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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는 인간 파괴 바이러스”

이청산 2007. 10. 6. 16:26
  • “‘빨리빨리’는 인간 파괴 바이러스”
  • ‘슬로 시티’ 창시자 伊 사투르니니, 완도등 국내 4곳 가입 심사차 방한
    1999년 시장재직때 공동체 개조
    패스트푸드점·자판기등 없애고 버스대신 자전거타기 운동 펼쳐
  • 유나니 기자= 글·사진 nani@chosun.com  
    입력 : 2007.09.07 00:10 / 수정 : 2007.09.07 03:00
    • 1999년,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ti)는 획기적 ‘공동체 개조’를 시작했다.

      “빨리빨리 살 것을 강요하는 바쁜 현대 생활은 인간을 망가뜨리는 바이러스”라고 취임사에서 말했던 시장(市長)의 단안으로 이 마을은 ‘느리게 살기’를 실천하는 초유의 ‘슬로 시티’(Slow City)로 거듭났다. 자판기, 냉동식품, 패스트 푸드점, 백화점, 할인 마트가 발붙이지 못하게 됐고, 주민들은 토속 음식들을 먹고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탔다. 1만 4000여 주민들 삶을 바꿔놓았던 이 운동은 전 유럽으로 전파됐고 현재 10개국 90여개 도시가 슬로시티 국제연맹에 가입했다.

      그 이탈리아 시골 마을 시장이자, ‘슬로 시티’운동의 창시자인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57·사진)씨가 한국에 왔다. 로베르토 안젤루치(Roberto Angelucci) 슬로시티 국제연맹 회장 등과 함께 그가 방한한 것은 이 연맹에 가입을 신청한 전남 완도군 및 담양·장흥·신안군 등 4개 지역을 찾아가 자격을 갖췄는지 심사하기 위해서다. 6일 한국관광공사를 방문, 기념 세미나를 마친 사투르니니 씨는 “한국은 전통이 강한 나라고 독특한 개성이 넘쳐 이번 한국 마을 방문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8년 전 슬로 시티를 처음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민들 반발이 엄청났다”고 회고했다.

      “한마디로 마을 발전은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하지만 나는 ‘전통과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개발을 꾀하면 우리 마을이 진정한 발전을 하게 된다’고 끊임없이 설득했습니다.”

      해가 거듭되면서 주민들은 그 ‘진정한 발전’을 체감하게 됐다.

      “마을 한복판 광장엔 이 마을에서 나는 흙으로 주민들이 직접 구운 벽돌을 깔았어요. 호텔이 필요하면 새 건물을 짓는 대신 오래된 마을의 성(城)을 개조해서 꾸몄습니다. 마을이 훨씬 운치있어졌죠. ‘슬로 시티’운동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도 늘어나니 주민들 삶이 넉넉해질수밖에요. 지금 그곳엔 실업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레베 인 키안티 주민들이 느낀 ‘발전’은 관광 수입 증가에 머무는 게 아니다.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이다. 가령 식료품의 경우도, 대형 마트에서 잔뜩 사다가 냉동실에 쌓아놓고 먹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동네 가게에 쪼르르 달려나가 사다 먹으니 훨씬 신선한 것들을 섭취한다. 주민들이 눈에 띄게 건강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투르니니 씨는 “냉장고 쓸 일이 별로 없어 아마도 세계에서 냉장고 용량이 제일 작은 마을일 것”이라며 웃었다.

      사투르니니 씨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산업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세계 ‘슬로 시티’ 운동의 선구자가 된 것은 ‘자연의 삶’을 살았던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저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어요. 어린 시절엔 우리 마을에도 산업화 바람이 불어 젊은이들이 다 도시로 갔지만, 여러 해가 지나자 떠났던 젊은이들이 다시 돌아오더군요. 전통적인 것들의 가치를 다시 깨달은 거죠. ‘슬로 시티’ 운동에 관한 영감은 이런 개인적 경험에서 얻었습니다.”

      사투르니니 씨는 “나는 지금까지 바빠서 허겁지겁 뛰며 살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슬로’라는 개념은 단순히 ‘패스트(fast)’의 반대말 개념이 아닙니다.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고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 이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진정한 ‘슬로’입니다.”

      그는 “느리게 사는 것이야말로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달콤한 인생)’가 아니겠냐”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