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月刊文學』2010년12월호 발표 「제주 용눈이오름」

이청산 2011. 1. 13. 13:08

 

 

 

 

 

 

 

제주 용눈이오름

 

제주도에 김영갑이라는 사진작가가 살았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를 드나들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점차 제주도에 빠져들어 1985년에 촬영하러 와서는 아예 정착해버린다. 2005년 루게릭병으로 마흔여덟 살에 요절할 때까지 이십 년 간을 끈질기게 제주의 아름다운 속살들을 필름에 담아냈다. 죽기 전에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폐교에 갤러리 ‘두모악’을 꾸며 그의 사진을 전시하고, 죽어서는 그 갤러리 마당의 감나무 아래 가루가 되어 묻혔다.

그가 제주도에 정착한 초기에는 제주의 풍물을 담는데 마음을 쏟다가 그 다음에는 제주의 풍광에 빠져들어 마라도의 모습이며 바다의 표정들을 찍었고, 마지막으로 눈을 돌린 곳이 중산간에 있는 오름들이었다. 오름을 깊이 사랑하던 김영갑을 ‘그리운 성산포’의 이생진 시인이 참 좋아했는데, 시인은 김영갑을 이렇게 생각했다.

 

시는 무엇이며 사진은 무엇인가
나는 시로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그대는 사진으로 시를 찍고 있었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오름에 올라가
그대의 발자취를 읽고 있네.

         -이생진, ‘김영갑 생각’

 

