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째 무릎이 가끔씩 시큰거렸다. 산을 오를 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그랬다. 그리 심하지는 않아, 그럴 때만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잖게 넘겼지만, 간혹 이러다가 큰 병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how1.jpg) 병원을 찾아갔다. 증상을 말하니 사진을 찍어보자 했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말했다. “관절염 초기입니다. 연골이 많이 닳았군요.” 아직 그리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산행이나 자전거 타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눈앞이 흐려지면서 몸이 내려앉는 듯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의사에게 물으면 다리를 쓰지 않는 운동을 권할 것이다. 무슨 운동이 내가 산에 오르는 만큼의 뜻과 힘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 받아 병원을 나오는 발걸음이 땅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어찌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삶의 터를 옮길 때마다 먼저 찾은 것은 주변의 산이었다. 가까이에 오를 산이 있어야 내 삶을 온전하게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지금 내가 사는 곳을 어렵게 찾아온 까닭 중의 하나도 집 가까이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살거나 날마다 해거름이면 꾸준히 산을 올랐다. 처음에는 운동으로 시작한 산 오르기였지만, 오르기를 거듭하는 사이에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갔다. 나무가 있고, 그늘이 있고, 산꽃이 있고 산새가 있는 산은 내 삶의 한 터전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 앓은 적이 있는 요통으로 허리가 좋지 않았다. 그 허리가 가끔씩 다리를 저리게도 했다. 누가 말하기를 자전거를 타면 허리 건사에 도움이 될 거라 했다. 두어 해 전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산행의 하루를 걸러 자전거를 탔다. 산을 잘 오르기 위해서였다. 유쾌하게 산을 오르고 상쾌하게 자전거를 탔다. 산을 오르며 피고 지는 푸나무와 더불어 무위자연을 새겨 보기도 하고, 자전거를 달리며 나를 스쳐가는 풍경과 함께 생명의 생기와 약동에 너울거리기도 했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how3.jpg) 산은 그대로가 자유 천지였다. 풀도 나무도 나고 싶은 대로 나고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다. 작고 큰 것은 그것들대로, 살고 죽은 것은 그것들대로 다 안아주고 품어준다. 산은 모든 것이 하나다. 풀도 나무도 하나고, 삶도 죽음도 하나다. 산은 아늑한 위안이다. 추위는 감싸주고 더위는 날려 준다. 슬픔은 묻어주고 기쁨은 날게 해준다. 상처는 보듬어 주고, 시샘들은 다 씻어준다. 산에서 누가 다툼을 말할 수 있는가. 애증을 따로 가를 수가 있는가. 자전거를 달려 나간다. 내 살아있음의 현물적인 증거다. 페달을 밟는다. 내 새로운 삶의 이력들을 밟아 나간다. 그 이력들이 하나하나 일어선다. 땅도 하늘도, 강물도 들판도 모두가 생동한다. 약동하는 생명이 되어 땅을 날고 하늘을 달린다. 자전거 길은 찬연하다. 풍경이 나에게 환영의 손길을 보낸다. 만국기를 들고 열렬한 갈채를 보낸다. 그 환영과 갈채 속을 달려 나간다. 마치 내가 무슨 정부의 요인이 된 것 같다. 내 인생이 언제 이토록 찬연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산을 어찌 오르지 않고, 이런 자전거 길을 어찌 달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해거름이면 오르고 달리는 내 삶의 공고한 질서는 또 어쩌란 말인가. 나에게 해거름은 생동이다. 나는 생동하는 삶의 해거름을 살고 싶다.
이제 해거름을 무엇으로 보내란 말인가. 지는 해를 보며, 그것이 뿌리는 최후의 빛깔들을 보며 사색에만 잠기란 말인가. 무엇을 위한 사색인가. 삶을 깊이는 사색일까, 높이는 사색일까.죽음을 보듬는 사색일까. 안 되겠다. 올라야겠다. 달려야겠다. 세상의 모든 이법들을 묵묵히 품고 있는 산을 오르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세상의 모든 풍경들이 나를 열렬히 갈채하여 생명을 끓게 하는 그 자전거 길을 달리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아내여! 미안하오. 당신은 나를 걱정하여 산을 오르지 말라고,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하지만, 오르고 달려서 아픈 것 보다는 못 오르고 못 달려 마음의 병을 깊여야 하는 나를 널리 헤아려주시라. 바다같이 헤아려 주시라. ![](https://t1.daumcdn.net/cfile/blog/257D0C3A592968F624)
무릎이여! 송구하다. 그대는 또 나를 위하여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 나가야 할까. 희생의 종국에는 보람의 환희가 안겨올 수도 있지 않은가. 그대의 희생이 생명체의 희열감을 북돋우어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그대 존재의 광채임을 헤아리시라.
아내여, 무릎이여! 내 욕심만을 돋우려 하지는 않겠다. 나 또한 당신들에게 조금의 안심과 안정이라도 드릴 수 있도록 애쓰기를 마지않겠다.시간에 탐욕하지 않고 쉬엄쉬엄 오르고 달리겠다. 행보에 집착하지 않고 느긋이 오르고 달리겠다. 오늘은 산을 오를 차례다. 산의 한쪽만을 오르다가 내려와야겠다. 남은 한 쪽은 모레 오르고. 내일 자전거 타기부터는 목표 거리를 줄여야겠다. 오르막을 억지로 밟지 않아야겠다. 그리하여 해거름 내 삶의 여유 공간을 좀 더 넓혀야겠다. 그 여백에 또 다른 의미를 새겨보아야겠다.♣(2017.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