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서
침대가 편안하다. 아늑하다. 지난날에는 침대 위에서 자는 잠이 어쩐지 편치를 못하고, 어떨 때는 허리가 저리기도 하던 때가 있었다. 그저 따뜻한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깔고 이리저리 뒹굴며 자는 것이 제일이라 여겼었다.
뭐가 잘못되었던지 기력을 잃고 쓰러지면서 척추에 금이 가는 환란을 당했다. 두어 주일 병원 신세를 지다가 나왔다. 허리가 몹시 아파 마음대로 드러누울 수도 없고, 누우면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눕고 일어나는 일이 세상을 바꾸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먼데 있는 아이들이 알고 사방 알아보고는 전동 침대를 들어오게 해주었다. 리모컨만 작동하면 앉은 사람을 눕게도 해주고, 누운 사람을 일어나게도 해주었다. 누우면 허리가 불편할 때 상체와 하체 부분을 약간씩 들어 올리면 허리가 편안해진다. 문명의 이기란 이런 것인가.
어느 날부터 책상다리 자세로 바닥에 앉기가 매우 불편해졌다.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느껴져 와서 앉기도 힘들고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세우고, 등을 기대니 그런 불편이 줄어들었다.
누구와 약속 장소를 정할 때도 그곳의 앉을 자리가 의자식이냐, 아니냐를 살펴서 될 수 있으면 의자가 있는 집을 찾아 약속을 정하기도 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진 탓인지 의자로 바꾸는 집이 늘어나 갔다. 행정 당국에서 보조금을 대주며 바꾸라 한다고도 했다.
지난날 인디언들은 의자에 앉기를 마다했다. 의자에 앉으면 생명을 주는 대지의 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땅 위에 앉거나 눕는 일은 인디언에게는 만물의 근원인 땅을 더 깊이 생각하고 느끼기 위하는 일이라 여겼다.
아이들에게도 땅을 가리키며 “우리 어머니 무릎 위에 앉자. 어머니로부터 우리 모두 나왔고, 다른 모든 생명체도 나왔다.”라고 가르친다. 인디언들은 병이 나도 자연에서 얻은 잎사귀와 뿌리, 그리고 심신의 안정으로 다 다스릴 수 있었다.
인디언에게는 야생이란 없었다. 자연이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더없이 친밀한 형제들이었다. 사람도 다른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그 자연 속에서 함께 살고 있기에 야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세상 모든 것이 야생이었다.
그러한 인디언을 야만인으로 본 백인들이 그들의 생활 터전을 침략하여 자신들의 문명한 생활 방식으로 살 것을 강요했다. 그 바람에 별다른 큰 병을 모르고 살던 인디언들이 갖가지 병을 앓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자기들에게 준 건 독한 술과 총과 병뿐이라 여겼다.
인디언들은 문명한 백인들이 지배한 후 얻게 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백인들이 만든 문명에 의지하게 된다. 문명이 병을 만들고, 문명이 만든 이기로 병을 이기려 했다. 문명이란 병부터 주고 그걸 미끼로 약을 주어 이득을 취하는 마약상 같은 존재라 할까.
내가 쓰러진 것도, 그로 인해 척추가 곤경을 당한 것도 모두 먹는 일, 사는 일에서 의지하는 문명 때문인 것 같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병원이라는 문명 시설과 의사라는 문명 인력에 의지하고, 지금은 침대라는 문명의 이기에 의지해 편안함을 얻고 있다.
이 악순환을 어이할까. 나만이 겪어야 하는 불행은 아닌 것 같다. 누가 이러한 문명을 넘어설 수 있으며, 누가 이 굴레를 벗어나 살 수 있는가. 누구도 이 문명을 벗어나 살 수 없는, 철저하게 문명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이 현실이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내가 지금 이 침대의 편리를 누리며 아늑함을 느끼고 있는 이 편안이 오히려 처연하다. 병든 문명인이 되어 살면서 이를 이겨내기 위해 다시 문명 속을 찾아 들어야 하는 것이 어찌 처연하지 않은가.
다른 도리가 있을까. 조금씩이라도 문명 속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애써볼 수밖에 없다. 문명이 만들어 낸 맛난 것들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문명이 빚어낸 편리한 기기를 조금이라도 덜 쓰기를 애쓰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처지에서 침대의 편리를 누릴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누워 있는 시간을 줄여 보자. 허리와 다리가 편치 못할지라도 두 발로 걷기를 애써 보자. 맛난 것을 탐하기 전에 좀 거칠지라도 몸을 도와줄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침대 위에서 일어나 바닥으로 내린다. 허리에 힘을 주며 팔다리를 흔들어 본다. 하늘을 보며 숨을 깊이 들이켜고 내쉰다. 뚜벅뚜벅 걷는다. 병 주는 문명의 너울이 조금이라도 벗겨지기 바라며, 문명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운 내 몸을 바라며-. ♣(202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