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2009 올해의 책 10권

이청산 2009. 12. 20. 20:18

위로받고 성공 꿈꾸며 세상을 읽었다

  • 조선일보 출판팀 
  • 입력 : 2009.12.19 02:40
 

2009 올해의 책 10권

숨 가쁘게 보낸 2009년 한 해를 마감하며 되짚어보아야 할 책들이 있다. 조선일보는 올 한 해 Books를 아껴주신 독자들을 위해 '2009 올해의 책 10권'을 꼽았다. 외부 전문가들과 내부 기자들의 추천을 통해 논픽션 7권과 픽션 3권이 선정됐다.

'2009 올해의 책' 선정에는 21개 유수 출판사의 대표나 편집팀장(김영사 권향미 편집주간, 까치글방 박종만 대표, 더숲 김기중 대표, 랜덤하우스 백지선 문예출판팀장,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 문학과지성사 김수영 대표, 문학동네 염현숙 편집국장, 문학수첩 박광덕 편집주간, 민음사 장은수 대표, 살림 강심호 기획국장, 생각의나무 정해종 편집주간, 열린책들 이소영 편집장, 웅진씽크빅 이수미 단행본개발본부장, 에코의서재 조영희 대표, 창비 김정혜 문학출판부장, 푸른숲 김혜경 대표, 한길사 박희진 편집부장, 해냄 이혜진 편집장, 현암사 조미현 대표, 휴머니스트 선완규 편집주간, 21세기북스 정성진 이사), 출판평론가 표정훈 그리고 조선일보 문화부의 출판·학술·문학 담당 기자 8명이 참여했다. 이들로부터 올해 독서계의 흐름을 이끌었던 중요한 책을 각각 5권씩 이유와 함께 추천받았고, 득표순으로 10권을 골랐다.

◆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장편소설
창비|320쪽|1만원


《엄마를 부탁해》는 2009년 독서계에 가장 높이 솟은 봉우리다. 지난해 11월 출간 이후 전국적인 ‘엄마 신드롬’을 일으키며 순수문학 작품으로는 최단기간인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부산·김해·청주·용인·포항·서산 등 6개 도시가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도서로 선정해 도시 단위로 책을 사서 읽었다. 출간 직후인 지난해 말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과 서점에서 ‘2008년도 올해의 책’으로 뽑힌 데 이어, 동일 작품으로 2년 연속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기록도 함께 세웠다.

무엇이 이런 성공을 가능케 했을까.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신경숙씨의 높은 인지도와 작품의 완결미가 경제불황과 그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위로받고 싶어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한다. 순수소설의 미학적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등장인물의 내러티브와 사라진 엄마를 추적하는 추리소설 기법을 활용해 읽는 재미를 높인 것도 주효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15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해외 인세 수입만 5억원에 이른다. “이 작품을 검토하기 위해 초벌 번역본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는 영국 W&N 출판사 아르주 타신 편집장의 말은 신경숙이 창조한 ‘엄마 이미지’가 한국을 넘어 세계의 독자들이 공감할 문학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도 성공했음을 말해준다.

◆ 1Q84(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1권 656쪽, 2권 597쪽|각권 1만4800원


무라카미 하루키는 신경숙과 함께 올해 한국을 강타한 ‘소설 열풍’의 강력한 진앙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이후 일본에 세번째 노벨문학상을 안겨 줄 가장 유력한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하루키의 이 신작소설은 일본에서 지난 5월 출간돼 석 달 만에 200만부를 돌파했고, 한국 독자들에게도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60만부가 넘게 팔렸다.

작품의 무대는 1984년의 도쿄(東京)다. 살인청부업자인 아오마메(靑豆)는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살해하기 위해 그가 머무는 호텔로 가는 길이다. 고가도로가 꽉 막혀 초조해하는 그녀에게 택시기사가 지상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을 알려준다. 그런데 지상에 내려온 그녀는 고가도로 아래의 세상이 오늘 아침 집에서 출발 전까지 살았던 일본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임을 깨닫는다. 아오마메는 그 세계를 1984년과 함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세계, 즉 ‘1Q84’로 이름 붙인다.

