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곡원림답사기

구곡원림을 찾아서·1 <석문구곡 1>

이청산 2013. 3. 28. 15:33

구곡원림을 찾아서·1
-찾아나서기를 시작하며

 

 어느 날 신문을 뒤적이다보니 구곡 문화의 연구와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문경구곡원림보존

가 창립되었다는 기사가 보였다. 문경문화원에서 뜻을 함께 하는 내빈과 회원들이 모여 창립총회를 가졌다며, 구곡원림(九曲園林)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단체라고 소개했다.

원림이란 산천의 넓은 공간 속에 있는 자연 정원으로 중국 남송 때의 주자(朱子)가 성리학을 완성한 학문적 성지라 할 무이산(武夷山)의 산자수려한 아홉 굽이 경치에 침잠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가꾸어나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주자의 학문과 사상을 높이 받들어 사상적 모델로 삼던 사람들이, 자신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하여 주자처럼 아홉 굽이 경치를 경영하며 맑은 삶을 추구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구곡원림이 생겨났다. 전국적으로는 150여 곳, 경북에 43곳이 있는 가운데 문경에 7곳이 전해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문경에 경치 좋은 곳이 많다는 뜻이겠다.

문경의 맑고 아름다운 풍광을 사랑하여 찾아와 두그루부치기 삶을 살면서, 그 많은 구곡원림을 알아보고 옛사람들의 자취를 따라 탐승해 보는 것도 즐거운 삶을 만드는 일의 하나가 될 것 같아 전국에서 맨 처음 생겨났다는 보존회의 문을 두드렸다.

창립 소식을 듣기 전부터 구곡원림에 대한 작은 관심은 없지 않았다. 숙종·영조 연간의 문인 옥소(玉所) 권섭(權燮 1671~1759)이 만년을 문경 화지동(지금의 문경읍 당포리)에 의탁하면서 화지구곡(花枝九曲)’을 경영하였는데, 그 중 6곡에 해당하는 산문계(山門溪)의 절경이 댐건설로 인하여 무참히 파괴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했던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올라 보존회의 창립이 반갑기도 했다.

문화원에 물어 회장의 연락처를 알아 구곡원림을 배우고 싶다 했더니 이만유 회장께서 반갑다며 함께 뜻을 모아보자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공부도 하고, 답사도 할 것이라 했다.

문화원에서 모이는 두 번째의 모임을 찾아갔다. 그 날은 구곡원림에 관한 설명회를 열고 탐사계획을 세우며 회원들 간의 친화를 도모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나처럼 새로 참여하는 몇 사람을 비롯해 20여 명의 회원이 모였다. 문경과 인연의 날은 얕지만 여생을 묻을 곳이라 사랑을 깊이기 위해 찾아 왔노라며 인사를 나누었다. 구곡원림으로 가는 첫걸음 인사였다.

이만유 회장은 구곡원림에 대한 연구와 보존활동을 통하여 구곡문화에 담겨 있는 인문, 자연 지리적 문화요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스토리텔링 소재와 교육 자료로 적극 활용해 나갈 계획이라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광 소재가 되게 하여 문경의 정체성을 높이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 하는 문화 단체가 되도록 하자고 했다. 그가 이미 답사한 구곡원림의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이러한 곳들을 향해 다리품을 팔면서 연구하고 즐기고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며 다음 모임부터 현장을 찾아보자고 했다.

친화의 시간을 통하여 서로 마음과 얼굴을 익혀서 구곡원림을 향한 사랑과 결의를 다지자고 했다. 자리를 옮겨 오찬을 마치고,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설 명절 분위기를 살려 석문 팀과 선유 팀으로 나누어 윷놀이 판을 벌였다. 석문구곡과 선유구곡을 상정해 팀 이름을 붙인 것인데, 서로 이기락 지락 하는 사이에 구곡원림이 한층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나 세 번째의 모임이 열렸다. 탐사 첫 순서로 석문구곡에 대한 해설과 토론을 나눈 뒤 오찬을 함께 하고는 길을 찾아 나섰다. 원림 속의 옛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을까. 호기심도 기대도 적지 않았다.

문경 산양면과 산북면 일대의 금천과 대하천을 따라 약 9km에 걸쳐 전개되고 있는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1715-1795)이 경영한 석문구곡(石門九曲)을 더듬어 나아갔다.

산양 금천의 금양교를 지나 제1곡 농청대(弄淸臺)를 찾았다. 산양면 존도리 금천 가에 자리 잡고 있는 농청대 위에는 근품재의 스승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60)이 학문을 닦았다는 농청정이 금천의 맑은 물을 즐기고 있다, 물과 소나무는 한결 같이 푸르고 맑았지만, 농청대 추녀 밑에 커다란 말벌집이 주인 없는 빈 정자를 지키고 있었다.

태고암 바위 위에 고고히 앉아 있는 농청정을 뒤로 하고, 물길 따라 학해선(學海船) 거슬러 올리며 스승을 추앙했던 근품재의 자취를 따라 현리에 자리한 제2곡 주암(舟巖)을 찾아갔다.

