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한촌의 즐거운 날

이청산 2013. 3. 5. 06:33

한촌의 즐거운 날

 

마을회관이 분주해졌다. 대형 버스가 들어오고 승용차들도 줄줄이 뒤를 이었다.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버스는 이동 치과병원 차량이고, 승용차에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타고 왔다. 치과 종합병원이라 과목별 의료진이 모두 온 것 같다. 차에서 내려 봉사단임을 나타내는 유니폼들을 입고, 회관의 마당에, 방에 기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 이가 아파 준 건가. 엊그제부터 약간씩 통증이 느껴지던 오른쪽 아랫니가 오늘 자고 일어나니 못 견디게 아팠다.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죽으로 다시 끓여 겨우 몇 술을 떴다.

이장의 목소리가 마을 스피커를 타고 울려 나왔다.

오늘 대구에 있는 ㅇㅇ치과병원에서 우리 마을에 치과의료 봉사를 나옵니다. 이를 치료하실 분은 10시까지 회관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며칠 전부터 봉사 활동을 나온다는 걸 알긴 했지만 내가 치료를 받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반갑고도 즐거운 우연이다.

서둘러 회관으로 갔다. 동네사람이 한둘씩 모여 들기 시작했다.

이리 고마운 일이 있는가. 이 먼 곳까지……!”

사람들은 이 먼 두메 한촌까지 많은 의사선생님들이 많은 장비를 동원하여 의료봉사를 하러 왔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거의 모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라 모두들 치아가 성할 리 없고, 늘 불편을 느껴 오면서도 시내로 진료 한 번 받으러 가기가 쉽지 않았던 터에 이렇게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것도 크고 유명한 병원에서-.

사회 공헌 활동의 하나로 가끔씩 의료 취약지역을 다니면서 진료 봉사를 한다고 했다. 때로는 문화 공연이며 해외 봉사활동도 한다고 했다.

제일 먼저 여든 다섯의 웃실할아버지가 진료를 받았다. 보철한 이가 불편하여 보철 상태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차 안에 설치된 진료대에서 보철 전문의가 온갖 기구를 이용하여 교정에 심혈을 기울인다.

내 차례가 되었다. 이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 봐야겠다고 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첨단 카메라로 환부를 찍었다. 치근 부분에 염증이 생겨 있어 신경 치료를 해야 할 것이라 했다. 의자에 눕게 하고는 마취부터 시작하여 단계별로 치료를 해나가는데, 갖은 정성을 다 들이는 것 같았다.

 

평소 진료를 할 때에도 성심을 다해 하겠지만, 봉사로 하는 진료여서 더욱 깊은 마음을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진료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료를 끝내고 증상이며 유의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는 데서 그 깊은 마음들이 역력히 드러나 보인다. 정성을 다하는 의사를 따라 간호사도 갖은 친절을 다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고 의사와 간호사의 분주한 손길도 쉼 없이 이어졌다.

고맙기도 해라, 아들인들 딸인들 이리해 주겠나! 허허허

회관 방은 환자와 의사, 그리고 진료를 도우는 간호사들로 가득 찼다. 방 안은 웃음소리가 넘쳐났다. 환자와 의사가 하나로 어우러진 웃음이다.

세상에는 험악한 사람도 많고 혐오스런 일도 많지만, 따뜻한 사람도 많고 아름다운 일도 많다. 거친 세상살이 속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이 있고 아름다운 일들을 하는 사람이 있어 그래도 세상을 살만하게 하고 있다. 따뜻한 사람이란 사랑을 나누며 사는 사람일 것이며, 아름다운 일은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은 따뜻한 사랑이며 아름다운 일을 다 바라고는 있지만, 스스로의 일로 실천에 옮기기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 쉽지 않은 일을 쉬운 듯 즐거운 듯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이 한촌을 찾은 사람이다. 오늘 이 사람들은 생색을 내기 위해서거나 전시성 행사를 하러 찾아온 사람들 같지는 않다. 그들의 말에서,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진득한 따뜻함이 묻어나고 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보면, 간혹 환자를 자신의 영리 도구로만 생각하는 의사를 볼 때가 있다. 병고로 심약해져 있는 환자에게 그런 의사는 깊은 수렁 같은 절망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 우리를 진료해 주는 의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거기다가 따뜻하고 친절한 말과 마음은 얼마나 큰 감동을 주고 있는가.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는 일이라서 고맙기도 하지만. 따뜻한 마음들이 더욱 고맙다.

몇 달을 두고 앓고만 있었던 이를 말끔히 치료하고 회관을 나서는 원골할매-.

오늘 우리 마을 참 즐거운 날일세! 이런 좋은 날이 또 있겠나! 하하하

오늘 같이 좋은 날, 고마운 날이 또 있으랴. 원골할매의 웃음소리가 봄날의 즐거운 새소리처럼 회관의 하늘을 날아간다.

아침에 그리도 아프던 이가 어디로 갔는가. 입 안 한가득 맑은 침이 고인다.(20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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