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노자(老子)』로 바이러스 읽기

이청산 2020. 3. 25. 14:36

『노자(老子)』로 바이러스 읽기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있다. 어느 큰 나라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제 나라의 엄청난 사람들을 쓰러지게 하거나 죽어가게 한 것은 물론, 다른 여러 나라로도 마른 철 산불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 수많은 인류가 희생의 제물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침투해 들어왔다. 전문가들을 비롯한 온 나라 사람들이 침입하는 문을 빨리 닫으라 했건만, 큰 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문 열어놓고 모기를 잡으려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문을 닫지 않았다. 그 큰 나라와 가까이하려 한 나라일수록 바이러스는 제 세상인 것처럼 기세를 마구 뻗쳐 갔다.

큰 나라라서 그랬을까,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제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제 나라 사람들의 목숨 아닌가. 제 나라 사람이 쓰러지고 있는데도, 그 큰 나라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며 그 나라 도와주기를 애썼다. 그 나라 발생지의 이름을 딴 바이러스 명칭을 못 쓰게도 했다.

이들에게는 사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저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가치가 여러 가지 분야에서 따로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생각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일들은 모두 지난날의 쌓인 폐단으로 돌려 척결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가.

바이러스가 점점 맹위를 떨치며 숱한 사람들이 쓰러져 가고 있을 즈음에 비로소 무슨 대책이다 뭐다 하면서 말과 일들을 쏟아냈지만,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료 인력도 모자랐고, 병실도 딸렸다.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는 마스크 하나 사람들에게 제대로 씌워주지 못한 채, 손 부지런히 씻고 뚝뚝 떨어져 지내라는 사회적 거리만 목청 돋우어 외치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 볼 수도 없고, 아이들 가고 싶은 학교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암담하고 울울한 세상을 풀어줄 지혜며, 바이러스가 들지 않게 하거나 든 것도 힘을 잃고 물러나게 할 묘방이 없을까. 이럴 때일수록 <노자(老子)>가 말한 치국의 도가 다시 돌아 보인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조리하는 것과 같다. 도로써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힘을 쓰지 못한다. 귀신이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힘이 있어도 사람을 해칠 수가 없는 것이다. (治大國若烹小鮮 以道莅天下 其鬼不神 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道德經』 第60)”

나라 다스리기를 작은 생선 조리하듯 하라는 말은 무엇인가. 조심조심 정성을 다하라는 말이다. 모진 정치를 하지 말고 선정을 베풀라는 말이다. 제 편만 잘 챙기는 정치, 고집 아집으로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널리 베풀어 두루 잘 살게 다스리라는 말이다.

()로써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힘을 쓰지 못한다.’한 말씀에서 귀신바이러스로 바꾸어 새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정치를 베풀면 바이러스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바이러스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로 사람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런 마음과 일 앞에서는 아무리 고약하고 사나운 바이러스일지라도 힘을 쓸 수가 없다는 말로 새겨보고 싶다. 무엇보다도 나라 사람들의 삶을 먼저 생각하여 일찌감치 방비를 철저히 한 나라는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로써 다스리는 세상의 그 란 무엇일까. 노자가 성인의 말씀을 빌려 내가 억지로 일을 하지 않아 백성이 절로 바뀌고, 내가 고요를 좋아해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일을 꾸미지 않아 백성이 저절로 부하게 되고, 내가 욕심을 내지 않아 백성이 저절로 통나무가 된다.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道德經』 第57)”하고 한 말이 있다.

이 말은 노자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지만, 위정자들에게도 그대로 소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무위(無爲)’는 백성의 뜻과 원에 따라 다스리는 일로 볼 수 있고, ‘무사(無事)’는 백성의 뜻과 원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호정(好靜)’은 시비, 분별, 차별 따위가 없는 고요한 마음이요, ‘무욕(無慾)’은 물론 사심 없는 마음이다.

위정자가 그런 마음을 가지면 백성은 절로 감화되고, 넉넉해지고, 바르게 되고, 소박해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는 나라가 그런 생각들로 다스려졌다면, 바이러스가 나라의 모든 것을 뒤엎을 정도로 이리 기승을 부릴 수가 있었을까.

노자는 또 성인들에겐 고정된 마음이 없어, 백성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사람에게 선으로 대하지만, 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하니 선이 이루어진다.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德善 『道德經』 第49)”라고 했다.

성인에게는 편견, 아집, 독단 등이 없이 항상 백성의 마음을 따르고, 나하고야 어떻든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니 세상이 선해진다는 말이다. 오직 제 편만 선으로 여기는 편협된 세상에는 바이러스 같은 재앙이 더욱 만연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예부터 민심이 흉흉하면 궂은일도 되게 생기는 역사가 있어 오지 않았던가.

모든 일이 정치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정치가 뭇 사람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자의 한 말씀을 더 들어보자.

정치가 관대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깐깐하면 백성이 못되게 된다. (其政悶悶 其民淳淳 其政察察 其民缺缺, 『道德經』 第58)”고 했다. 정치가 백성을 따뜻하게 껴안을 때 바이러스가 침노하지 못할 수 있고, 정치가 백성을 힘들게 하면 백성도 삶이 거칠어져 바이러스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로 읽는다면 지나친 억설이 될까.

다행히, 바이러스의 그 가공할 기세가 우리에게서는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다고 한다. 완전히 물러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노자>로 바이러스를 돌아보며, 몸에만 바이러스가 침노하지 않기를 바랄 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일에도 바이러스가 들 수 없는 세상이 되기를 빌어본다. 그러기 위해서 나라 정치든 개인 삶이든 모든 일에 푼푼한 사랑이 깃들기를 고구정녕 바라본다.(20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