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병 속의 시간

이청산 2011. 11. 12. 15:44

병 속의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가면 "Croce’s Restaurant & Jazz Bar (크로치 식당 겸 재즈 바)"란 이름의 술집을 겸한 식당이 있다. 포크송 가수였던 짐 크로치의 부인 잉그리드 크로치(Ingrid Croce)가 운영하는 곳이다.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남편 짐 크로치(Jim Croce)를 기리기 위해 1985년에 문을 연 이 식당에 짐 크로치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찾아와 그를 추모하며 그의 음악과 추억에 젖는다고 한다.

포크 뮤지션(folk musician) 짐 크로치는 1943110일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코디언을 곧잘 다루었던 그는 곧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대학 초년 시절에는 밴드를 조직하여 활발한 음악활동을 해나갔다. 그는 음악생활을 하던 무명 시절에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망치에 오른쪽 손가락을 잃었지만 그 장애를 무릅쓰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했다. 그는 터프 가이의 외모를 지녔지만 목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그의 부인이 된 잉그리드는 열다섯 살의 십대 소녀였을 때 스무 살 대학생이던 짐 크로치를 만났다. 두 사람은 첫 눈에 사랑에 빠져 함께 듀엣 활동을 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듀엣으로 첫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자 뉴욕 음악계의 현실에 대한 실망을 안고 짐 크로치의 고향인 펜실베니아주 시골로 내려간다. 화물트럭을 몰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 않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그 때 만난 많은 사람들에 관해 쓴 노래들이 나중에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1969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프로로 데뷔한 짐은 1972‘You Don't Mess Around with Jim’으로 실질적인 포크 뮤지션으로의 그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 1971년에는 싱글 "Bad Leroy Brown"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려놓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1973" Time In a Bottle(병 속의 시간)"을 발표했는데, 이 곡은 1971년 태어난 그의 외아들 에이드리언 크로치(Adrian James Croce)를 위해 작곡했다고 한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 모을 수 있다면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Is to save every day                                       매일 매일을 모아두는 일이죠

'til eternity passes away                              영원이 지나갈 때 까지

Just to spend them with you                      당신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만약 영원히 세월을 지속시킬 수 있다면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만약 말만으로 소원이 이뤄질 수 있다면

I'd save every day like a treasure and then 매일 매일을 보물처럼 모을 거예요, 그리고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역시 그 시간을 당신과 함께 보내겠어요.

 

But there never seems to be enough time 하지만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To do the things you want to do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에

Once you find them                                           일단 하고 싶은 일들을 찾으면 말이죠.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난 충분히 찾아봐서 알아요

That you're the one I want to go                당신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란 걸

Through time with                                            세월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죠

 

If I had a box just for wishes                         만약 소원을 담아둘 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And dreams that had never come true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담을 수 있다면

The box would be empty                               그 상자는 텅텅 비어있을 거예요

Except for the memory                                  당신이 거기에 어떻게 답했는지에 관한

Of how they were answered by you           기억을 제외하고는.

 

이 노래는 발표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불꽃처럼 피어오르던 명성은 채 익기도 전에 아쉬움만 남긴 채 허망하게 스러져 가야했다. 그의 나이 고작 30세이던 1973920일 루이지애나주에서 공연을 마치고 텍사스 상공을 날던 중에 조종사의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짐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숨지게 된다. 그 날은 바로 짐의 세 번째 앨범이 나오기 바로 하루 전날이었는데, 그는 안타깝게 숨졌지만 그 앨범은 히트곡을 세 곡이나 내는 등 크게 성공하면서 그의 넋을 달래주었다.

짐의 첫 번째 앨범에 수록됐던 "Time in a Bottle (병 속의 시간)"은 그가 숨진 1973년 말 미국 ABC 방송이 제작한 텔레비전 영화 "She Lives (그녀는 산다네)"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그 해 12월에 2주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게 된다.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 모을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매일 매일을 모아두는 일이죠/ 영원이 지나갈 때 까지/ 당신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라 노래한 것은 짐 크로치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If you dig it, do it. If you really dig it, do it twice.(만약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라. 만약 정말로 좋아한다면 두 번씩 하라.)"라고 말한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면서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겠다는 생애에의 열정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시간은 늘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에/ 일단 하고 싶은 일들을 찾으면 말이죠.”라는 말들이 그러한 짐의 내면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짐 크로치는 숱한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 음악을 추구했고,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마침내는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리는 성공한 음악인으로 명성을 얻게 된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시간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말라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간곡한 사랑의 고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아들과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다. 매일 매일의 시간들을 병속에 보물처럼 소중하게 모아두고 싶은 까닭은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당신이야말로 진정 내가 원하는 사람, 세월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임을 사무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동짓달 긴긴 밤의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펴리라.”라고 한 황진이의 절창(絶唱)을 연상하게 한다. 이 또한 사랑하는 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노래가 아니던가. 사랑하는 임과 함께 하기 위해 시간을 아껴서 모아두고 싶은 심정은 시()의 고금과 양()의 동서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노래들은, 시간은 일회성과 순간성을 지닌 것이지만. 사랑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이어서는 안 될 것임을 절규하는 노래라고도 할 수 있다. 영원불변의 사랑이란 바로 병 속의 시간그 속에 있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어찌 하였거나 짐은 인간으로서의 생애는 고난으로 시작하여 불운으로 끝을 맺었지만, 가수로서의 생애는 불행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노래들은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려 주었고, 긴 생명을 가진 노래로 남아 지금도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팬들과 수많은 연인들의 가슴을 적셔 주고 있기 때문이다.

잎새와 가지가 빛깔과 모양을 자꾸 바꾸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가고오기를 멈추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흐르고 변해 가고 있다. 우리의 생애와 사랑은 어디쯤 흐르고 있는가. 무상의 시간을 그리움만 실은 채 안타깝게 흘러가고 있을까.

우리는 이 때 짐 크로치의 병 속의 시간’, 그 유장한 선율에 젖고 싶다.

……

만약 소원을 담아둘 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을 담을 수 있다면

그 상자는 텅텅 비어있을 거예요

당신이 거기에 어떻게 답했는지에 관한

기억을 제외하고는.”(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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