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내 한촌 생활도 어느덧 예닐곱 해를 지내오면서 새삼스레 이 궁벽한 한촌을 사는 까닭을 돌아볼 때가 있다.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면, 그래서 그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문학이며 예술에 관한 담론도 함께하려면 이따금 지난날의 대처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왜 이곳에 사느냐?’고, 아내가 가끔씩 볼멘소리를 하지만, 이곳을 살아가면서 차를 타고 달려 나가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싶어 하는 생각과 마음은 마냥 어쩔 수 없다.
풀꽃이 있고 강물이 보이는 아침 강둑길이며, 노을빛 아늑한 숲속 해거름 산길을 어찌 마달 수가 있단 말인가. 그립고 정다운 사람들을 어찌 멀찌가니 두고 볼 수만 있단 말인가. 섬이며 궁촌을 마다 않고 몇 해마다 한 번씩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오던 한 생애를 마감해야 했다. 서먹한 이웃들이 사는 도회의 층층 커다란 집 그 한 자리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소리는 요란한 기계음에 묻혀가고, 들길 산길은 포도(鋪道)의 어지러운 차선과 바꾸어야 하는 도회지의 생활에 쉽사리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산과 물이 그리워지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젖고 싶어질 것 같았다. 문화와 인공의 편리야 모를까만, 자연과 무위의 자유가 더욱 포근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한 생애의 마감 날을 앞두고 모든 상념을 다 받쳐 내린 결단은 몇 해 전에 봇짐살이로 이태를 살았던, 강과 산이 있는 한촌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때의 강과 산이 살가운 기억으로 떠오르곤 했다. 마침내 결행을 했다. 도회로 돌아가야 할 짐차를 돌려 조금은 궁벽하다 할 이 한촌으로 내쳐 왔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4244B43588ECA971F)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고갱(Eugène Henry Paul Gauguin, 1848~1903)이 돌아보인다. 파리에서 태어난 고갱은 갖은 간난을 헤치면서 증권 중개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구가하기도 했지만, 그림에 몰두하게 되면서 질식할 것 같은 도시 문명을 떠나기로 한다. 자연의 순수를 찾아 프랑스의 서부 해안과 남부로 가서 작품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는 원시 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섬 타이티에 이르게 된다. 타히티로 가는 까닭을 “이 목가적인 섬과 원초적이며 순박한 사람들에게 매료당했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라고 했다.![](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hanchon52.jpg) 고갱은 자연과 자유를 찾아 온 타이티에서 60여 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도 여기서 남기게 된다. 삶에 대한 자신의 심오한 철학을 담은 대작이다. 나는 지금 이 한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창으로는 들판과 강둑이 보이고 남창으로는 숲정이가 보이는 곳에서 어쭙잖은 글줄이나마 쓰고 있는 내 삶을 다시 돌아본다. 내 범소하기 짝이 없는 삶을 두고 예술혼을 활화산같이 태운 고갱 같은 이에게 어찌 견줄 수가 있을까만, 그러나 나는 무엇을 꼭 이루어야겠다는 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다. 쓰고 싶으니 쓰고, 쓰는 것이 즐거워서 쓸 뿐이다. 자연을 찾아와 자연 속을 살고 있는 것처럼, 사는 것도 쓰는 것도 자연에 맡길 뿐이다. 자연은 곧 무위요, 자유(自由)요, 자유(自遊)라 하지 않았던가. 내 글은 삶의 깊은 철학도, 불타오르는 예술혼도 담고 있지 못하지만,도회의 번잡 속을 헤매고 있었다면 지금 같은 삶이나마 여밀 수 있을까.이런 나를 두고 ‘호사가’[dilettante]*라 해도 좋고, 혹은 ‘주변인’(周邊人)인이라 해도 하릴없는 일이다. 자연이 좋아 자연 속을 산다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못 잊어 몇 번씩이나 차를 갈아타면서까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걸 보면, 어쩌면 나는 청산(靑山)과 시가(市街) 사이를 서성이는 주변인일지도 모른다.
강의 맑은 물과 길섶의 풀꽃이 좋아 강둑을 걷고, 잎새 속의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아 산을 오르면서 자연에 침잠하듯,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달려가 만나는 것 또한 자연이 아니랴. 그 풀꽃이며 산바람이 좋아 글을 쓰고, 정다운 이를 사랑하여 글이 쓰고 싶어진다면 이 또한 무위의 자유가 아니랴. 그렇게 나는 자연을 살고 싶고 무위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나도 땅 위의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에 어찌 무심할 수 있을까만,그러한 것조차도 무위로 맞아들이고 싶다. 그렇게 이 한촌을 살고 싶다. 어찌하였거나 한촌은 내 삶의 아늑한 배경이다. 아니, 바로 그 아늑한 삶이다. 반짝이는 윤슬을 싣고 갈숲 사이로 맑게 흐르는 강물을 가슴에 담고, 숲 사이 청량한 바람에 몸과 마음을 씻는 것만으로도 한촌의 삶이란 편안하고도 포근하지 않은가.![](http://lib7269.cafe24.com/images/chungwoohun3/hanchon54.jpg) 그 아늑함에 세상살이의 사악이 어찌 끼어들 수 있으랴. 그 물이며 숲과 사는 사람들은 오직 자연으로 살고 있다. 그 물과 숲이 건사해내는 들녘에 몸을 묻으며 순박하게 산다. 고갱의 ‘순박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이 한촌에 모든 것을 묻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할까, 지금 이 한촌에도 전에 없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풀꽃 길은 회반죽으로 덮여가려 하고, 논들 가녘 한 자리에 객을 부르려는 커다란 집채가 들어서고 있다. 머잖아 전광이 번뜩이고, 차들이 들판을 번질나게 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바람을 어이하랴. 그 손길 그리 뻗쳐 와도 저 들녘은 ‘순박한 사람들’이 몸 묻고 사는 한촌으로 마냥 남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사람살이를 무위로 새겨나갈 수가 있을까. 고갱은 어디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2017.1.22.) *dilettante : 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