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메가트렌드' 저자, '미래학 거두' 나이스빗

이청산 2007. 10. 6. 16:23
  • “21세기도 미국이 지배…유럽은 성장동력 잃어 역사 테마파크 된다”
  • '메가트렌드' 저자, '미래학 거두' 나이스빗 인터뷰
    "하루 7시간 읽는 신문 통해 세상을 조망"
  • 박정훈 경제부장 jh-park@chosun.com
    김현진 산업부 기자 born@chosun.com
    입력 : 2007.04.27 13:58 / 수정 : 2007.04.28 19:30 [조선일보]
    • 사진=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이 미래학의 거두 아직 휴대폰이 없다?
      "남의 통화 의도에 휘둘리는 게 싫어…

      메가트렌드(Megatrend). 미래학 분야에서 이것만큼 유명하고 강렬한 키워드가 있을까. 현대 사회의 심연(深淵)에 흐르는 거대한 조류(潮流)를 뜻하는 이 말은 지난 20여년간 기업 CEO며 정치·사회 리더들에게 미래의 힌트가 담긴 주문(呪文)처럼 회자돼왔다.

      애초 이 단어는 ‘주류(主流)·대세(大勢)’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보통명사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생명을 불어 넣은 것이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중국 난징대) 교수였다. 1982년, 그가 동명(同名)의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냄으로써 대문자 ‘M’으로 표기되는 메가트렌드는 가장 대중적으로 친숙한 미래학의 상징 기호(記號)가 됐다.

      ‘메가트렌드’ 발간 후 25년이 지났지만, 나이스빗 교수에겐 여전히 이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25년 전 그가 제시한 메가트렌드, 즉 탈공업화·정보화, 글로벌 경제, 분권화와 네트워크형 조직 등의 흐름은 그후 속속 현실로 나타났다.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의 미래 예측은 놀랍도록 정교하다.

      그러나 그의 미래학 세계가 강인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그저 잘 적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이스빗의 미래분석은 웅장하며 장쾌하다. 수면에서 찰랑이는 작은 물결이 아니라, 해저 깊은 곳에서 큰 파동으로 흐르는 거대한 흐름을 추적하고 예측하려 한다. 그가 그리는 미래예측 스케일의 장대함에 대중은 열광하고, 빠져든다.

      탁자 앞에 앉아있는 그의 나이가 78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타고난 쾌할함과 유머 감각으로 온 몸을 휘감은 채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장은 명쾌했고, 분석은 날카로웠다.

      인터뷰 내내 그의 곁을 지키며 간간이 끼어들기도 하던 금발의 아내는 그의 왕성한 에너지의 원천인 듯 보였다. 인터뷰 도중 그는 수시로 아내와 눈을 마주치고, 슬며시 손을 잡았다.

      그는 하루에 6~7시간씩 신문을 탐독하며 세상의 흐름을 읽어낸다고 했다. 휴대전화가 없었는데, 전화를 걸어오는 타인의 ‘통화 의도’에 시시각각 자신의 삶이 휘둘리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그는 그만의 고집, ‘나이스빗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그의 평가는 대단히 후했다. 미국을 고대 로마 이상의 ‘제국(帝國)’이라고 했고, “이라크 전쟁이라는 멍청한(silly)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미국은 21세기 대부분을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하버드·코넬·유타대학 등을 옮겨가며 15개 학문을 섭렵했고, 잡지 편집자와 권력자의 보좌관을 거쳐 IBM과 코닥에서도 브레인으로 활약했다. 수많은 분야와 이질적 캐리어를 종횡무진한 그의 인생은 모험 가득찬 유목 여행과도 같았다.

      어떤 동력(動力), 어떤 에너지가 이 위대한 미래학자의 치열한 미래학 인생을 이끌었을까. 앨빈 토플러와 함께 미래학의 양대 거두(巨頭)로 추앙받는 통찰력과 예지(叡智)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 모험에 가득찬 학습 인생

      ―교수님의 인생 역정은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이 교수님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나요.

      “나는 끊임없이 배우는 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면 처음엔 급속한 커브를 그리며 그 분야에서 급격히 발전하죠. 하지만 그 이후 학습 곡선은 점점 수평에 가까워져요. 조금 있으면 재미가 없어지고,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분야를 찾아 나섭니다.”

