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섬과의 인사 -여기는 울릉도.1

이청산 2007. 3. 19. 10:40

섬과의 인사
- 여기는 울릉도·1



다시 섬사람이 되어 첫 섬 길을 나선다. 한 발 한 발 자국을 찍으며 섬의 품에 안기는 것은 두고 하기로 하고, 오늘은 차로 한 바퀴 돌며 섬과 재회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달팽이 고가 도로를 돌아 재 넘어 사동으로 간다. 돌고 돌아 재 넘으며 보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섬의 풍광들, 어제 본 듯 그대로 정겹다. 도동과 사동을 잇는 터널이 뚫리고 있다. 터널이 뚫린 뒤에도 이 길은 섬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길로 남기를 바라며 재를 넘는다. 수려하게 펼쳐지는 사동 해안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각단 산기슭에 전에 없던 것이 보인다. 바다를 향해 지어진 희고 붉은 색의 집들이 이국적인 풍치를 돋우고 있다. 여객선 회사에서 지은 리조트다. 섬사람들의 살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흑비둘기 서식지인 후박나무숲이 있는 와록사를 지나 사동 해안을 달린다. 긴 방파제 하나가 바다 위에 누워 있다. 십여 년 전부터 공사를 해오고 있는 사동 신항이다. 이제 겨우 1단계 공사가 끝나고 2단계 공사로 5천 톤급 여객선 6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여객선 부두를 또 몇 년을 두고 건설할 것이라 한다. 조용하던 사동 해안이 사람들로 북적거릴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울릉도는 북적거려야 한다. 섬은 번성해야 한다. 우리의 영토와 영해를 지키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가두봉 등대와 눈을 맞추며 통구미로 간다. 재작년 가을 태풍 '나비'가 몰아닥쳐 길이며 산이며 해안을 가릴 것 없이 섬의 서쪽은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무참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침몰한 장면을 뉴스로 보면서 가슴 아파했었다. 그 현장을 달리고 있다. 그 때는 과연 섬에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참으로 다행히도 말끔히 복구되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섬사람 모두 나와 손을 합쳤다고 한다. 늘 험한 파도와 싸워야 하는 섬사람들의 굳센 의지가 섬을 다시 살려낸 것이리라. 가장 심한 곳은 통구미를 지나 서면의 남양, 남서리였다. 골짜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엄청난 큰물에 집들이 휩쓸리고 학교도 매몰되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이며, 하천은 아직도 북구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학교 건물이며 동네의 집들은 모두들 고쳐지거나 새로 지어졌다.

"……한숨밖에 안 나오고, 꼼짝없이 죽는가 싶었지요. 죽을힘을 다해서 토사를 쳐냈지요. 지금 보니 동네 발전을 3,4십 년 정도는 앞당긴 것 같아요."

한 주민의 말이다. 태풍 덕분에 오히려 동네가 발전했다는 말이다. 절망을 이겨낸 그 의지가 동네 발전을 앞당긴 것은 물론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토와 영해를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우산국 우해왕의 전설이 깃든 사자바위며 투구봉을 지난다. 그 태풍에 저 바위들이 다치지 않은 다행이다. 하마터면 울릉도를 울릉도답게 한 전설 하나를 잃어버릴 뻔했다.

사태가 잘 나서 사태구미라 불렀다는 그 사태구미에도 터널식 방호벽을 세워 놓은 것도 전에 없던 모습이다. 구암을 지나 회전을 도로를 오른다. 그리고 수층터널, 산막터널을 지난다. 지난 섬 살이 때 한창 공사를 하고 있었다. 터널 공사로 인해 섬의 절경이 파괴되는 것을 가슴 아파했었다. 차는 시원스레 터널 속을 달려나가고 있지만, 개발과 보전 사이의 갈등은 섬이 풀어가야 할 영원한 숙제다. 아직도 많은 개발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섬은 또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해야 할 것인가.