‘세상 어딘가에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낯익은 판타지적 상상력은 하루키를 만나 현대문명에 대한 반성과 대안적 삶의 가능성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그것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상실의 시대》 이후 그가 지속적으로 펼쳐온 ‘개인적 상처와 극복’의 서사와는 다른, 문명을 주제로 한 거대 담론을 펼치는 새로운 하루키를 읽는 즐거움을 듬뿍 선사한다.

◆ 넛지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리더스북|426쪽|1만5500원


책의 운명은 ‘타이밍’에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하고 오판(誤判)한다’는 대표적 행동경제학 저서인 이 책은 세계 경제위기 때문에 큰 관심을 받았다. 경제 주체들의 비합리성이 얽혀 결국 전 세계적인 경제난을 유발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동시에 행동경제학이 유용한 분석틀로 등장한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역시 이 책을 ‘CEO가 읽을 만한 추천도서’에 올렸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으로,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소하고 작은 요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사람들은 완벽한 선택을 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닐뿐더러, 종종 선택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에 부드러운 개입만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식 반찬의 배치 변경으로 비만아동의 수를 줄이는 것도 ‘넛지’의 한 예이다.

이 책은 많은 부분을 ‘사회적 넛지’에 할애한다. 약간의 제도적 변화만으로도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는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고 이혼율을 떨어뜨리며 환경을 살릴 수 있는 ‘넛지’ 아이디어가 실렸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명박 대통령은 올여름 청와대 직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고, 미국오바마 정권 역시 넛지 정책을 수용했다고 알려지면서 책은 국내에서 2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넛지》의 성공 이후, 국내에서는 행동경제학 서적 출간 붐이 일었다.

◆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김영사|352쪽|1만3000원

‘1만 시간의 법칙’. 올 한 해 성공의 법칙을 이처럼 간단하게 요약한 책이 있을까. 《티핑포인트》등으로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 즉 한 분야의 최정상이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표적인 1만 시간 성공의 예로 비틀스와 빌 게이츠 등을 든다.

저자는 시야를 넓혀 ‘1만 시간의 법칙’을 가능하게 한 사회 환경에 주목한다. 빌 게이츠는 부모의 지원과 사회적 환경 덕에 학창시절부터 1만 시간을 컴퓨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명 중 20%가 19세기 중반의 미국, 즉 모든 산업이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던 시기에 태어났다는 사실도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글래드웰의 생각이다. 알고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읽는 내내 무릎 치게 하는 글래드웰식 통찰이 빛난다.

◆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184쪽|9500원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이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교수가 된 정치학자 강상중의 인생론이다.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며 청춘을 보낸 강 교수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사회학자 막스 베버를 나침반 삼아 젊은 날의 방황을 헤쳐나온 지적 체험을 녹였다. ‘나는 누구인가’ 같은 존재론적 고민부터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왜 죽어서는 안되는 것일까’ 등 젊은 세대가 관심 가질 만한 주제를 풀어낸다. ‘늙어서 최강이 되라’는 마지막 장에선 예순 살이 될 때까지 ‘대형 이륜차’ 면허를 따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종단 여행을 하고, 한반도 종단 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뻔뻔함’을 상징하는 할리 데이비슨 위에 걸터앉아 김정일의 머리에 알밤이라도 먹이고 싶다는 얘기까지, 도발적이다.