      ―탁월한 미래학자는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관찰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사람들, 사물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설정하는 겁니다. 새로운 관계에서 새로운 기회와 싱싱한 아이디어가 보이거든요. 변화란 가능성의 아버지, 혁신의 어머니입니다. 늘 변화를 꿈꿔야 하죠. 한 곳에 지루하게 죽치고 앉아 안락함을 추구하면 그 상태로 정체됩니다.”

      ―고교 시절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소설을 읽고 인생 전환점을 맞으셨다고 하던대요.

      “사실을 말하자면, 당시 나는 고교 중퇴자였고 책을 즐겨 읽지 않았어요. 그런 내가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책이 바로 그 소설이었단 말입니다. 그저 다 읽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죠.(웃음) 촌뜨기였던 나에게 ‘세상은 참 넓고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해 준 책이었어요. 사실 고흐라는 사람 자체가 나의 롤 모델(role model)은 아니었어요. 그러면 큰일나죠. 그 사람만큼 우울하게 살다간 사람도 없을 테니까.(웃음)”

    • "아내는 나의 힘" 존 나이스빗은“국가 경제는 기업의 경쟁력에 달려있다”며“정부는 기업의 활력을 방해하지 말고 한 발 물러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부인 도리스(왼쪽)가 자리를 함께 했다. /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 버지니아 총기 사건을 보는 시각

      ―아무래도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군요. 이 사건을 놓고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이민사회가 낳은 어두운 그늘이라고 진단합니다. 교수님은 어떤 흐름을 읽습니까.

      “어두운 그늘이라고요! 그렇게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사건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정신 이상이 있는 사람이 저지른 하나의 독립된 사건일 뿐입니다. 언론은 항상 이름 붙이기를 좋아해요. 미국은 150년의 이민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민자가 아닌 사람은 인디언을 제외하고는 없죠. 나만 해도, 어머니는 덴마크,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출신입니다.”

      (이 질문이 그를 격앙시킨 듯했다. 그는 “어리석은 개인이 저지른 일을 과대 포장하지 말라”고 거듭 주문했다.)

      ―충분히 공감합니다만, 미국 사회의 총기 보유나 정신적인 황폐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미국의 총기에 관한 법률은 50개 주(州)마다 다 다릅니다. 이를테면 뉴욕주의 경우 3주일을 기다려야 총기를 구입할 수 있어요. 3주 동안 주 당국에서 당신이 누군지 면밀히 파악하기 때문이죠. 다만 버지니아주의 법률이 허술했을 뿐입니다. 이것을 미국의 전체 문제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정신 이상자가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게 흔하지는 않은데요.

      “미국이 개방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선 사람들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가능성을 열어 두기도 하죠. 미국 사회가 이로 인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미국 사회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며 “사실 나는 21세기 들어와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아 오스트리아 출신의 현재 아내와 결혼, 8년째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고 있다.)

      ■ 유럽의 ‘미국 흠집내기’?

      ―미국은 명실 상부한 경제·군사대국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의 위치가 흔들릴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곳곳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습니다. 중국은 오랜 기간 꾸준히 연간 10%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중국의 고속 성장을 보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고개를 젖히고 ‘와우(wow)!’하고 외치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이겁니다. 아직까지 미국은 중국을 매우 많은 면에서 능가하고(exceed) 있다는 점이죠.”

      ―그렇지만 중국의 성장 속도는 미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현재 스코어를 따져 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압승입니다. GDP(국내총생산) 규모만 해도 중국은 2조 달러로 미국의 13조 달러에 훨씬 못 미칩니다. 중국이 연간 1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미국 역시 매년 3.5%는 성장합니다. 중국이 고속 성장한다지만 미국도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경제규모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한다고 해도 그건 지금부터 최소한 35년 뒤의 얘기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많은 경제지표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에 ‘넘버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기사를 썼습니다. 주식시장 규모에서 미국이 유럽에 추월당했고, 수출액도 독일·중국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는 것이죠.

      “이코노미스트! 훌륭한 주간지죠. 하지만 늘 모든 문제에 대해 정답만 내놓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은 항상 미국 경제에 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안달입니다. 유럽 지역의 경제전문가들이 특히 미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지금 미국을 따라 잡을 나라가 있습니까?”

      ―미국에 대한 우려가 유럽의 질투 어린 시각일 뿐이라는 건가요.