헐고 새로 짓고 있는 녹문리 바위 위의 고문겸(高文謙 1834~1898)의 북파정(北坡亭) 정자터와 석혈(石穴) 바위를 지나 1935년 채묵진(蔡默鎭)과 채홍의(蔡鴻儀)가 할아버지 7형제를 위하여 세웠다고 하는 금천 가 부벽(浮壁) 위에 있는 경체정(景棣亭)에 들렀다가 현리교를 건너 물과 바위 경치가 잘 어울리고 있는 경체정을 다시 바라보며 산북면 용창길에 자리한 주암(舟巖)을 찾았다.

주암은 채헌이 구곡을 즐기고 있을 당시에는 금천 가에 있었다지만 강산이 변전을 거듭하는 사이에 주암 앞을 흐르던 물길은 연못이 되어 남아 지난날의 사연을 전해주고 있었다. 주암은 이름 그대로 바위가 기묘하게도 배 모양을 짓고 있는 형상인데, 그 배의 이물 위에 주암(舟巖) 채익하(蔡翊夏; 1573-1615)의 학덕을 기려 후손들이 세웠다는 주암정((舟巖亭)이 고즈넉이 서 있었다. 능소화 노목이 담을 싸고 있는 문을 들어 주암정에 올라 한눈에 드는 금천이며 경체정을 조망하고 있으려니, 인근에 살면서 정자를 관리하는 10대손 채훈식(蔡勳植)씨가 나와 길손을 맞는다. 맑은 경관 속을 사니 마음도 맑은 것 같다.

주암을 나서 현리교 건너 금천 왼쪽 산 아래에 있는 제3곡 우암대(友巖臺)를 찾아간다. 마른 풀숲이 얼기설기 얽혀진 언덕 위에 순조 1(1801) 채덕동(蔡德東)이 선조인 채유부(蔡有孚)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우암정(友巖亭)이 서 있는데,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는 듯, 마른 덩굴풀과 거미줄이 집을 온통 휘감고 있다. 물길마저 돌려져 금천도 떨어져 나 안고 뒤란 한 모퉁이에는 두텁게 먼지 앉은 지함 속에 후손 어느 자녀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하던 교과서며 읽던 책들이 십여 년의 세월을 안고 있었다. 운치도 그윽했을 세월은 흘러가고, 지금의 정경이 하도 딱하여 일행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잡풀이며 세월의 더께를 털어내고 걷어내었다.

그 좋은 경물도 세월의 위력 앞엔 낡고 닳아갈 뿐인 무상을 느끼며 현리교를 다시 건너 들판을 가로지르는 농로를 잠시 달려 금천 새들보에 이른다. 맑은 봇물 건너로 보이는 바위 벼랑이 제4곡 벽입암(壁立岩)인데, 지난날엔 바위도 우뚝하고 봄이면 벼랑의 붉은 꽃이 바위 아래의 넓고 맑은 물을 붉게 물들였다고 하나, 지금은 세월에 깎였는지 벼랑도 옛날 같지 않고 물도 넓지도 깊지도 않아 지난날의 경관은 상상으로 헤아릴 뿐이다.

세월의 무상감에 다시 잠길 즈음에. 이만유 회장이 손을 들어 북서쪽의 먼 산을 가리킨다. 산북면 약석리 마을 뒷산인 저 봉우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서로 다투어 승천하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제5곡 구룡판(九龍坂)이란다. 그 산기슭에 평평한 곳이 있어 마을을 세우고 구룡판이라 하였다는데, 지난날의 사연을 새기며 그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하는 사이에 해는 서산마루를 거웃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제6곡 반정(潘亭), 7곡 광탄(廣灘)이며 제8곡 아천(鵝川)의 물길을 떠내려 오는 도화(桃花)를 따라 찾아간다는 마지막 굽이 석문정(石門亭)은 다음의 때를 기약하면서 여운으로 남기고, 오늘 첫 걸음은 이쯤해서 길을 접기로 했다. 훼철된 지 140여 년 만인 2011년에 복설했다는 근동의 근품서원을 잠시 둘러보며 조선 명현의 고풍 향기에 젖다가 귀로를 달린다.

오늘은 구곡원림 찾아 나서기의 프롤로그라 할까. 지고한 한 선비의 고아한 자취의 한 부분을 어설프게 색독(色讀)한 걸음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의 걸음이 구곡의 멋과 정신에 한결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구곡의 멋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란 인간 본래의 맑은 정신을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거미줄이 얽히고 더께가 두터이 끼어 있는 선인들이 놀던 자리는 본연의 맑은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인정 세태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돌아가는 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오늘 우리의 행보가 우리 삶에 끼어 있는 거미줄을 걷어내고 더께를 털어낼 수 있는, 작지만 뜻 있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노을빛 짙어지는 귀로를 달려 나간다.

저 노을빛이 아침 맑은 빛으로 태어나듯이 우리의 삶도 다시 맑은 빛으로 새로이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2013.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