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타러 나간다. 한촌에 묻혀 새 소리 바람 소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도 아늑한 일이지만, 한 주에 한번쯤은 대처로 나가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따뜻한 일이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7A5D3C584E2CB911)
대처로 나가자면 고샅을 나서 두렁길을 지나 다리를 건너 십여 분쯤 걸어 나가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터미널로 간다.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이른다. 대체로 한두 시간은 타야하는 길을 달려 나간다. 차를 기다릴 일이 더 남았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때로는 환승도 해가면서 최종 목적지에 이른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이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몸소 차를 몰고 달릴 수 있고, 그렇게 몰 수 있는 차가 있다면 차를 타고 타고 또 타야하는 수고를 덜어내어 버릴 수 있고, 시간도 훨씬 적게 걸려 그리운 얼굴들을 얼른 만나 볼 수도 있을 것이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bus03.jpg) 차를 모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요즈음 세상에 있어 ‘편리’란 바로 힘과 시간을 덜 들이는 것에 요체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나는 지금 세상을 아주 불편하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그 불편이 과연 ‘불편’뿐일까를 새겨보고 싶을 때가 있다. 정류장으로 차를 타러 나간다. 차가 이르기 수 분, 십수 분 전까지는 나가서 기다려야 한다. 차가 꼭 제 시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는 몇 분씩은 늦기 일쑤다. 으레 그런 것이라 여긴다.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찍 나를 두고 지나가버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이르러 시외버스의 출발을 또 기다려야 한다. 시내버스는 시외버스의 출발 시간에 맞추어 차를 대어주는 게 아니다. 아주 많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고, 바쁘게 차에 올라야 할 때도 있다. 기다린다. 차타기는 기다림이 태반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 그 기다림에는 더위도 있고 추위도 있다. 불안도 있고 초조도 있다. 지루함도 있고 쓸쓸함도 있다. 때로는 번민과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다시 기다린다. 태반의 기다림으로 차를 탄다. 그 기다림에는 잉걸불 같은 따뜻함도 있고 석간수 같은 청량함도 있다. 오롯한 희망도 있고 오붓한 설렘도 있다. 때로는 아늑한 즐거움과 포근한 평화가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차를 기다리는 데는 새로운 시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가 있다. 차는 항상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지난 어느 날, 어느 해의 시간이 아니라 미래가 되고, 오늘이 되고 이 순간이 될 시간 속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시간, 새로운 그리움과 함께 하는 이들이다. 이들과 함께 새로운 대화를 엮어나가고 새로운 마음을 섞어나간다. 그 시간들은 나의 새로운 세상이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세상이고 새로운 그리움을 결을 세상이다. 차를 몰고 달린다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운전하여 달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달려가서도 목적지에서 새로운 시간,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겠지만, 차를 기다려 타는 만큼 준비된 마음으로 열어가는 시간이요, 세상이 될까. 기다려 타고 온 만큼 기쁘고 반가울까.![](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bus06.JPG) 기다림의 시간은 차를 탈 때까지만이 아니다.차를 타고 달려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가 다 기다림의 시간이다. 차 안의 시간은 새로운 만남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이면서 자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창밖 풍경을 감상하든, 시를 외든, 사색에 잠기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무엇을 해도 좋은 시간이다.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그런 자유의 시간을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풍경을 감상하기보다는 신호등을 잘 지켜봐야 하고, 사색에 잠기기보다는 안전 운전에 몰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질주로 나아가는 길에 기다림의 즐거움이 있을까. 차를 기다려 타고 달려가 정다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기다림이 얻을 수 있는 덤의 나긋한 선물이 있다. 정 담은 술잔을 그윽이 기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한 잔의 술에도 조신(操身)을 마다 않아야 할 운전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얼마나 살가운 선물인가. 어느 시인은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그러나 ‘기다림’이 바라는 것은 언제나 ‘만남’이다.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시간, 새로운 세상,새로운 그리움과의 만남을 위하여 나는 늘 기다림의 차를 탄다.
그 새로움들을 바라며 오늘도 차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조용히 시를 왼다.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조병화, ‘늘, 혹은’)라며 외고,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이라며 외기도 한다. 기다림이 온기로 포근해진다. 오늘은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이해인, ‘12월의 노래’)라는 시를 외고 싶다. 추위도 따뜻해질 것 같다. 오늘도 따뜻한 기다림의 차를 탄다. 새 세상을 향해 기다림을 달려 나간다.♣(2016.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