      “미국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계속할 것입니다. 아 글쎄, 유럽은 늘 미국을 핀으로 꾹꾹 찌르려고 한다니까요. 그 전보다 성장이 둔해진 것은 확실하지만, 미국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1위 국가인 동시에 앞으로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제국(帝國)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라크 전쟁 등으로 소프트파워(문화·가치의 힘)에는 금이 간 것 같은데요.

      “미국인으로 살면서 미국에 대해 부끄럽다고 느꼈던 적이 딱 두 번 있습니다. 한 번은 베트남 전쟁, 또 한번이 이라크 전쟁입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을 궁지에 몰아 넣었고, 상처에서 벗어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계속해서 곳곳에 상처를 남기고 있는 중입니다. 제국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를 남용하면 멍청해집니다. 힘이 있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법입니다. 미국은 이런 점에서 멍청한 실수를 했죠.”

      ―이라크 전쟁 때문에 미국이 세계 여론에서 고립되는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수를 미국의 국력 쇠퇴로 연결시키면 안 됩니다. 동료 학자 중 한 명이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기에 내가 이렇게 되물었죠. ‘그래? 누가 미국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데?’ 그 친구, 대답을 못하더군요.(웃음)”

      ―교수님은 유럽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과거의 볼거리나 제공하는 ‘역사 테마파크’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유럽이 쇠락할 것이라는 근거는 무언가요.

      “기업의 견고한 성장을 가로 막는 장애 요소들이 너무 많습니다. 강성 노조 때문에 유럽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은 이젠 너무나 오래된 얘기예요. 복지 국가는 모든 사람들을 잘 살게 만들고 유럽 전역의 삶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죠. 하지만 복지 국가 모델 하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동력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민영화와 자유시장 경제를 향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유럽의 장래는 힘듭니다. 변화하고 개혁하지 않는 한 유럽은 살아 남기 힘들 겁니다.”

      ―유럽도 ‘과잉복지’와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수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이 세금 인하를 추진하고 나섰고, 독일도 개혁 프로그램을 실천 중이죠. 유럽이 진정 자기치유 노력으로 ‘역사 테마파크’가 되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물론 스웨덴의 새 보수당 정부는 사회 전 부문을 개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슈뢰더 정부가 야심 차게 ‘어젠다 2010’ 등을 발표하며 개혁을 추진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제로(0)’였습니다. 달라진 게 전혀 없어요. 메르켈 정부 역시 마찬가지고….”

      ■ 미래를 읽어내는 비법

      ―25년 전 ‘메가트렌드’를 집필할 당시, 예측이 적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나요.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인가요.

      “운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늘 학생과 선생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에요. 세상 사람들과 사물들, 사건들과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학습하죠. 또 이렇게 하면서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공유’하는 것 역시 좋아하고요.”

      ―내로라하는 일류 전문가들의 1년 뒤 예측도 빗나가기가 일쑤입니다. 10년, 20년을 내다본 박사님의 예측이 현실화되는 비결은 무엇인지요.

      “내가 하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이 한다면 누구나 미래를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하루 6~7시간씩 신문을 읽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직업이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 매달리느라 바쁠 동안 나는 세계와 끊임없이 연결 고리를 만들려고 분투하죠.”

      ―교수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나와 아내는 하루를 매우 조용하게 보냅니다. 이 말 하면 놀랄 텐데…. 나는 휴대전화가 없어요. 사람들은 항상 자기의 아젠다(agenda·화제)를 갖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죠. 내가 휴대전화가 있다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왜 다른 사람의 어젠다에 휘둘려0야 하죠? 때로는 교통 체증으로 심심해서 걸려온 전화도 받아야 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노천 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쓸 데 없는 전화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러다 보면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놓칠 수 있어요. 혼자 찬찬히 앉아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을 정해 이메일을 확인합니다.”

      ―그 동안 내놓은 수많은 미래예측들 중 틀렸다고 자인하는 것을 꼽는다면?

      “특별히 잘못 짚은 트렌드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언제 일어날 지 예측한 타이밍은 몇 번 빗나간 적이 있죠. 이를 테면 내가 쓴 ‘여성 메가트렌드’에서 나는 지금보다 여성들이 훨씬 더 빨리 변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느리게 변하더군요. 물론 여성들은 내가 예측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는 해요. 방향을 잡아 내기는 쉽지만 어떠한 일정 시점을 예측하기는 매우 막연(tricky)합니다. 한 가지 현상에 대해선 여러 내부적인 변수가 작용합니다. 이를 테면 여성의 인권은 경제문제·가족·인생·남성 등 다양한 이슈로 인해 영향을 받죠. 그래서 타이밍을 잡는 게 제일 어려워요.”

