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흐른다 4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

황혼 녘의 소담한 열매 나뭇잎이 푸르고 붉었던 열정의 계절을 보내고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고 있는 늦가을 어느 날 저물녘, 문학상 수상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글과 더불어 살아온 평생에 ‘나도 이런 상 한번 받아 보고 싶다’라는 선망이 왜 없었을까만, 막상 그 일이 내 앞에 오고 보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주저로운 느낌이 드는 건 무슨 까닭일까. 지금 한창 의기롭게 글을 빚고 있는 젊은 문학인들도 많을 텐데, 의기와 열정의 시절을 다 떨쳐 보내고, 조용히 살 거라며 한촌 산곡에 깃들어 살고 있는 내가 껴안는 빛나는 상패와 근엄한 상장이 몸에 맞지 않은 옷 같지나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오늘 수상 대상이 된 내 책이 첫 책을 낸 지 꼭 이십 년 만에 우여곡절과 더불어 낸 것이라..

청우헌수필 2022.12.12

나무는 흐른다

나무는 흐른다 오늘도 일상의 산을 오른다. 지난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흠뻑 젖은 산에 강대나무 하나가 풀잎을 벗 삼아 쓰러져 누웠다. 강대나무는 싱그러웠던 몸통이며 줄기가 말라갈 때도, 흙을 이부자리처럼 깔며 쓰러질 때도 생애가 끝난 것은 아니다. 또 한 생의 시작일 뿐이다. 나무는 어느 날 한 알의 씨앗으로 세상을 만났다. 부는 바람 내리는 비가 강보처럼 흙을 덮어주었다. 뿌리가 나고 움이 돋았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늘 안겨 바라보던 그리운 빛이었다. 제 태어난 고향 빛깔이었다. 바라고 바라도 그립기한 그 빛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해도 달도 뜨고 지고, 새도 구름도 날아가고 날아왔다. 그 빛을 향하는 마음이 시리도록 간절한 탓일까, 하늘 향해 뻗어 오르는 줄기 옆구리로 가지가 덧생겨 나고 ..

청우헌수필 202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