◆ 아이의 사생활
EBS 제작팀 지음
지식채널|432쪽|1만6800원


2008년 2월 EBS에서 방송되어 화제를 모은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해외 사례가 아닌 우리나라의 실험적인 양육법을 소개한 드문 사례로 꼽힌다. 1년간의 취재, 4200명 설문조사, 참여 어린이 500명, 국내외 전문가 70여명의 조언과 자문, 철학·심리학·교육학·과학을 아우르는 40여회의 실험 등이 결과한 탐구의 결실을 책에 오롯이 담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부모에게 대표적인 고통으로 꼽히는 육아와 관련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차이, 다중 지능과 감정 지능 등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그 증명을 통해 아이의 ‘다름’을 이해함으로써 여유와 사랑이 가득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부모가 아이의 유형을 직접 진단하여 그에 따른 자녀 양육법을 펼칠 수 있도록 여러 실질적인 팁을 실었다. 다각적인 관점으로 자녀양육법을 고찰한 책으로 “체계적인 분석이 주는 깨달음의 기쁨과 휴먼터치의 감동을 함께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다.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장영희 지음
샘터|236쪽|1만1000원


‘글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를 보여주는 고(故) 장영희 교수의 유고작. 《내 생애 단 한번》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순수 에세이집이다. 2001년 처음 암에 걸렸고, 방사선 치료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이후 두 차례 척추·간으로 전이돼 오랜 투병생활을 지속해야 했던 개인사가 서려 있다. 생전에 그는 자신이 ‘암 환자’ 장영희로 비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천형(天刑) 같은 삶’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는 도리어 자신의 삶은 누가 뭐래도 ‘천혜(天惠)의 삶’이라고 말한다.

자칫 암울해지기 쉬운 소재를 유머와 위트,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키며 다름 아닌 그녀의 삶 자체가 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아무리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살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시간에 차라리 뼈나 제대로 추려라. 그게 살길이다.”

◆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길|657쪽|3만8000원


60여년 전 초판이 나온 저작이 올해 국내에 새로 번역되면서 새삼 주목을 받은 것은 미국발(發)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시장경제의 문제점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저자 칼 폴라니(Karl Polanyi·1886~1964)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번영을 누리던 자본주의 유럽이 어떤 이유에서 세계대전과 경제적 파탄으로 이어지게 되는지 엄밀하게 분석한다. 그는 인간의 노동을 단순히 이윤의 극대화라는 동기로 환원할 수 없으며, 시장경제란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적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시장경제 낙관론은 결국 인간의 자유와 이상을 파괴하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견해에 찬성하든 아니든 도전할 만한 경제학 분야의 손꼽히는 고전임이 틀림없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소설집
문학동네|318쪽|1만원

소설가 김연수의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지난 9월 출간, 이례적으로 4만부 이상 팔린 문학적 사건을 일으켰다. 은인자중하던 문학 마니아들이 순식간에 일으킨 거사였다. 2000년대 이후 동인문학상 등 유명 문학상을 휩쓴 작가답게 평론가들의 찬사도 한몸에 받았다.

김연수는 인문주의자의 지성과 서정 시인의 음성을 동시에 갖춘 소설가다. 그의 소설은 한 개인의 삶에서 서로 톱니바퀴처럼 물고 물리는 순간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작은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의 소설은 삶에 대한 아포리즘의 조합이 이뤄낸다. 모든 개인의 삶은 덧없이 사라지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남기지만, 그 이야기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끝없이 갈라지는 길의 연속이라고 김연수 소설은 말한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순간을 재배치하고, 세계의 끝을 온몸으로 한없이 밀어낸다.

◆ 코드 그린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이영민 최정임 옮김|21세기북스|592쪽|2만9800

18일 폐막한 덴마크 코펜하겐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회의는 지구환경을 살리는 문제를 놓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입장차가 얼마나 큰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뉴욕타임스의 세계적인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미국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다양한 자료와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일단 그는 지구의 이상기온현상, 세계화의 확산 등이 지구를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지구로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지금 당장 환경문제와 에너지 부족사태에 대해 본질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몇 년 가지 않아 환경 및 에너지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지경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의 책임과 역할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더불어 저자는 클린에너지, 에너지효율성, 자연보호 전략 등을 ‘코드 그린’이라 부르며 미래의 녹색혁명을 위해 인류가 힘을 모아 ‘코드 그린’을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