      ■ 강한 리더십이 사라졌다

      ―교수님은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계의 흐름을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문산업과, 종이매체는 세계적으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신문은 ‘세계에 관해 말해주는 매체’ 중 가장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기능은 어떠한 일(event)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죠. 신문의 좋은 점은 오려 놓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중요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오려 벽에 붙여 놨다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내는 기사들끼리 끼워 맞춰 미래의 흐름을 예측합니다. 신문은 우리가 오늘날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표입니다.”

      ―뉴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신문은 분명 살아남을 겁니다. 다만 사양길을 걷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문 문화(newspaper culture)’겠죠. 신문 기사가 점심 식사 테이블에 어김없이 화제로 오르고 모든 사람들이 신문으로부터 정보를 얻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젠 대신 택할 수 있는 대체재가 너무 많아졌죠. 하지만 신문과 같이 그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정보의 경중(輕重)을 판단할 수 있도록 편집된 매체는 드뭅니다. 결국 고급 콘텐트가 살아남겠죠.”

      ―젊은 세대로 갈수록 장문의 기사보다 인터넷을 통해 짧은 기사를 읽는 것을 더 즐겨 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우리는 어떠한 현상을 볼 때 ‘혼합물(mix)’을 통해 생각해야 합니다. 신문을 안 읽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신문을 통해 정보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 역시 봐야 해요.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통해 신문 산업의 미래를 읽어야 하겠죠.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는 것보다 현재의 상황을 냉철히 분석하는 게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치 리더들이나 CEO들에게 미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신문 같은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세계를 모니터(monitor)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 하나가 바로 리더십의 약화입니다. 유럽이 특히 심합니다. 대부분 유럽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리더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어요. 일본의 아베도 전형적인 리더형(型)은 아니고…. 중국의 후진타오 역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는 하지만 덩샤오핑이나 장쩌민과는 차이가 있죠.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갔는데,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네요.”

      ―한국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김대중 정부는 일정 부분에서 개혁을 해 나갔습니다. 추진력도 더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 정부는 그에 비해 조금 약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더십의 약화라는 것을 꼭 나쁜 현상으로만 볼 수도 없는 일이에요. 인터넷 등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국민 발안 등의 제도가 활성화되고 있죠. 이제는 기존 톱다운(top-down) 방식의 리더십이 변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의 리더십이 발현되고 있어요.”

      ―미국의 리더십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한숨부터 나오기 때문에 미국의 리더십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을 안 했는데…(웃음). 미국에도 진정한 리더십은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내세운 잠재 후보들만 20명에 달합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매우 인상적인 리더들을 배출한 나라였는데도 말이죠. 뭐 이쯤 되면 우리가 이상형으로 기대하는 강한 리더십이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췄다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중국의 추격 따돌리기보다 협력방안 찾아야
      한 곳에 머물면 정체돼… 변화는 가능성의 아버지”

      ■ 폭발하는 중국의 기업가 에너지

      ―지난해 11월 한국에 왔을 때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를 보고 놀라셨다고 하셨죠. 아시겠지만 한·미FTA 협상이 결국 타결됐습니다.

      “내가 그 당시 놀랐던 것은 시위로 인해 겪은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어요. 나는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왜 자신들에게 이득을 가져올 문제에 대해 ‘항의’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한국은 이제 다른 차원에서 경제 블록을 형성해야 합니다. 세계는 결국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될 것입니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남미공동시장(MERCOSUR) 등이 그 예죠. 한·미FTA가 타결됐다고 하니, 정말 좋은 뉴스예요!”

      ―교수님은 한국 경제에 대해 낙관적인 평가를 하셨는데, 그 평가엔 변함이 없나요? 한국 사회는 고령화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찌 보면 닫혀 있는 사회입니다. 인구 고령화 문제와 출산율 저하 문제는 사실 한국인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민을 통해 다른 나라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고 있죠. 그렇다면 결국 인구 고령화 등의 문제는 100% 한국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경제·사회 개혁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는 ‘10년 뒤엔 지금 한국이 하고 있는 모든 것을 중국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지금 중국과 일본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과 중국 기업들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시선을 조금 돌려 생각해보면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합작 벤처기업(joint-venture)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해 회생의 길을 모색해야 하겠죠.”

