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데(Alphonse Daudet)는 ‘프랑스의 선녀’라는 단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프랑스의 선녀들은 이 나라의 시였고 신앙이었으며, 천진스러움과 젊음의 상징이었고, 그들이 나타났던 곳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곳이 되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철도가 생기면서 터널을 만들고, 작은 호수를 메우고, 많은 나무들이 베어져 선녀들이 편히 쉴 곳이 없어졌다. 선녀들은 살 곳을 잃고 도시로 나가 제사 공장에 들기도 하고, 사과 장수가 되기도 하고, 꽃다발 강매에 나서기도 하고, 최후의 선녀는 방화범이 되어 재판정에 서야하는 신세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작자 스스로 ‘꾸민 이야기’라고 하듯, 우화 형식을 빌려 꾸며낸 것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문명의 발달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어 가면서, 꿈이며 환상, 신비와 같은 서정적 정신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고, 타산적, 물질적인 가치에 매몰되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 경종을 울리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도 한촌의 아침 강둑길을 걷는다. 아침이면 언제나 걷는 나의 산책길이다. 한촌을 산 지 수년이 흘러가는 사이에 이 강둑도 많이 변했다. 처음 걸을 때는 발자국 길만 겨우 나 있을 뿐 양쪽 길섶으로는 온갖 풀들이 자욱이 우거진 풀숲이었다. 그 풀숲에서는 철철이 다른 풀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피어났다.
봄에는 봄까치꽃, 씀바귀꽃, 애기똥풀, 제비꽃, 달래꽃, 망초꽃, 달개비꽃, 여름에는 지칭개, 금계국, 달맞이꽃, 개망초, 싸리꽃, 나팔꽃, 박주가리, 익모초꽃, 가을에는 구절초, 금불초, 나도송이, 도깨비바늘, 메꽃, 유홍초, 물봉선, 가을에는 엉겅퀴꽃, 쑥부쟁이, 벌개미취, 산국, 감국, 사위질빵… 어찌 이뿐이랴, 형형색색의 수많은 풀꽃들이 피고지기를 거듭하다가 겨울이 되면 모든 풀들은 연갈색 다갈색 익은 빛깔로 새 계절을 준비하고 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듯 마음이 낙낙하고도 포근해진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정감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면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행복감이 이 풀숲 길에 다 깃들어 있는 듯한 환상에 젖기도 한다. 때로는 짓궂게 달라붙는 도깨비바늘이며 슬쩍 옷자락을 당기는 환삼덩굴에 발길을 잡히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린아이의 아양마냥 귀엽기만 했다. 그 환상의 즐거움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풀숲 강둑길은 어느 날 회반죽에 참혹하게 덮여버리고, 풀꽃들은 회반죽 길섶 끝자락을 잡고 고달프게 명맥을 이어가야 했다. 그 명맥마저도 어느 농군의 손에 의해 무참히 잘리고 뽑혀나가면서 좁다란 길섶 자리에 들깨가 줄지어 돋아나고, 갖가지 자태와 향기의 꽃자리는 무성한 들깻잎이 뒤덮었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강둑길 정자를 사이에 두고 이쪽만을 회반죽으로 덮고 저쪽은 아직도 풀꽃길이 남아 있다. 안심할 일은 아니다. 언제 저쪽도 마저 덮일지 모른다. 온 강둑을 다 덮는 것이 주민을 위한 관의 할 일이라 했다. 나의 환상과 행복은 관의 그 일에 언제 짓이겨질지 모른다. 머지않아 닥쳐올 일일 것이다. 모든 길이 회반죽의 팍팍한 길로 변해버리면 무엇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걸어야할까.
그래도 강물은 언제나 맑다. 우거진 갈대숲 사이로 때 묻지 않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저 물은 세상의 모든 때들을 씻어 담아 흘러줄 수 있을까. 흘러가면서 모든 것을 헹구어 정화시킬 수가 있을까. 맑지 못한 물 한 줄기가 강물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양어장의 수차가 강물을 바라보며 오늘도 맹렬히 돌아가고 있다. 어떤 이가 산 앞들 한쪽의 논 몇 마지기를 사들이더니 몇 곳에 땅속 깊숙이 관을 박아 지하수를 뽑아 올렸다. 칸을 질러 회벽을 쌓고 물을 가두어 고기를 풀어놓았다. 헤엄쳐 다니는 고기들 위로 수차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분주히 돌아가고, 고기는 주인이 뿌려주는 먹이를 먹으며 살져가고 있다. 고기의 밥이 되고 배설물이 된 지하수는 도랑을 타고 흘러내려 강물 옆구리를 파고든다. 강물의 늑골은 얼마나 시큰거릴까. 한촌 사람들의 마음처럼 순박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들판에 잿빛 슬래브 삼층 건물이 들어서고, 양어장 위로 높다란 철골 구조물이 세워졌다.건물은 고기를 잡아 파는 장삿집으로 쓸 거라 하고, 철골조는 고기를 쪼아 먹는 새들을 막기 위해 지붕을 덮을 거라 한다. 저 집이 장삿집이 되면 경운기가 드나들던 농로로는 탐식가의 차들이 부지런히 드나들 것이다. 새를 막는 저 지붕이 가려버리는 고운 산꽃이며 찬연한 단풍의 황홀경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사람이 고단한 까닭은 사람에게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타산 속으로 강물이 아픔을 안고 흘러야 하고, 환희롭던 풍경들이 뭉개져가야 한다. 강물만 아픈 게 아니다. 아늑한 정경 대신에 잿빛의 삭막한 풍경을 담아야 하는 사람들의 눈은 얼마나 시려야 할까. 하릴없이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마음들은 또 얼마나 울연해야 할까.
살 곳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도데의 선녀만이 아니었다. 나도, 한촌 사람들도 고즈넉한 삶의 터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선경에서 쫓겨난 선녀들은 도시로 나가 여공이 되고 장사꾼이 되고, 급기야는 화려한 도시에 불을 지르고 마는 방화범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가야 할까. 방화범이 된 선녀는 재판정에서 “오, 여러분, 모두 태워 버리자고. 태워 버려요. 태워 버려요!”라고 절규할 때, 재판장은 “이 여자는 정말 심각한 정신병자입니다. 데리고 나가시오!”라는 한 마디로 재판을 끝냈다. 풀꽃을 짓밟고 있는 회반죽은 강둑을 두껍게 덮고 있고, 생기로운 산 풍경을 막고 있는 저 흉흉한 잿빛 건조물들은 들판의 당당한 점령군으로 서있다. 저 광경 아프게 바라볼 뿐인 사람들은 마침내 어디로 쫓겨 가야 할까,무엇에다 하소연해야 할까, 어떤 말로 재판을 받아야 할까.♣(201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