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끼고 자전거를 달리던 것을 주머니에 넣고 달린 게 화근이었다. 이튿날 아침에야 잃어버린 걸 알고, 눈에 한껏 힘을 주어 살피고 또 살피며 길을 되짚어 달려보았지만, 어이없고 안타깝게도 장갑은 종내 보이지 않았다. 산을 오르고 자전거 달리는 운동을 좋아한다고, 그 운동 잘 하라고 정 깊은 친구가 각별한 마음을 담아 선물해준 것이다. 움직였던 자리 어느 곳에, 주머니 어디에 곧장 있을 것만 같아서 뒤지고 또 뒤져 보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626914358FEDF0406)
손에는 아직도 끼고 있을 때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보드라우면서도 따뜻하고, 가벼우면서도 아늑히 감싸주던 그 촉감, 끼고서도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해주던 그 편리, 그것은 곧 선물해준 친구의 정어린 마음 같기도 했다. 아끼고 사랑하던 것을 잃었을 때의 아린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은 ‘오호 통재!’라 했던가. 그 말을 몇 번을 외쳐도 애석한 마음이 삭혀질 것 같지 않다. 지금이라도 어디서 툭 나타나 줄 것만 것은 환영이 눈앞을 맴돌고 있다. 그 친구에게 무어라 해야 할까. 사실, 무엇을 잃은들 아쉽지 않고, 안타깝지 않은 게 있으랴. ‘잃어버림’ 뒤에는 늘 잃은 것이 지녔던 가치보다 더한 정감이 상처가 되어 남기 마련이다. 그것에 담겨 있는 사연이며 사랑이 깊고 클수록 그 상처는 더욱 애틋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참 많은 것을 잃고 살았다. 혈친이며 친구며 정인이며 많은 사람들을 잃고, 믿음이며 사랑이며 관심이며 많은 심정들을 잃고, 고향이며 기억이며 세월이며 많은 옛것들을 잃고, 소지품이며 애용품이며 금품이며 많은 물질들을 잃으며 살아왔다. 떠나가서 잃고, 떠나보내서 잃었다. 오해로 잃고, 몰각으로 잃기도 했다. 무지로 잃고, 불의로 잃는 일도 많았다. 그 때마다 심신이 많이도 아렸다. 잃은 것의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그리도 아프게 하는 걸까. 잃은 것의 그 가치가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것에 읽힌 사연이 속을 쓰리게도 하고, 그것에 서려있는 세월이 심신을 애달프게도 한다. 그것보다 더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을 오롯이 간수하지 못한 자신의 덩둘함일지도 모른다. 또 더 아픈 것이 있다. 그것을 매개로 하여 맺어졌던 세상과 나와의 관계가 깨어지기도 하고, 내 삶의 한 질서가 파괴되기도 한다는 것이다.잃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아끼는 물건이든 마찬가지다. 사람이라면 그 깨어짐과 파괴가 더욱 심중할 수도 있다. 자신의 애용품을 잃어본 기억은 누구나 몇 가지쯤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때의 심정이 어떠했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 같은 상실감은 또 어떠할까. 갈가리 찢어지는 가슴의 그 아픔은 무엇으로도 위무될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아픔의 치료제는 없다. 세상에 똑 같은 것이란 있을 수 없지만, 똑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으로 잃어버린 자리를 채운다고 하더라도, 잃은 것에 대한 아픔이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다.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언정, 아픔은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다스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있다면 ‘시간’이다.시간의 흐름을 따라 기억의 강도가 시나브로 여려지면서 아픔이 조금은 가라앉을 수도 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이 치유일 수는 없다. 아픔이 내재되고 잠재되어 갈 뿐이다. 어떤 계기를 만나게 되면 아픔은 새삼 돋아나 다시 마음 아리게 하고 몸부림도 치게 한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lost2.jpg) 오늘도 산을 오르고 자전거를 달린다. 쌍지팡이를 짚으며 오르는 손이 허공을 떠다니는 듯 허전하다. 손에 끼워져 있어야할 것이 없다.다른 것을 낀다고 한들 정감이 어찌 같을까. 자전거 핸들을 잡은 손도 마찬가지다. 내 손이 아닌 것만 같다. 지금이라도 내가 달리던 길 한 가녘에서, 운동복 주머니 속 깊은 곳에서 ‘나 여기 있소!’하면서 나타날 것만 같다. 반갑게 주워서, 기쁘게 꺼내어서 손에 끼고 여상스럽게 산을 오르고, 신나게 은륜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찌해야 할까.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 미련과 아픔을 어찌 다스려야 할까. 이제부터라도 잃어버릴 것 없이 하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 일일까만, 그것이 될 일인가. 어떻게 산들 잃어버릴 것이 어찌 없을 것이며, 어찌 잃어버리지 않고 살 수 있으랴. 살아오면서 얻은 게 있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있는 것이겠지만, 그 얻은 것이 영원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니랴.얻은 것이 많을수록 잃을 것도 많을 것임도 하릴없는 일이다. 그렇구나, 삶이란 곧 잃어버림의 과정이구나. 지금 잃어버려 나를 떠나게 된 것이 언젠들 나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인가. 사람도, 그의 마음도, 물질도, 그것에 대한 집심도 언젠가는 모두 나에게서 떠날 것이다.길고 짧음의 차이일 뿐이다. 마침내 내 영육이 세상을 떠나는 날, 그래서 내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그날이 되면, 잃어버릴 것을 더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장갑이여, 잘 가거라. 조금 일찍 나를 떠난 것이 애석하지만, 언젠가 나에게서 떠날 것이 아니더냐. 잘 떠나가거라. 나도 언젠가는 가야할 것이거늘. 문득 박목월의 ‘나그네’가 외고 싶어진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2017.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