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바이러스, 그 '사회적 거리' 너머

이청산 2020. 3. 20. 14:50

바이러스, 그 '사회적 거리' 너머

 

지금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불처럼 거세게 번지고 있다. 마침내 세계보건기구에서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바이러스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고 있는 지역에 대해 감염병 사상 유례없는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각급 학교의 개학이 두 주일 더 늦추어졌다. 달포를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싸운 끝에 큰불은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다지만, 아직도 잔불은 여러 지역에서 불씨를 돋구어가고 있다.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손 씻기다.

창창한 학사 일정에도 불구하고 예년에 비해 한 달도 더 넘게 학교의 개학을 미루는 걸 보면, 아직 그 사회적 거리유지가 무엇보다 긴절한 것 같다. 거리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아 암담하고 불안하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이 질곡의 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희로애락이 분분하게 얽히면서 얽어져 오던 한 생애의 일손을 홀가분히 털고, 이제는 평안하면서도 뜻 있는 삶을 가꾸어보리라 하고, 물 맑고 산 푸른 곳을 찾아와 산 지도 벌써 십 년째가 되었다. 그간 물도 보고 산도 오르고, 읽고 싶은 글도 읽고 써지는 글도 쓰며, 때로는 흙도 갈아 파릇한 싹들과 미소도 나누면서 심기를 가볍게 보듬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무슨 수도자도 아니고 예사롭게 사는 사람이 늘 산과 물만 보고 바람 소리 새소리만 들으며 살 수 있는가. 보며 마음을 주고받고 싶고, 만나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싶은 사람들이 왜 없을까. 가끔은 산이며 바람 소리를 뒷짐으로 지고, 인연 둔 곳으로 달려가곤 한다.

마침, 한 주일에 한 번씩 불러주는 곳이 있어, 아는 게 없어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재미로 기꺼이 내닫는다. 매주 금요일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아온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 또 하나 내 삶의 큰 즐거움이 되고 있다.

나와 인연 둔 사람들은 내가 먼 길을 달려온다고 내 일정에 맞추어 모든 일을 추슬러 주니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한 주는 낭송가 회원들을 만나 시를 외고, 한 주는 문학회 사람들을 만나 글과 삶을 나누고, 또 한 주는 그리운 친구들 만나 막걸릿잔을 기울이고…….

그러던 어느 날, 철커덕! 소리 없는 자물쇠가 채워지면서 몸이 묶이고 말았다. 밖에서 채워졌으니 남이 열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내가 열고 나갈 수는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이 넘어가지만 풀려날 기약을 걸 수 있는 데가 보이지 않는다.

불교에는 한 주일쯤 독방에 스스로 갇혀 화두에 정진하는 수행법이 있다고 한다. 그 수행자가 어느새 완전 고립된 처지가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쓴 수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심정이 이해될 듯도 하지만, 나는 지금 편안하고 자연스럽지도 못하고, 오히려 타인의 시선이 그리운 건 무슨 까닭일까. 나는 수행 생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이 내 발을 억지로 묶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발을 묶고 있어야 하는 것을 두고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라 했다. 지금도 보건 정책 담당자들이며 매스컴에서는 그 거리 두기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바이러스는 오직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통해 번져 나는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 어쩔 수 없이 그 절박한 사정을 좇지 않을 수 없다 할지라도, 이 답답한 심사는 어찌해야 할까. 세상을 향한 그리움은 어쩌란 말인가. 문득 어느 시인의 시구가 심장을 파고든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 바로 너다.(나태주, 그리움)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며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 심성보의 당신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들을 함께 외던 낭송가들은 이 척박한 시간을 무슨 시로 이겨내고 있을까, 애써 쓴 글을 앞에 두고, 이런 건 이렇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거라며 글 고민을 함께 나누던 문우들은 또 무슨 글로 바이러스를 꿰뚫어 보고 있을까. 바이러스 속을 살고 있는 대구의 친구 건일이, 일순이, 경화는 잃어버린, 아니 빼앗겨버린 막걸릿잔 속에 무얼 따르고 있을까. 오직 흐르는 구름이며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 목 타게 보고 들으며 그들을 그리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첫 발병부터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경과를 되짚어 보면, 분노를 들끓게 하는 사람이며, 울화를 치솟게 하는 일들이 없지 않지만, 그 분노와 울화가 이 바이러스 앞에서는 무력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쓰러져 병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사람이며 그 병마에 잡혀 세상의 손을 놓아버린 사람들에게는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믿을 건 를 건실히 건사하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어느 정신과 의사는 이럴 때일수록 심리 방역이 필요하다며, 자신에 대한 격려와 긍정, 위생의 실천과 그 지식,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도움을 나눌 수 있는 인적인 정보, 그리고 심신의 균형을 그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운 사람들아, 우리의 대책도 이 심리 방역밖에 없을 것 같구나. 너와 나 사이에 놓인 이 거리에 서로에 대한 격려와 긍정을 싣고, 바이러스를 내치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따뜻하게 나누며, 흔들리지 않는 심신 속에 포근한 희망을 쟁이며, 손에 손에 넉넉한 거품을 일게 하자. 그것 말고 무엇이 우리를 잇게 해줄 수 있을까, 그리운 사람들아!

바이러스, 사회적 거리너머에 있는 그리운 풍경들아, 사람들아-.(20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