙종 정유년(1717)에 돌아가신 분이었다족보의 連世經難 家事落魄 自大邱徙居善山(잇따른 어려움으로 가사가 영락하여 대구에서 선산으로 옮겨 살았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생전 어느 해에 영락(零落)한 가사를 돋우기 위해 낙동강변의 옥토를 찾아 해평으로 이주해온 것 같다.

그 생애 무렵은 시대적으로 아주 곤고(困苦)한 때였다인조 병자년(1636)에는 호란(胡亂)을 만나 임금이 적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해야 했고극심한 붕당 싸움으로 세 번의 환국(換局)을 거치면서 나라가 피폐해진 데다가숙종21~24년에는 한발수재풍재상재(霜災)등으로 기근이 잇따르고 전염병까지 만연하여 민심이 매우 흉흉했다.

이로 말미암아 가사가 더욱 쇠락했을 것 같다. ‘時丁丙丁之後 無意仕進 以壽陞資(그때 병자 정축 후라 승진하여 관직에 나아갈 뜻이 없었다.)’라는 기록을 보면 품계보다 몇 등급이나 낮은 직위를 살면서도 곤궁한 신세를 못 이기어 승진할 뜻을 잃고그마저도 버리고 초야로 이거(移居)를 결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계기가 된 병정지후(丙丁之後)’는 병자 정축년의 뒤끝을 뜻하는 것 같은데병자 정축 호란으로 보자 하니 연치가 유소할 때라그 60년 후 병정(丙丁대기근(大饑饉)의 간난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리하여 살길을 찾아 내가 태어난 해평으로 온 것이라면 70세를 전후한 시기가 될 것 같다비옥한 땅을 얻었기 때문이었을까공은 당시로서는 드문 87세의 수를 누리게 된다.

그 후 3백여 년이 흘러 열 분의 조상님을 더 거쳐 내가 태어난다그 조상님들이 내가 그 땅에 태어난 근거가 되었고 보면이 또한 멀고도 긴 나의 과거사라 할 것이다어디 이것만 나의 과거일까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이 세상천지가 모두 나의 과거사가 아닐 것이 없겠지만,핏줄이 걸려 있고발자국이 찍혀 있는 곳을 새겨보고 싶은 것이다.

그 땅 그 조상에 근거하여 시작된 나의 삶도 살길을 따라 타방을 전전하다가 생애의 한 막을 거두고지금 이 한촌에 깃들어 새로운 막을 펼쳐나가고 있다내가 태어났던 땅이며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땅은 조상님들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명을 걸고 찾아온 곳이었지만나는 그저 정밀(靜謐)한 삶을 기려 이 땅을 찾아온 것이니 그런 조상님들보다는 복 받은 삶이라 할까그 복의 유래가 모두 내가 나고살고 있는 땅을 일군 조상님들에게서 온 것으로 여기고 싶다내가 살아온 과거는 물론살아보지 못한 나의 과거까지 돌아보고 싶은 소이연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땅이 기착지가 될 것인가정착지가 될 것인가.나는 또 누구의 과거가 될 수 있을 것인가어떤 과거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오지 않은 날의 일을 어찌 섣불리 이를 수 있으랴다만이 땅에 스스로에 마음 모아 살아볼 일밖에 없을 것 같다살아보지 못한 내 과거를 돌아보며-.(2018.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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