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바이러스 속에 꽃은 지고 나룻은 성해지고

이청산 2020. 4. 11. 15:12

바이러스 속에 꽃은 지고 나룻은 성해지고

 

잔잔히 피어난 봄까치꽃이 봄이 저만치 오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렸다. 트랙터 갈퀴를 따라 흙이 새살을 드러내면서 들판이 조금씩 꿈틀댔다. 노란 꽃다지며 하얀 황새냉이꽃이 폴폴 얼굴을 내밀었다. 산에서는 생강나무 움이 트는가 싶더니 노란 꽃술을 돋우어냈다. 진달래도 시샘하듯 진분홍 망울을 살짝이 드러냈다. 그렇게 들에 산에 봄이 왔다.

그렇게 온 봄은 산에는 진홍 연홍의 진달래며 노란 꽃술 방울방울 생강나무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들판 둔덕에는 연푸른 현호색이며 나풀거리는 자줏빛 제비꽃을 따라 제 낯빛을 드러냈다. 찬 바람이 조금씩 잦아들던 어느 날 강둑의 왕벚꽃이 어디서 기총소사라도 퍼부어 대듯 해사한 꽃잎들을 일제히 터뜨렸다. 연분홍 복사꽃 살구꽃도 산야를 환히 밝혔다.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다. 산에 들에 봄은 늘 그렇게 환희롭게 오면서 활짝 핀 꽃들로 절정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올해의 봄은 새움이 돋는 것처럼 그리 새뜻하게도, 화사하게 피는 꽃들처럼 그리 환하게도 맞을 수가 없었다. 봄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찬 바람이 시리게 불던 어느 날, 어느 큰 나라에서 공포스럽게 생겨난 무슨 신종 바이러스라는 게 우리나라에도 들어왔다. 맞이라도 하려는 듯 활짝 열어놓게 한 문을 통해 점령군처럼 기세도 등등하게 쳐들어왔다. 사전에도 없는 확진자라는 말이 뉴스를 아프게 했다. 봄까치꽃이 봄소식을 안고 파란 얼굴을 내밀 무렵이었다.

신문과 방송이 확진자를 바쁘게 알리면서 사망자가 나오고, ‘기저 질환이라는 생경한 말이 따라 떠돌았다. 생강나무가 움을 틔우려 할 무렵 오지랖 넓은 확진자 한 사람이 어느 한 지역을 마구 뒤흔들었다. 무슨 종교 단체의 신자인 그를 꼬투리로 하여 그 단체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의료진과 병상이 딸린다는 호소가 안타깝게 울려 퍼졌다.

진달래꽃 망울이 터뜨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봄은 온다고 반가워하며 이 꽃이 활짝 필 무렵에는 사람들의 얼굴도 가슴도 활짝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로 설렜다. 그러나 세상에는 손 잘 씻기와 함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외치는 목소리만 점점 높아갔다. 학교는 개학을 몇 번이나 연기하고, 거리에는 발걸음이 끊어지고, 시장은 문을 닫았다.

내 하얀 나룻은 조금씩 길이를 더해 갔다. 어느 날 모든 것이 차단되어 버렸다. 집을 나설 일도, 나서서 갈 곳도,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둘러쳐진 조그만 한촌, 그 마을을 사는 나에게는 피안으로 가는 강의 다리가 쓸모없이 되었다.

나룻을 왜 밀어야 할까. 스스로 단정한 모습을 갖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남에게도 정갈한 용모를 보여주고 싶은 심사로 하는 일이 아니던가. 내 단정은 마음만 바꾸면 되고, 남을 위한 용도는 없어져 버렸으니 나룻을 밀어 다듬어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자연을 사랑하여 한촌을 찾아와 살면서 이 또한 자연을 가꾸는 일로 치부하고 싶은 객기도 잠시 났지만, 거기에 나름의 간절한 기도를 담고 싶기도 했고, 투쟁(?)의 한 방편으로 삼고 싶기도 했다. 그 못된 바이러스라는 것이 어서 물러나 주기를 비는 심정과 함께, 19세기 초 서양의 체제 저항 심볼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저들을 거부하는 내 저항 의지의 표출 수단으로 삼고 싶었다.

세상에는 확진자와 사망자가 점점 늘어 가고, ‘마스크 대란이라는 것도 일어났다. 내 나룻은 하얗게 얼굴을 덮어가고, 진달래는 붉은빛을 토하며 만발해져 갔다. 진달래만이 아니다. 강둑에 늘어선 벚나무는 무슨 혁명처럼 희고 연붉은 꽃들을 일시에 터뜨려냈다. 천지를 꽃으로 휘덮어버렸다.

눈 시리게 붉은 색깔이며, 혁명의 기세로 터뜨려지는 꽃들에 놀라서였을까, 이 꽃조차 돌아볼 겨를없이 바이러스와 맞서 맹렬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사들의 용맹 덕분이었을까. 바이러스의 기세가 조금씩 꺾여가고 있다고 했다. 저들에 대항하는 전사들의 무용담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나룻을 만작거렸다. 그래도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라며, 저들이 백기를 드는 날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는 더욱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는 목소리는 낮아지지 않았다.

세계는 지금도 저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도, 우리를 침노한 저들의 기세가 시나브로 수그러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확진자가 만 명을 웃돌고 사망자가 이백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 와중에서도 완치자 수가 확진자를 초월해 가고 있다는 소식이 안도감을 더해 주었지만, 늦출 수 없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내 나룻은 성해져만 가고 있다.

봄이 이렇게 흘러가는가. 붉게 피던 진달래가 송이송이 꽃을 떨구어가고, 강둑의 벚꽃들도 보라 되어 잎들을 날리고 있다. 꽃은 져가는데 내 나룻은 피어나고만 있다. 저 꽃 진 자리에는 새로운 계절을 부르는 푸른 잎들이 돋아날 것이지만, 내 나룻은 언제쯤 새날을 맞을 수 있을까. 저들을 향한 내 투쟁을 언제 끝내고 얼굴에 승리의 붉은 빛을 채울 수 있을까.

머잖아 그날이 올 것이다. 확진자를 완치자로 바꾸어 내는 우리의 용감한 전사들처럼, 꽃 진 자리를 푸름으로 채워내는 저 꿋꿋한 나무들처럼 승리의 그 날이 우꾼하게 올 것이다. 나룻이 진 해맑은 모습으로 그리운 사람들의 따뜻한 모습과 함께할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그 믿음 속으로 그날이 또 하나의 봄꽃이 되어 올 것이다. (2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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