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산길을 걸으며

이청산 2010. 6. 29. 11:36

산길을 걸으며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계절은 바뀌어도 나의 산길 걷기는 변함이 없다. 해거름에 산길을 걷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중요한 일과다. 하루라도 걷지 않으면 하루 일을 다 마치지 못한 것 같아 마음과 몸이 영 편치가 않다. 산을 내려와 시원하게 몸을 씻고 나서야 비로소 하루를 옳게 마감한 것 같고, 내 하루의 존재 의의가 실감나게 된다.

오늘도 산을 오른다. 세월을 본다. 요즈음은 하루가 다르게 잎들이 무성해지고 있다. 조그만 잎들이 커다랗게 변해 가고, 연초록 빛깔이 진초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초록빛은 몸과 마음을 청량하게 씻어준다. 피로감도 떨치게 하고 생기도 북돋우어준다. 산을 오르며 땀을 흘리는 것도 상쾌한 일이지만, 초록의 싱그러운 생명력에 젖는 것도 여간 상쾌하지 않다.

가파른 비탈을 오른다. 계속되는 비탈길 중간쯤에 짤막한 평지 길 한 토막이 있다. 땀 흘리며 오르다가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곳이다. 이쯤이면 그 평지 길이 나올 법한데, 아직 덜 올랐는가. 아니, 이쯤이면 마루에 거의 이른 길이 아닌가. 상념에 잠겨 오르는 사이에 보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 것 같다. 그 덕분에 쉬지 않고 잘 오르긴 했지만,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을 지나쳐버렸다면 낭패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눈으로는 보면서도 다른 생각에 가려 눈이 분별 작용을 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살아오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분별을 놓쳐 지은 업(業)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 산을 오르는 일처럼 불식간에 올라 좋을 수도 있지만, 분별 없는 일을 벌려 나와 남을 어렵고 힘들게 했던 일도 많았을 것 같다. 지나온 몇 일이 문득 뇌리를 스쳐간다.

구불구불 사행(蛇行)으로 나 있는 길을 오른다. 길이 굽이를 짓거나 갈 지(之)를 그리며 나 있어 다행이다. 힘 들여 올라가야 할 앞길을 적당히 가려주어서 좋다. 길이 직선으로 나 있어 앞길이 훤히 보인다면 얼마나 힘도 더 들고 지루할 것인가.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다행한 일이 기다리고 있든, 불행한 일이 보이든 앞날이 훤히 내다보인다면 무슨 기대와 재미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직선으로 살기보다는 곡선으로 사는 것이 훨씬 인간적일 듯하다. 곡선의 미덕이라고 할까.

나무들이 나날이 무성해 지더니 딸기넝쿨이며 떡갈나무가 넓적한 잎새를 벌리고 시위하듯 길을 가로막는다. 초록의 싱그러운 빛을 대하는 즐거움이 자못 크지만, 머리에 걸리고 발목을 잡아 성가실 때가 있다. 하루 이틀 다닐 길도 아니기에 두고만 볼 수 없어, 어느 날 어느 날 접낫을 가지고 산을 올랐다. "풀이 걸음을 방해하거든 깎고 나무가 관(冠)을 방해하거든 잘라내라.……"고 한 옛사람의 말씀을 떠올리며 길을 방해하는 것들을 쳐 없앤다.

옛사람의 말씀은 이어진다. "……그 밖의 일은 자연에 맡겨 두라. 하늘과 땅 사이에 서로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만물로 하여금 제각기 그 삶을 완수하도록 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이런 푸나무며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존재 의의를 다 가지고 있을 터인데, 어찌 함부로 꺾고 잘라버릴 수가 있으랴. 잘려 내려앉은 잎사귀며 가지들이 다시 돌아 보인다. '그 밖의 일은 자연에 맡겨 두라'한 말씀을 다시 새기며 싱그러운 초록빛 사이를 걷는다.

숲 속 길을 걸어나간다. 산딸기 넝쿨이며 칡넝쿨이 얽히고 설키며 뻗어나고 있다. 칡넝쿨은 제 혼자서 뻗어나다 못해 저희들끼리 배배 꼬며 얽혀 길을 가로막으며 뻗는다. 길을 막는 것도 안 될 일이지만 저희들끼리 아옹다옹 비틀고 외틀고 하는 모양도 보기가 편치 않다. 서로 꼬여 있는 것을 풀어 헤쳐 갈라놓으며, 남 비틀지 말고 제 갈 길만 가라고 이른다. 저희들끼리 서로 감고 껴안고 하는 것이 저들 삶의 방법인지도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나무에 넝쿨손을 걸어 줄기며 가지를 감고 올라간다. 새로 뻗어 올라가는 놈들도 있지만, 죄 없는 나무들을 뒤틀며 뻗어 오른 지 몇 해가 된 듯 굵직한 줄기로 나무의 몸체를 옥죄고 있는 것들도 있다. 나무들은 이 못된 손길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성장도 체념한 체 넝쿨에 온통 몸을 내어주고 있다. 이런 탐욕스런 것들이 있는가. 아! 어느 때 나를 감아 오르던 어떤 모습들에 대한 기억이 꿈틀거린다. 접낫을 펼쳐 이 사악한 놈들의 밑동을 잘라버린다. 이 무슨 탐(貪), 진(瞋), 치(痴)인가. '자연에 맡겨' 두어야 할 일에 공연한 해찰을 부린 것이 아닐까.

환경운동을 이끌며 정치 권력에 대척해 오던 어느 스님이, 어느 날 갑자기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며 절의 주지 자리며 운동 단체 대표며 승적(僧籍)까지 모두 내놓고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산길을 내려온다. 제 살겠다고 남의 몸을 뒤틀면서 뻗어 올라가던 넝쿨과 잘라버린 넝쿨, 모든 것을 내려놓은 스님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서로 다른 모습들이 중첩되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일도 산을 오를 것이다. 넝쿨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또 어떤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을까.

그 스님은 어디에서 무슨 원력을 쌓고 있을까.♣(20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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