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우헌수필

그렇게 한촌을 살고 싶다

이청산 2017. 1. 30. 14:10

그렇게 한촌을 살고 싶다

 

해가 바뀌었다내 한촌 생활도 어느덧 예닐곱 해를 지내오면서 새삼스레 이 궁벽한 한촌을 사는 까닭을 돌아볼 때가 있다.

그리운 사람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면그래서 그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문학이며 예술에 관한 담론도 함께하려면 이따금 지난날의 대처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바에야 왜 이곳에 사느냐?’아내가 가끔씩 볼멘소리를 하지만이곳을 살아가면서 차를 타고 달려 나가 그리운 사람들 만나고 싶어 하는 생각과 마음은 마냥 어쩔 수 없다.

풀꽃이 있고 강물이 보이는 아침 강둑길이며노을빛 아늑한 숲속 해거름 산길을 어찌 마달 수가 있단 말인가그립고 정다운 사람들을 어찌 멀찌가니 두고 볼 수만 있단 말인가.

섬이며 궁촌을 마다 않고 몇 해마다 한 번씩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오던 한 생애를 마감해야 했다서먹한 이웃들이 사는 도회의 층층 커다란 집 그 한 자리 속으로 돌아가야 했다.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새소리는 요란한 기계음에 묻혀가고들길 산길은 포도(鋪道)의 어지러운 차선과 바꾸어야 하는 도회지의 생활에 쉽사리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산과 물이 그리워지고 바람소리 새소리에 젖고 싶어질 것 같았다문화와 인공의 편리야 모를까만자연과 무위의 자유가 더욱 포근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 없었다.

한 생애의 마감 날을 앞두고 모든 상념을 다 받쳐 내린 결단은 몇 해 전에 봇짐살이로 이태를 살았던강과 산이 있는 한촌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 때의 강과 산이 살가운 기억으로 떠오르곤 했다마침내 결행을 했다도회로 돌아가야 할 짐차를 돌려 조금은 궁벽하다 할 이 한촌으로 내쳐 왔다그리고 지금 살고 있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고갱(Eugène Henry Paul Gauguin, 1848~1903)이 돌아보인다파리에서 태어난 고갱은 갖은 간난을 헤치면서 증권 중개인으로 성공적인 삶을 구가하기도 했지만그림에 몰두하게 되면서 질식할 것 같은 도시 문명을 떠나기로 한다.

자연의 순수를 찾아 프랑스의 서부 해안과 남부로 가서 작품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는 원시 문명을 간직하고 있는 남태평양의 한가운데 섬 타이티에 이르게 된다.

타히티로 가는 까닭을 이 목가적인 섬과 원초적이며 순박한 사람들에게 매료당했기 때문이다고향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라고 했다.

고갱은 자연과 자유를 찾아 온 타이티에서 60여 점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남기게 되는데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 <우리는 어디서 왔고누구이며어디로 가고 있는가?>도 여기서 남기게 된다삶에 대한 자신의 심오한 철학을 담은 대작이다.

나는 지금 이 한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동창으로는 들판과 강둑이 보이고 남창으로는 숲정이가 보이는 곳에서 어쭙잖은 글줄이나마 쓰고 있는 내 삶을 다시 돌아본다.

내 범소하기 짝이 없는 삶을 두고 예술혼을 활화산같이 태운 고갱 같은 이에게 어찌 견줄 수가 있을까만그러나 나는 무엇을 꼭 이루어야겠다는 관념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싶다.

쓰고 싶으니 쓰고쓰는 것이 즐거워서 쓸 뿐이다자연을 찾아와 자연 속을 살고 있는 것처럼사는 것도 쓰는 것도 자연에 맡길 뿐이다자연은 곧 무위요자유(自由)자유(自遊)라 하지 않았던가.

내 글은 삶의 깊은 철학도불타오르는 예술혼도 담고 있지 못하지만,도회의 번잡 속을 헤매고 있었다면 지금 같은 삶이나마 여밀 수 있을까.이런 나를 두고 호사가’[dilettante]*라 해도 좋고혹은 주변인’(周邊人)인이라 해도 하릴없는 일이다.

자연이 좋아 자연 속을 산다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못 잊어 몇 번씩이나 차를 갈아타면서까지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가는 걸 보면어쩌면 나는 청산(靑山)과 시가(市街사이를 서성이는 주변인일지도 모른다.

강의 맑은 물과 길섶의 풀꽃이 좋아 강둑을 걷고잎새 속의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아 산을 오르면서 자연에 침잠하듯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달려가 만나는 것 또한 자연이 아니랴그 풀꽃이며 산바람이 좋아 글을 쓰고정다운 이를 사랑하여 글이 쓰고 싶어진다면 이 또한 무위의 자유가 아니랴.

그렇게 나는 자연을 살고 싶고 무위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나도 땅 위의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살이의 희로애락에 어찌 무심할 수 있을까만,그러한 것조차도 무위로 맞아들이고 싶다그렇게 이 한촌을 살고 싶다.

어찌하였거나 한촌은 내 삶의 아늑한 배경이다아니바로 그 아늑한 삶이다반짝이는 윤슬을 싣고 갈숲 사이로 맑게 흐르는 강물을 가슴에 담고숲 사이 청량한 바람에 몸과 마음을 씻는 것만으로도 한촌의 삶이란 편안하고도 포근하지 않은가.

그 아늑함에 세상살이의 사악이 어찌 끼어들 수 있으랴그 물이며 숲과 사는 사람들은 오직 자연으로 살고 있다그 물과 숲이 건사해내는 들녘에 몸을 묻으며 순박하게 산다고갱의 순박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이 한촌에 모든 것을 묻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할까지금 이 한촌에도 전에 없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풀꽃 길은 회반죽으로 덮여가려 하고논들 가녘 한 자리에 객을 부르려는 커다란 집채가 들어서고 있다머잖아 전광이 번뜩이고차들이 들판을 번질나게 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바람을 어이하랴그 손길 그리 뻗쳐 와도 저 들녘은 순박한 사람들이 몸 묻고 사는 한촌으로 마냥 남을 수 있을까이 모든 사람살이를 무위로 새겨나갈 수가 있을까.

고갱은 어디서 왔고누구이며어디로 가고 있는가?(2017.1.22.)

 

*dilettante 예술이나 학문 따위를 직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 삼아 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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