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시 외는 삶(4)

이청산 2016. 12. 26. 14:51

시 외는 삶(4)

 

시상식장에 들어서자 사회자인 이광복 부이사장이 반겨 맞았다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고아주 좋은 일을 하는 분이 오셨다며 문효치 이사장에게 나를 소개했다.

이 선생님잘 오셨습니다우리 문학도 발전시키고 문협의 위상도 크게 높여주셨습니다.”

문 이사장은 잡은 손을 몇 번이나 흔들며 치하해 주었다이 부이사장은문 이사장께서 어느 날 신문을 가져오셔서 문협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면서,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분을 표창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매우 기뻐하시더라고 했다.

표중식 사무총장이 수상자석으로 안내했다수상자들이 모여들었다.한국문인협회 주최로 문학상 시상식이 베풀어지는 자리였다공로패감사패표창장 그리고 각종 문학상을 받을 사람들이 수상자석에 자리했다.

의례 절차로 시상식이 시작되었다한국문학의 최고상과 함께 문학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분들의 공을 기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문 이사장의 인사말씀에 이어 내빈 축사를 거쳐 시상 순서가 되었다.

문협의 발전에 기여한 분들에 대한 공로패감사패 수여에 이어 사회자는 나를 호명하며,

각종 문서기사 등에 들어 있는 문법적 오류를 바로 잡아 정정해 주는 분으로 얼마 전 ㅇㅇ일보에 대서특필된 바 있습니다시의 잘못을 바로 잡는 시 파파라치라는 제목으로

그 게 아니!?” 내가 하려했던 일과 조금은 다른 것 같았지만나를 칭찬해주려는 고마운 말씀과 함께 신문 등 언론 매체에 인용 게재된 시 작품의 오류를 지적하여’ 시문학의 발전과 바른말 사용의 진작에 크게 기여했다는 표창 내용이 읽혀지면서 문 이사장께서 나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함께 온 아들은 아비의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하객들의 박수 속에서 단상을 내려오는데 사회자는 아주 멀리서 온 분이라며 하객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치게 했다기쁘면서도 난감했다.

문학상 시상이 계속 이어졌지만내 머릿속에는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일들의 기억이 오늘 내가 타고 달려온 고속버스의 차창을 스쳐가던 풍경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수필을 쓰고 있지만 시 읽기도 즐겼다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 외기를 좋아했다왼 시는 낭송콘서트에서 관객을 향해 읊기도 했다요즈음 모든 자료의 섭렵이 그런 것처럼 손쉽게 시를 찾아 읽을 수 있는 매체는 인터넷이었다그렇게 시들을 읽다가 보니 사이버 공간에는 원작을 게시자의 기호에 따라 변형시켜버린 시유명 작자를 사칭한 시들이 많이 보였다.

예컨대조병화의 혹은을 제목도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으로 바꾸고어휘도 멋대로 고치고마지막 연은 잘라내 버리기도 했다윤동주의 시가 아닌 것을 윤동주를 사칭하여 게시를 해놓은 것도 있었다그런 것들이 여러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도 마구 전파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들을 내가 어떻게 막을 수는 없었다그런데 칼럼니스트들이나 문학인들이 글을 쓰면서 변형된 시이거나 작자 사칭 시인 줄도 미처 모른 채 버젓이 인용하여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굴지의 신문에서도문학지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신문사와 문학단체에 연락하여 시정을 요구했다독자가 오해를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나아가 우리 문학사에 한 흠결을 지우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글을 게재한 어느 신문 칼럼 필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더니어느 날 담당 기자가 나에게 전화하여 잘못된 시와 그 대처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내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대로 답변을 해주었더니다음 날 신문에詩 파파라치를 아십니까?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내가 말해 준 내용을 정리하여 찬사를 곁들여 실어놓았다졸지에 내가 詩 파파라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 부수가 제일 많은 신문답게그 힘이 대단했다사방 곳곳에서 좋은 기사를 잘 읽었다며 격려 전화가 걸려왔다그리도 대단한 일일까누구나 할 수 있고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 아닐까내가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며칠 뒤 한국문인협회 표 사무총장께서 전화를 했다. ‘이사장님께서 임원들과 의논하여 표창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날 서울의 식장으로 와달라고 했다감사하다고 했지만내가 한 일 같은 실감이 들지 않았다.

한촌 산골에 묻혀 은퇴의 삶에 고즈넉이 침잠해 있는 내가 대처 살이를 어찌 알까서울 살고 있는 아들에게 통기하여 길을 안내하라 하고,그 날 강남터미널에서 아들을 만나 시상식장인 대한민국예술인센터를 찾아갔다작품으로만 알던 유수한 문학인들도 많이 참석했다몇 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 부이사장과 문 이사장께서 각별히 맞아주셨다.

표창장을 받고 단상을 내려오는데 유달리 살가운 눈길을 주는 분이 있었다문협 수필분과위원장이시기도 한 지연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이셨다식이 끝나고, ‘한국수필에서 가끔씩 작품만 대하다가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따뜻한 후대의 말씀을 해주셨다잉걸불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한국문학상을 비롯한 모든 시상이 끝나고 행사를 주최한 분들이며 하객들과 덕담을 나누며 기념 촬영을 했다지 이사장께서는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도 하셨다.

모두 헤어지고 식장을 나와 아들과 함께 터미널로 달리는데 빌딩 임립한 거리의 불빛이 오늘의 박수 소리만큼이나 휘황했다오늘 내가 얻은 말씀들은 내가 두려한 뜻 그대로는 아니었지만그래도 곡진한 환대와 박수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일은 나의 시 외는 삶에 안겨준 또 하나의 선물인 것 같았다시가 내 속에서 다시 생기롭게 곰실거린다.

누리꾼들이 잘라내 버린 조병화의 시 혹은의 끝 구절이 새살 돋듯 새겨진다.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내가 외고 있는 시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었다.(201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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