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퇴임식에서

이청산 2011. 3. 3. 14:56

퇴임식에서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명함을 새겼다. 직함 대신에 '靑遇軒'이라는 집의 이름을 넣고, 홈페이지 주소와 집 주소를 넣었다. 직함으로 명함을 새기던 시절은 끝났다. 이제 자연인이 되면서 새롭게 살아갈 새집의 이름을 명함에 넣기로 했다. 제2막의 생애를 의탁할 삶의 터를 기리고 싶어서다. 집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시 명함을 새길 일은 없을 것이다. 남은 나의 생애 중에 집을 바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직함을 얻을 것 같지도 않다.

정년 퇴임식을 치렀다. 무엇 버젓한 일을 이루어 놓은 게 있다고 성대한 식을 올리겠는가. 아이들이 학년을 마치는 종업식에서 학교에 관련된 분들, 이를테면 평소 학교에 많은 도움을 준 운영위원회, 학부모회, 학교발전추진위원회 관계 분들과 선생님들을 모셔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려 했다. 그밖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알릴 자신이 서지 않았다.

퇴임식이 열렸다. 아이들이 강당을 메운 가운데 운영위원장을 비롯한 학교에 관련된 분들이 참석했다. 가족들에게도 아무도 참석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아비의 퇴임 모습을 굳이 지켜보고 싶다는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아내도 참석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삽십여 년 전의 제자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문학회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반갑고도 민망했다.

국민의례에 이어 아이들의 학년 종업식 절차를 먼저 마치고, 교감선생님의 배별사로부터 퇴임

식이 진행되었다. 교감선생님은 나의 이력과 함께 석별의 아쉬움을 말하고,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로 끝을 맺었다. 내빈의 축사가 이어졌다. 학교운영위원장과 학교발전추진위원장이 학교 발전에 끼친 공로를 칭송하는 축사를 했다. 발전추진위원장은 존경의 뜻으로 기립 박수를 보내자고 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일어서서 박수를 받았다. 친구이자 학교발전추진위원인 도의회 박 의원이 그간의 공과 우정을 기리는 축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제자 윤 박사가 나와서 사제의 인연과 존경의 뜻을 말하는 축사를 했다.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여러 곳, 여러 사람들이 기념패며 기념품으로 퇴임을 기려 주었다. 직원친목회에서는 행운의 열쇠를 주기도 했다. 학생 아이들이 나와 꽃을 주고, 친손녀, 외손녀가 나와 꽃다발을 안겨 주었다. 손녀들의 재롱에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제자들이 나와 기념품을 주는데, 서예를 하는 황 군은 '師恩如天'이라 쓴 휘호를 주기도 했다. 이 고마움들을 언제 갚을 수 있으랴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의 퇴임사 순서가 되었다. 아이들을 향해 '오늘 여러분들은 학년 종업을 하고 나는 교직 인생을 종업한다'고 하면서 만감이 교차함을 담담히 말해 나갔다.

자식들을 불러놓고 '아비는 이렇게 살았노라'라고 말할 것도 없고, 친지와 여러 인사님들에게 '이런 일을 하고 교직 한 평생을 마칩니다'하고 내 놓을 게 없어 부끄럽다는 말에 이르러 눈물이 핑 돌았다. 스스로 지은 묘지명에서 '죄를 지어 후회스런 세월[罪悔之年]'이라며 자신의 생애를 준열하게 비판한 정약용(丁若鏞)의 말을 인용하여 지나온 나의 생애를 돌아볼 때는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으려 했다. 자세를 가다듬어 말을 이어 나갔다. 보잘것없는 생애 중에서도 각계 각층에서 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제자들이 있음을 윤 박사를 보며 말할 때도 콧마루가 시큰했다.

이제 행복했던 그간의 학교로 생활을 뒤로하고 '조용한 시골로 가서 새로운 삶을 엮어나가고자 한다'고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목이 막혀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한 동안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소낙비 같은 박수소리에 눈을 떴다. 손수건을 꺼내어 콧등을 닦았다. 무엇이 서러운가. 한 생애를 마감하는 일이 그리 서러운가.

강당을 메우고 있는 아이들이며, 내빈들 중에도 눈시울 닦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듯했다. 나를 보며 연신 눈물을 적셔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내 눈물 속으로 흐릿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를 향하고 있는 이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부끄럽고도 미안했다. 어금니를 깨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목소리는 물기에 젖었다. 아이들을 향해 '여러분의 진급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크게 격려합니다. 저의 새로운 생애도 여러분이 좀 축하해 주기 바랍니다.'라고 말할 때 파도 같은 박수 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다."라는 법정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인용하여 지금 이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는 말로 퇴임의 말을 맺었다. 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는 긴 터널을 통과해 나온 것 같았다.

학생 대표의 축시가 이어졌다. '때로는 바다 같이 넓은 가슴으로 저희를 안으시고, 때로는 아버지처럼 호탕한 웃음으로 저희를 반기셨던 선생님'이라고 했다. 노래 동아리 아이들이 축가를 부르고 스승의 은혜와 교가를 제창하면서 식이 끝났다. 이제야 말로 제1막의 내 인생이 끝나는 건가. 갑자기 다리가 바람에 나뭇가지 떨리듯 떨렸다.

학교발전추진위원회에서 마련한 석별의 오찬이 베풀어졌다. 모든 교직원들과 참석한 내빈들이 함께 하는 성대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내가 감사의 자리로 마련하고 싶었으나 그 간의 공을 기려야 한다며 굳이 베풀어주겠다고 했다. 약간의 장학 기금을 위원회에 기탁하는 것으로 조금의 보답이라도 하고자 했지만, 고맙고도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들이 오찬에 참석한 분들을 향해 아버지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인사했다.

퇴임식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한 생애를 마감하는 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한 생애가 끝났다. 온갖 희로애락 속에서 이 생애를 무사히 끝내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과 얽힌 인연,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 인연과 도움을 소중하게 간직할 일이다. 제2막의 삶에서는 나도 남에게 좋은 인연이 되고 서로 돕고 사는 삶을 이루어야 할 일이다.

친구가 글씨를 써 준 집 이름 '靑遇軒'이 새겨진 명함을 다시 본다. 나는 청산을 사랑한다. 그래서 '청산'을 내 별호로 쓰기도 한다. '靑遇軒'은 '청산과 만나는 집', '청산을 만나는 집', '늘 청산과 만나며 사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늘 청산처럼 푸르고 맑고 싱그럽게 살고 싶다. 내 마지막 명함에 새겨진 뜻처럼-.♣(20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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