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 김현성 노래

이청산 2011. 6. 29. 22:29

 

                      사평역에서

 

                                                          곽재구 시/김현성 노래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히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 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 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 사평역에서 [김현성 곡, 노래]


 
*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는 임철우의 [사평역]이란 소설로도 적혀진 작품인데,
시의 서정성이 그대로 소설에 녹아있고,
단편적으로 나와 있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사평역은 실재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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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나마 나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기차가 지나가듯이 벌판이 흔들리고
잘 익은 들녘이 타오른다
지는 해가 따가운 듯 부풀어 오르는 뭉게구름
기차를 기다린다
지나간 일조차 쓰리고 아플 때에는
길 위가 편안하리라

 

김수영 ‘간이역’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