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착증을 지고
허리가 자꾸 아픈 것은 금이 간 척추를 시술한 후유증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척주관 협착증이었다. 시술 의사도 처음엔 그렇게 알았던 것 같다. 협착증 치료를 위해 너덧 주에 한 번씩 아들이 사는 대처 시술 병원을 몇 달을 두고 오르내려야 했다. 노화 탓이라 했다.
통증은 이어지면서 좀처럼 낫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척추 시술 이후부터 그랬다. 척추 시술과 척주관 협착증이 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지만, 척추에 일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리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가정假定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내가 저 먼 나라로 가출한 지 너덧 달쯤 되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방을 나서다가 갑자기 혼절하고 쓰러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일어나려 했으나 등이 몹시 저리고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억지로 용을 써서 핸드폰을 끌어당겨 119를 눌렀다.
눈을 떠보니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 병상이었다. 쓰러지면서 벽에 부딪혀 얼굴에 타박상을 입고, 그 충격으로 1번 척추에 금이 갔다 했다. 독감에 무슨 무슨 영양소 결핍으로 쓰러진 것 같다 했다. 내 사는 한촌의 병원에서는 감당을 못해, 아들이 사는 대처 더 큰 병원 이송을 주선해 주었다.
두어 주일을 입원하면서 영양소 결핍도 치료하고, 척추에 간 금도 붙였지만, 허리 통증은 잦아들지 않았다. 해를 넘겨 가면서 대소 병원을 전전해도 사그라지지 않는 통증을 지고 지금까지 왔다. 언제 어디까지를 더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치료 받고 있는 병원에서는 12주에서 15주 정도 치료하면 될 것이라 진단했다. 12주를 묵묵히 치료받았지만, 진정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슨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 하니 DNA 주사를 몇 주 정도 맞아 보자 했다. 맞고 있지만, 진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허리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통증을 돌아보니, 이 병은 내 삶에 ‘협착증’이라는 명사로보다 ‘협착하다’라는 형용사로 먼저 찾아온 것 같기도 하다. 사전은 ‘협착하다’라는 형용사를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매우 좁다.’, ‘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이 매우 어렵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은퇴 생활에 든 지도 십수 년째가 넘어가고 있다. 혈기방장한 시절이 가버린 지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주로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방 안의 책상이다. 책상을 벗어나 강둑이며 산골짜기를 거닐며 물도 보고 새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내가 숨 쉬고 있는 공간이란 세상과는 떨어진 아주 좁은 자리에 지나지 않는다.
바깥세상을 볼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주일에 한 번씩은 한촌을 벗어나 글을 사랑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즐거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마음과 뜻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내 좁은 삶의 자리에 청량한 숨결을 더해 준다. 내 삶의 자리가 좁은 것은 내가 원해 만든 것이니, 그 건 그리 살지라도, 처지의 곤궁은 어찌해야 할까.
어쩌다 보니 홀로 살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내 생존과 생활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생존은 고단하고 생활은 쓸쓸했다. 무엇 하나 내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의식주 해결이 어렵고, 집을 나서지 않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런 삶을 힘겹게 버텨 나가던 어느 날, 혼절하여 쓰러지면서 척추에 금 가는 병고를 얻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의 처지가 되었다.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세상에는 늙고 병든 이를 보듬어 주는 제도가 있음을 이런 처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았다. 그 고마운 제도가 고마운 분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내 몸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집 안에만 있어도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협착한 자리의 숨결을 더욱 청량하게 도와주는 즐거운 만남이 내게로 왔고, 내 삶의 협착한 처지를 보살펴 주는 분이 내게로 와서 고단한 생존과 쓸쓸한 생활을 그런대로 따뜻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언제까지 그 청량함과 따뜻함이 나의 것이 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터이지만, 지금 남은 일은 견뎌내기 쉽지 않은 허리의 협착을 다스리는 일이다. 잘 치유되지 않는다.
믿고 싶다. 내 협착한 자리를 조금이나마 넓혀주는 즐거운 일이 어느 날 나에게로 왔듯이, 내 협착한 처지를 따뜻하게 데워 주는 분이 내게로 왔듯이, 어느 날인가는 내 허리의 협착증도 잘 다스려줄 의술과 그 손길이 나를 찾아오리라는 것을 간곡하게 믿는다.
그 믿음의 길을 따라 오늘도 병원 길을 나선다. 치료가 기대한 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거뜬해지리라 믿음으로 마음에는 협착증이 돋지 않기 바라며 병원으로 향한다. ‘삶의 의미’가 있는 곳에, 희망은 살아 있다는 어느 사회운동가의 말을 다시 새기며 걸음을 옮긴다. 협착증 그 허리를 지그시 누른다. ♣(2025. 2. 14)
'청우헌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언 십계명 (0) | 2025.03.11 |
---|---|
역귀성 (1) | 2025.02.01 |
이웃집 할머니 영희, 박-파안 (1) | 2025.01.14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2) | 2025.01.03 |
창밖의 벌목 (1) | 2024.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