      ―한국 기업들은 중국 기업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요.

      “앞으로 한국의 기업들과 중국 기업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겁니다. 중국엔 세계 어느 곳보다 훌륭한 기업가(entrepreneur)들이 많이 있어요. 단순히 1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 때문이 아닙니다. 중국엔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기업가 정신이 있죠. 세계 곳곳에서 무섭게 활약하고 있는 화교들이 중국 본토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어요. 중국 기업가들이 쏟아내는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몇 십 년 동안 사회주의 체제하에 억눌려 있었던 기업가 정신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있죠.”

      ―여기에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기업’들이 잘 대비해야 하겠죠. 오로지 기업의 경쟁력이 중요할 뿐입니다. 정부가 할 일은 없어요. 정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정부의 역할은 오로지 기업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영양 가득한 토양을 제공하는 거예요. 또 기업과 기업가들의 활력(ener gy)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발 물러서는(get out of the way)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한 국가의 경제는 기업들의 경쟁력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세대 사이에선 모험과 리스크 대신 안정을 추구하는 현상이 뚜렷합니다. 기업들 역시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를 꺼립니다.

      “굳이 모든 리스크에 맞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철저한 계산과 분석 후 최대한 리스크 상황을 피해가는 게 현명할 수 있겠죠. 하지만 미래엔 결국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리스크를 끌어 안는 사람·기업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겁니다. 프랑스와 일본은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기업들을 안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지금 뻔히 드러나고 있죠. 모든 분야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오늘날, 세계의 그 누구와 비교했을 때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리스크를 겁내는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실 수 있을까요.

      “세계 곳곳의 다른 나라 사람들과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데 한국만 가만히 앉아 있다면? 결국 추월당할 게 뻔하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요컨대 이겁니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과감하게 베팅하세요(make a bet)! ”

    • 세계 미래학의 거두 존 나이스빗 인터뷰. /조선일보 최순호 기자
    • 세계 미래학의 거두 존 나이스빗 인터뷰(2). /조선일보 최순호 기자
     
  • 나이스빗은
  • 신문 읽다가 미래 읽어
    홍보맨 출신…교수 등 경력도 다양
  • 박영숙 세계미래회의·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
    입력 : 2007.04.27 13:36
    • 존 나이스빗(John Naisbitt)은 1929년 1월 15일 미국 유타주에서 태어났다. 미래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내긴 했지만 미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1982년에 ‘메가트렌드(Megatrends)’를 써서 미래사회의 변화를 예측했다. 당시는 미래에 관한 연구나 미래에 관한 서적이 전무할 때였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57개국에서 출간됐고, 미국·일본·독일에서 수주 동안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리며 약 900만 부가 팔려 나갔다.

      그는 20대였던 1953년에서 1955년까지 이스트맨 코닥사의 홍보부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 후 린든 존슨 대통령의 특보로서 정치경험을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나이스빗은 미 교육청의 프란시스 케펠(Francis Keppel) 밑에서 1963~1966년까지 홍보 관련 일을 했고 보건교육복지부에서 존 윌리엄 가드너의 보좌역을 한 적이 있다.

      하버드대 펠로우, 모스크바대 교수를 역임했고 인도의 IBM에서 강의를 했다. 중국 난징대 교수이며 15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고 있다.

      최근 저서 마인드세트에서 존 나이스빗은 자신이 미래예측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을 읽고 미래 트렌드를 잡는다고 했다. 그는 1960년대 말, 신문 가판대에서 학교위원회가 새로운 개혁정책을 가결했다는 기사를 읽고 가판대에 있는 모든 신문들을 매일 읽는다면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유형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마침내 미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낼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드디어 열쇠를 손에 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고 그의 한 저서에서 고백하고 있다.

      홍보부서에서 일한 홍보맨이어서 신문 읽는 게 일이었고, 그것을 보고 그는 미래예측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도 신문을 다 읽는데 그처럼 메가트렌드 등 변화를 짚지 못하는 이유를, 그의 최근 저서 ‘마인드세트’에서 밝히고 있다. 오랫동안 신문을 읽으면서 스스로 트렌드를 읽어내고, 사고를 훈련해 정보를 거르는 특정한 법칙을 발전시켜야 자신처럼 미래를 읽는다는 것이다. 즉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바로 핵심 열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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