두 터널을 통과하여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의 학포를 내려다보며 태하로 간다. 태하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열두 굽이 현포령을 넘는다. 재만등을 넘었을 때 드러나는 절경 앞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언어를 잃어버린다. 망망한 푸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기묘한 형상의 대풍감,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지는 노인암과 현포항 정경, 바다 가운데의 코끼리 바위……. 사진으로만 담을 뿐, 그 모습을 드러낼 적확한 말을 찾을 수 없다. 평리를 지나 송곳바위의 우람하고 미려한 모습을 눈에 넣으며, 이경종 선생의 제자 사랑의 혼이 서린 바다가 있는 천부에 이른다. 섬에서는 비교적 인가가 많은 곳임에도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배도 부두에 묶인 채 한가롭기만 하다.

현포령을 넘으면서부터 거세게 불던 바람이 천부를 지나면서부터는 바닷물을 길 위로 밀어 올려 버린다. 죽암을 지나 딴바위며 삼선암과 눈인사를 나누며 섬목을 향해 달린다. 관음도에게는 손짓으로 인사하고 관선터널을 지나 섬목에 이른다. 섬 길 일주 행로의 끝이다. 섬목은 쓸쓸했다. 수층터널과 산막터널이 트이면서 도동서 자동차로 섬목에 이를 수 있게 되자 저동항과 섬목 사이를 운행하던 뱃길이 끊겼다. 섬목을 찾는 이가 줄게 된 것이다. 앞으로 섬사람들의 숙원인 석포와 저동 사이의 도로가 뚫리게 되면 섬의 끝 길 섬목은 더욱 한산해질지도 모른다. 절경 하나를 잃게 되지는 않을까.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천부에 다시 이르니 점심때가 되었다. 식당은 몇 곳이 있었건만 문을 열어 놓은 곳이 없다. 다 어디를 갔단 말인가. 한산한 섬의 모습이 피부에 닿았다. 현포에 이르러 겨우 문을 열어 놓은 식당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이 반겨 맞았다. 정식 한 상을 푸짐하게 차려낸다. 섬사람 인심이다. 맛있게 먹고 있으려니 몇 사람이 왁자지껄 들어선다. 그리고 아는 체를 한다. 알고 보니 저동 어판장에서 해물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오늘은 섬의 북쪽에 게를 팔러 왔다고 한다. 저동항에서 본 안면이 있다는 것이다. 식당 주인에게 몇 마리 건네며 삶으란다. 이 또한 섬의 인심이다. 붉은 빛이 선명한 홍게다. 점심을 먹는 사이에 게가 다 익었다. 모두 함께 먹자고 했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다. 기분 좋게 몇 마리를 샀다. 섬과의 인사에서 얻은 반가움이다. 그 반가움을 안고 다시 현포령을 넘어 태하로 간다.

향목령 밑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태하초등학교,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는 것은 지난 2월에 마지막 졸업식을 거행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까.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개교한 이래 2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올해 6명의 졸업을 끝으로 더 이상 졸업생이 없을 것이라 한다. 이제 전교생이 겨우 4명이 남았는데, 곧 재 넘어 남양초등학교로 보내고 문을 성하신당에 서 있는 섬의 수호신 동남동녀의 시비닫을 것이라 한다. 초등학교가 없어지면 중학교도 문을 닫아야 한다. 한미해져 가는 섬의 모습을 보는 듯해 가슴이 아려진다. 성하신당으로 가서 신당의 문을 열고 섬의 수호신인 동남동녀에게 기쁨과 즐거움의 새 섬 살이가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나만의 기쁨과 즐거움을 기도한다는 것이 민망하고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황토굴을 돌아 나와 돌아가는 길을 잡는다. 몇 개의 터널을 다시 통과하여 통구미를 지나 사동 해안을 품에 안으며 재를 넘는다. 내 삶의 자리가 있는 곳 모시개 마을로 든다.

섬과 인사를 하는 사이에 순박한 인심을 만났던 것도, 가슴 아린 정경들을 만났던 것도, 모두 내가 사랑해 가야할 섬의 모습들이다. 오늘 섬과의 인사는 섬사람들이 새 배를 지으면 무사 항해를 빌며 진수식을 하듯, 섬 살이의 새로운 출발을 섬의 신명께 아뢰는 제의라고 할까. 섬과의 사랑 언약을 새롭게 다지는 통과 의례라고 할까.

섬과 재회의 악수를 나누고 돌아가는 길, 성인봉 등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저동항을 지키고 선 촛대바위에 노을빛 햇살이 걸린다. 그 앞 바다 넓은 가슴 위에는 새로운 섬의 날을 예비하는 물살이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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