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바이러스! 그래도 봄은 온다

이청산 2020. 3. 13. 13:10

바이러스! 그래도 봄은 온다

 

세상은 아직도 불안하고 두렵다. 짙게 드리워진 병과 죽음의 그림자가 지워질 기약이 보이지 않는다. 무슨 역병, 병균, 바이러스라는 것이 이따금 나타나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는 했지만, 막상 우리 앞에 닥쳐와 있는 이 병을 보고 있으려니 끔찍하고도 암울한 전율이 온몸을 죄게 한다.

지금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아비규환의 참담한 고통을 겪고 있을 터이지만, 날아다니는 병균을 바라보며 사회적 거리속을 두려움으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러한 사태가 오래 이어지다가는 어느 쪽의 몸도 마음도 모두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 것 같다.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세상의 이 끔찍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대지는 새 생명의 싹들이 날로 힘을 더해가며 꼬물대고 있다. 들에는 하늘빛을 닮은 조그만 봄까치꽃이 일찌감치 두렁에 앉아 봄을 부르고 있고, 산에는 생강나무가 노란 꽃술을 어여삐 달고 잠자는 봄을 깨우고 있고, 진달래도 진홍 꽃망울을 키워가며 봄 채비를 하고 있다.

다행히, 이제 이 바이러스도 한고비를 넘어가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지역에 큰불은 조금씩 잡혀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우리의 대응이 다른 나라의 모범 사례이며, 세계적 표준이 될 것이라고 하는 나라 책임자의 성급한 제 공 돋우기가 또 무슨 동티를 나게 하지 않을까 싶어 속이 끓지만, 그러나 이 병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진리가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봄은 그리 쉽사리 오는 게 아니다. 봄은 지난한 계절을 겪고 헤치며 온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듯이-.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 흔들어 깨우면 /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이성부, )

그렇다. 언젠가 봄은 오겠지만 두둥실 떠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리 쉬 오지는 않는다. 무성하던 꽃과 잎들을 제 난 뿌리로 다 돌려놓고, 거세고 거친 비바람 눈보라를 맨몸으로 받아내며, 때로는 싸움도 한판 하면서 새로이 깨어나듯 달려오는 봄이 아니던가.

올봄은 더욱 반갑다. 이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무참하고도 은결든 진저리를 쳐야 했다. 쳐들어오는 바이러스는 내버려 둔 채 아집에만 매몰하고, 쓰러지거나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병균 막이 마스크 하나 편하게 대주지 못한 채 공 내세우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이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몸과 마음을 더욱 은결들게 했다. 그렇지만 봄을 향한 기대는 거둘 수가 없었다.

마치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처럼, 아픈 사람 낫게 하는 따뜻한 의술을 가진 사람들은 원근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아픔 다스려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무엇이 소용될까, 무엇을 내어줄 수 있을까, 마음과 힘 모으기를 마다치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더디게라도 봄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람이 아무리 차갑고 사나워도 뿌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흙이 있기에, 그 흙 사이로 흐르는 따사로운 물줄기가 있기에 봄을 품은 목숨들은 결코, 얼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았다. 그렇게 긴 겨울 설한풍을 이겨낸 목숨들이 있기에 봄은 승리의 전사가 되어 우리에게 올 것이다.

이제 머잖아 이 강산이 활짝 필 것이다. 노랗고 붉은 개나리 진달래며, 희고 연붉은 왕벚꽃 산벚꽃이 대지를 수놓는 봄이 화사하고 해사한 걸음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시인이 또, ‘의 시상을 이렇게 마무리하듯이-.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 너를 보면 눈부셔 /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 가까스로 두 팔 벌려 껴안아 보는 /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이성부, )

아직, 이처럼 승전가를 부를 때는 아니다. 지금도 아수라의 몸부림은 그쳐지지 않고 있다. 병상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그 고통스런 병상도 얻지 못해 외로이 신음하는 사람, 증세를 알지 못해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 어디 그뿐인가, 무슨 죄를 짓거나 죄라도 받을 듯 다른 이의 얼굴 마주칠까 조바심내야 하는 사람, 감옥이라도 사는 듯 울울한 심사를 가눌 수 없는 사람 들이 있음에야 어찌 승전가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다행이다. 어찌하였든, 날이 갈수록 그런 사람들의 수효가 시나브로 줄어들고 있다지 않은가. 통계 그래프의 곡선이 조금씩 고개를 숙여 가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이 일찌감치 두렁 위에 나앉은 봄까치꽃처럼, 조금씩 벙글어져 가는 진달래 망울처럼 봄을 알리고 맞이하는 상서로운 징조가 되기를 빌 뿐이다.

그렇게 봄은 올 것이다. 저 겨울의 잔설을 헤치고 온갖 꽃들이 활짝 필 것이듯, 그리하여 눈부신 꽃 대궐을 지을 것이듯, 우리에게 그 봄은 올 것이다. 바이러스의 무수한 잔해를 딛고 승리의 환희를 부를 봄은 기필코 올 것이다. 활짝 편 가슴으로 껴안고 싶다.

,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20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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