이렇듯 김영갑은 사진으로 시를 찍는 오름의 시인이었다. 김영갑이 유난히 사랑했던 오름이 바로 용눈이오름이었다. 표고 80여 m의 나지막한 이 오름은 용이 누워 있는 형세라 하여 용눈이오름이라 하며 용와악(龍臥岳)으로 적기도 했다. 산 복판이 크게 패어 있는 것이 용이 누웠던 자리 같다고 해서 그리 불렀다기도 하고, 정상의 분화구가 용의 눈처럼 보인다 하여 그리했다고도 한다.
사진작가 김영갑은 왜 그토록 유난히 이 오름을 사랑했던 것일까. 20년 동안을 찍어도 못다 찍었다고 했을까. 내가 용눈이오름을 찾았던 것은 김영갑이 세상을 떠난 지 5주기가 되는 5월29일, 그 이틀 뒤 5월이 다 가는 날의 햇빛 맑은 하오였다.
용눈이오름 앞에 섰을 때 별안간 명치끝이 아릿해 오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선이 저토록 감미롭고 부드러울 수 있을까. 마치 나신으로 엎드려 있는 여인의 몸 어느 한 부위처럼 천의무봉의 구김살 없는 선이다. 능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능선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사면의 선도 여인의 살진 젖무덤 선처럼 부드럽고도 고혹적이다.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기만 했다. 감히 밟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을 것 같고, 아무나 범접하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오름 언저리는 주위로는 울타리를 둘러치고 탐방로 들머리에는 벽을 쳐서 계단을 놓아 층계를 오르고 내려서야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다. 자동차며 짐승들이 함부로 자국을 남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탐방로에는 코코넛 껍질을 가공하여 만든 친환경 오름 매트가 깔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 분해되어 식물의 거름이 될 것이라 한다. 아름다운 곳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한 배려다.
친환경 매트를 밟으며 오른다. 제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깃들인 산담을 둘러친 무덤들도 용눈이오름의 한 풍경을 이룬다. 오를수록 선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져도 그 부드러운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 높지도 않고 사면도 급하지 않아 평원이요, 초원처럼 느껴진다. 겨이삭, 개민들레, 잔디, 제비꽃, 할미꽃이 많이 서식한다지만, 오늘은 노랗게 꽃핀 개민들레가 비단옷의 무늬처럼 사면을 덮고 있다. 사면 중간쯤에 보이는 억새 군락도 여인이 살짝 걸친 속옷 자락 같다.
선의 모습만 부드러운 것이 아니다. 풀이며 흙도 여인의 속살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다. 그 부드러운 속살로 사면을 이루고 선을 이루니 오름의 모든 것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영갑이 용눈이오름의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것을 보고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고백한 것이 실감으로 다가온다. 오늘 나도 그 관능미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그 관능의 아름다움에서 꿈 깨듯 깨어나고 보면 다시 느껴지는 것은 어머니의 옷자락이다. 사면은 넉넉히 둘러 입은 치맛자락 같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것은 저고리의 둥실한 배래 선 같기도 하다. 용눈이오름은 천상 여인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능선 위에 이른다. 또 한 세상이 펼쳐진다. 다시 부드럽게 흘러내린 계곡을 사이한 건너편 오름에서 다시 선의 향연이 펼쳐진다. 뛰어가 안기고도 싶고, 그 위에 누워 잠이라도 들고 싶다. 한 여인이 그려낸 선 위를 떨리는 걸음으로 걸으며 남의 애인을 훔쳐보듯 슬쩍 건너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 그 부드러운 선 위에 떠 있는 성산일출봉이 더욱 정겹다.
풍경은 걸음에 따라 변환을 거듭한다. 오름 아래서 볼 때는 하나의 아름다운 곡선으로만 보이던 것이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엇갈리게 놓여진 서너 개의 봉우리들이 한데 울려 다시 아름다운 곡선을 자아내면서 절경을 이룬다. 마침내 꼭대기에 오르니 서사면 쪽에 커다란 주발 모양으로 오목하게 패어있는 아담한 기생화산과 원뿔 모양의 알오름이 보인다. 어떤 조각가의 손이 저리 정겨운 선을 빚어 낼 수 있는가. 여러 개의 선이 어울리되 어지럽지 않고, 여러 모습의 오름들이 자리하되 조화가 깨지지 않는 저 조각품들이야말로 신의 손이 아니고서는 어찌 이루어질 수 있으랴.
어느 오름을 보아도 그 살결이 정결하고도 매끈해 보인다. 거친 데란 없이 보드랍고도 반드러워 마치 서너 살 어린아이의 흠지지 않은 살결 같다. 1960년대에 제주도를 찾은 한 권력자가 오름을 보고 민둥산이라 하여 나무를 심으라고 했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용눈이오름만은 마을 공동 목장으로 쓰인다하여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심은 나무들이 삼나무라고 하는데, 군데군데 삼나무들 우뚝우뚝 서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스럽다. 하늘이 이 아름다운 오름을 지켜 준 것 같다.
이 풍경 위에 풀잎이 돋아나거나 마른 풀이 날리면, 꽃들이 피거나 풀잎들이 무성해지면,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햇빛이 쏟아지거나 구름 그늘이 내려앉으면, 바람이 불어 풀잎이 춤을 추거나 고요와 정밀이 오름을 덮을 때면 이 풍경들은 어떤 표정들을 연출할까. 아래서 보면 어떤 표정이고 위에서 보면 무엇이 보일까, 속에 들어 보면 무엇이 느껴지고 비켜나서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진의 시인 김영갑이 20년을 찍어도 다 못 찍었다 하는 것이 공연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용눈이오름은 혼자서만 고고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오름 주위로 가슴이 활짝 열리는 광활한 벌판이 펼쳐지는데, 손자봉, 다랑쉬오름, 이끈다랑쉬오름, 동거미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과 정답게 이웃하고 있고, 평원 위에 숲을 이루고 서 있는 갖가지 나무들, 그리고 한가로이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 하얀 프로펠러와 함께 널따랗고 시원한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정결하고도 평화롭고, 포근하고도 정밀한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서 누가 전쟁을 이야기하고 폭력을 말할 수가 있는가. 누구를 모함하고 어떤 이를 배척할 수 있는가. 이 풍경 어디에 음모가 있고 부정이 있을 수 있는가. 누가 증오를 키우고 시기를 일으킬 수 있는가. 어느 곳에 서러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가. 나는 지금 평화 아니면 순결, 사랑 아니면 순수 속에 서 있을 뿐이다.
김영갑이 찍고자 했던 것도 그 순결과 순수의 미학이 아니었을까. 거칠 것 없고 흠진 데 없이 펼쳐지던 초원의 순수, 그 순수가 빚어내는 선의 아름다움을 담아 내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이생진 시인이 읽고자 했던 김영갑의 발자취도 그 미학을 향한 그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두고 떠나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용눈이오름을 내려온다. 몇 번을 돌아보면서 내려오는 용눈이오름은 시시로 다른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지만, 그 부드럽고 포근한 선과 살결은 변함이 없다.
세상에는 지금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래, 이 풍경과 함께 있고 싶다. 이 풍경 속을 살고 싶다.
김영갑처럼 그렇게 빠지고 싶다.♣(201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