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사랑의 힘

이청산 2015. 7. 26. 18:24

사랑의 힘

 

2002년 연평해전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당시 참수리호 부정장 이희완 중위의 결혼에 얽힌 비화를 소개한 기사(2015.7.21. 조선닷컴)가 보인다. 이 중위의 나라를 위한 헌신의 뜻을 높이 산 어느 결혼정보회사 대표가 이 중위의 배우자 찾기에 깊은 사명감을 가지고 중매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정보를 다 모아 그 중에서 이 중위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몇 사람을 가려 뽑았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선정한 몇 명과 선을 보게 하여 국가유공자 집안의 한 여성과 인연이 닿게 되었는데, 지방 명문대를 나온 그 여성은 원만한 가정환경, 맏딸로서 책임감과 포용력, 긍정적이고 배려하는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이 중위와 그 여성은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되어 경상도와 전라도를 오가며 한 해 동안의 연애 과정을 거친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 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서해교전의 영웅이란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꾸미지 않고 감추지 않는 건강하고 소탈한 미소가 좋았다며 처음 만나던 순간을 회억했다.

그 결혼도 십여 년 전의 일로 지금은 두 자녀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이 중위는 소령으로 진급하여 각종 안보 강연도 하며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축복할 일이다. 

이 중위의 결혼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고 있을 즈음에, 어느 신문에 우리는 경험 못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프러포즈라는 큼지막한 제목에 두 다리를 잃은 참전 용사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이 만들어준 감동 이벤트라는 부제와 함께 한 상이용사가 여자 친구에게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장면이 커다랗게 실려 있는 기사가 보였다.(조선일보.2015.8.13.)

2012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 폭탄 공격을 받고 두 다리를 잃은 상이용사 타일러 제프리스(26)가 부시 전 대통령 내외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여 청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버지 부시는 자신이 서문을 쓴 책 "부러지지 않는 유대(Unbreakable Bonds): 부상 장병과 강인한 어머니들"에 등장한 상이용사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제프리스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제프리스는 아버지 부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청혼하고 싶은 여자 친구가 있다."라고 말하자 아들 부시가 "지금 여자 친구를 불러 이곳에서 청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프리스는 심장이 마구 뛰는 흥분을 진정시키며 여자 친구 로런 릴리(24)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릴리가 도착하자 아버지 부시는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여성이군요."라며 그녀를 환대했다. 부자 부시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프리스는 릴리 앞에 무릎을 꿇고 그가 가지고 다니던 반지를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와 결혼해줄래?"라고 말하자 릴리는 주저 없이 "예스!"를 외쳤다.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행복해 했고, 아버지 부시는 평생 함께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축원해 주었다고 한다.

이 중위와 제프리스는 모두 전장에서 몸을 다친 상이용사들로, 이 중위는 주위의 정성 어린 관심으로 사랑과 결혼에 성공했고, 제프리스는 전 대통령들의 관심과 성원으로 청혼에 성공했다. 이 두 성공의 공통점은 여성 쪽의 깊은 배려와 이해라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사랑이 아무리 숭고하고 거룩한 것이라 한들, 이들 여성의 진심 어린 이해와 배려가 없다면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일 수 있다. 세상에는 심신이 건강하면서 멋진 사람들도 많을 터이거늘, 불구의 남자를 사랑하려는 마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념이나 정서로든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여성들은 그 이해를 바탕으로 사랑을 이루어내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행복 또한 이루어냈다.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중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 )을 만난 제인 와일드는 그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지만, 호킹은 루게릭병을 얻어 2년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인 와일드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1965년 호킹과 결혼한다. 전신이 마비된 채 투병을 계속하며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가 된 호킹과 25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호킹을 돌보며 세 자녀를 두고 살아오다가 1990년부터 별거하여 1995년에 이혼을 하게 된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지만 제인은 호킹과 결혼생활 중에 조너선 존스라는 오르간 연주자와 사귀기도 했으며 이혼 후에는 그와 결혼했다.

제인과 이혼한 호킹은 19959월 그를 늘 정성껏 간호해주던 일레인 메이슨과 재혼하지만, 일레인은 호킹에게 신체적인 학대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편치 못한 부부생활을 하다가 결혼한 지 11년 만에 또 이혼하게 된다. 일레인은 가혹 행위로 기소되었지만 호킹은 그녀의 행위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모두 호킹의 결혼을 실패라고 말했지만 호킹은 오히려 두 번 사랑을 했다.’라고 했다.

결혼의 실패든, 두 번의 사랑이든 사실 호킹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을 것이다. 두 번이나 파경을 맞았던 이유가 이혼 사유로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라든지 또는 생활 여건에 따른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혹 전신 불구가 되어 있는 호킹의 신체적인 조건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신체의 불편을 바라지하며 사는 사이에 사랑이 식어가 결국은 파국에 이르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에 있어서 육체란 무엇일까? 사랑이란 마음으로 하는 것일까? 몸으로 하는 것일까? 사랑은 오직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은 없이 몸만 있는 사랑이란 사랑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몸이 받쳐주지 못하는 마음만 있는 사랑 또한 온전하지 못한 사랑이라 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할 때 건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면, 결국 호킹의 두 여인들은 그의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인해 건강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떠난 것은 아닐까.

흔히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한다. 그 힘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의 힘으로 갖은 간난과 시련을 극복해낸 일들이며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 이 중위와 제프리스의 여인들도, 호킹의 여인들도 그 힘으로 사랑하고 결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킹의 여인들은 그 힘을 끝내 지켜내지 못했다. 물론 개인의 선택 문제요,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힘이 찬란한 빛을 발하게 하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도 사랑의 힘은 어디에선가, 누구에게선가 위대성을 발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 힘이 모여 인간의 뜻있는 역사를 이루게 하고, 삶의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 힘의 빛나는 주인공들 중의 한 사람들이 바로 이 중위와 제프리스 그리고 그들의 여인들일지 모른다.

그들은 눈부신 사랑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직도 사랑으로 살아야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그 모든 날들에 사랑의 위대한 힘이 발휘되어 세상을 다하는 날까지 아름다운 사랑, 숭고한 사랑이 그들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진실로 찬란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를 빌면서 믿음을 가져 본다. 사랑의 힘이란 실로 얼마나 위대한 것이던가.(2015.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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