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수필

그리운 것을 찾아서

이청산 2007. 8. 5. 20:33

그리운 것을 찾아서

-섬살이 그리고 뭍에서의 휴가 



집에 도착한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날 무렵이었다. 일곱 시간도 넘는 물길, 뭍길을 달려 이른 집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곰삭은 열기가 확 안겨 왔다. 한 달도 넘게 바깥을 넘나들어 보지 못한 공기다. 마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어미에게 달려드는 어린것들처럼 일순간에 얼굴로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래, 얼마나 답답했겠느냐, 이 주인을 얼마나 탓했겠느냐. 베란다의 창문부터 활짝 열어제쳤다. 문이란 문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열었다.

생명이 있는 것 치고 온전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없었다. 산세베리아는 넓적한 잎줄기가 뒤틀리며 고사 직전에 있고, 아내가 좋아는 알로에도 마를 대로 말라 줄기에 하얀 가루가 피어 있다. 유리컵에 담겨 넝쿨과 잎을 피워내던 고구마는 잎도 줄기도 모두 노랗게 말라버렸다. 돌아올 줄 모르는 집 주인을 얼마나 원망하며 가쁜 숨을 내뿜다가 죽어 갔을까.

방학을 한 지 일주일도 더 지났지만,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섬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고 며칠의 말미를 내어, 집의 일도 정리하고 출장 일도 볼 겸해서 뭍으로 오는 배를 탄 것은 칠 월이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두고 온 집, 그래서 가끔씩 가서 정리를 해주어야 하지만, 때맞추어 쉽사리 오갈 수가 없다. 물길, 뭍길이 너무 험하고 멀어 나들이가 쉽지 않기도 하지만, 섬사람 중에는 출장조차 흰눈을 뜨고 바라보는 이도 있다. 뭍에 나가려는 빙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고단한 섬 살이가 빚어낸 고단한 생각들이라 할까. 나는 괜스레 뭍을 동경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섬이 좋아 스스로 찾아와 사는 사람이라고 발명하기란 얼마나 스스럽고 부질없는 일인가.

육, 칠 년 전 섬을 살았던 기억과 경험을 나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아내는, 먼 물길이 고적감을 느끼게도 했지만 유정한 일도 많았다며 이번의 섬 살이에 어렵잖게 마음을 함께 모았다. 그러나 다시 와서 몇 달을 산 아내는 지금의 섬 살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는데 무언인들 예전 같은 것이 있을까 하며 아내를 달래듯이 말하지만, 나도 그리 느껴질 때가 없지 않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섬도 변하고 있다. 섬은 지금 육화(陸化)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뭍을 닮아 가고 있다는 말이다. 뭍이 누리고 있는 문명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은 마다할 일이 아니지만, 닮지 않아도 될 뭍의 각박한 모습도 사양하지 않고 닮아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신비의 섬 울릉도'의 그 '신비'는 빛깔이 점점 엷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뭍에서의 휴가 첫날. 지난날의 삶의 자취가 그립기도 하고, 그 삶의 터였던 곳이 어떻게 달라졌을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전임지 문경으로 향하는 차를 탔다. 내가 문경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내도 선뜻 함께 나섰다. 상주를 지나 문경의 마성을 향해 달리며 아내는 애환을 담았던 그곳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더 궁금해했다. 마성에서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았든 지난날이란 그리워지기 마련이지만, 지금의 섬 살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지난날이 더 그리워지는 것은 아닐까.

침 점촌의 장날이었다. 아내는 그 장판이 보고 싶다고 했다. 닷새 장은 흥성했다. 백화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온갖 것들이 장판을 어울렀다. 아내는 그 장날을 놓치지 않았었다. 살 게 없어도 구경만 하는 것으로도 아내는 즐거워했었다. 오늘도 아내는 그 즐거움 속을 걷고 있었다. 장판 구경을 마친 아내를 재촉하여 다시 길을 달렸다. 지난날의 삶의 터로 갔다. 널찍한 마당에 하얀 슬래브집은 그대로였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되어 무거운 적막이 덮여 있었다. 커다란 밤나무도 베어버렸다. 그러나 누가 가꾸어 놓았을까. 마당에 고추며 채소들이 잘 자라 있었다. 아내는 이 마당에서 호미질하던 일을 추억하며 자기가 가꾼 것을 보는 것 마냥 즐거워했다. 그러면서도 눈가에는 이슬이 비쳐지고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지 않은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대문간에 심어 놓은 능소화는 사람의 들고남을 가림 없이 아리땁고 기품 있게 피어 있었다.

주지봉에 이르렀다. 날마다 내가 오르던 작은 산봉우리. 삼백 번을 오르던 날, 주민들이 나를 위해 기념 빗돌을 세워 주었다.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해발 367m의 가파른 길을 단숨에 올랐다. 생강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소나무……. 의구한 자연이다. 정상에 올랐다. '朱芝峰'이라는 표지와 '三百回登頂紀念'이라는 명문(銘文)이 변함 없이 선명했다. 그 빗돌 위에 하얀 햇살이 얹힐 때, 명치끝에 아릿한 무엇이 받쳐 오는 듯했다.

섬을 살면서 기억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그런 것들이 가끔씩 생각났다. 섬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가슴에 담겨올 때 그것들은 조금씩 기억의 심연 속으로 들어갔지만, 가끔씩 살포시 혹은 불쑥 솟아올랐다. 그리움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다. 오늘 아내와 나는 그것의 맨살을 보기 위해 지난날의 삶의 터를 찾아 온 지도 모른다.

우리가 섬으로 갈 때도 그랬다. 육칠 년 전에 만들어둔 그리움을 찾아 우리는 섬으로 갔었다. 섬은 그 바다,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 모습만으로 있지만 않았다.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시간의 속성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다시 마성을 생각하고 주지봉을 그리워했다.

내일 출장을 다녀오면 다시 섬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찾아간 그 삶의 터로 돌아갈 것이다. 섬이 어떻게 달라져가도 그리움을 만들며 살아갈 섬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운 것을 찾아 다시 오백여 리 물길을 건널 먼 훗날을 위하여-.♣(200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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