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교훈비를 제막하면서 -여기는 울릉도·35

이청산 2008. 5. 21. 15:07

교훈비를 제막하면서

-여기는 울릉도·35



교훈비를 세우고 제막식을 가졌다. 개교한 지 54년만의 일이다. 학교운영위원, 학생과 선생님 대표들이 참석하여 우람하고 육중한 비석을 덮고 있던 막을 벗겼다. 제막에는 빗돌을 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울릉군청 박진동 씨도 특별 초대 손님으로 참여했다. 막이 벗겨지자 굵직한 획으로 힘차게 쓰여진 '自主, 創造, 德性'이라는 글자가 가슴을 활짝 열 듯 드러났다. 개교 이래 숨어만 있던 교훈이 이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막을 벗긴 사람 사람들이며 제막 광경을 지켜보고 섰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문득 지난 섬 살이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난 해 삼월 섬에 당도하여 아내와 함께 배의 트랩을 내리자 마중을 나와 있던 선생님이 달려와 가방을 받으면서 환영의 박수를 쳤다. 선생님들의 환호 속에 학교로 왔다. 3월3일의 개학식으로부터 나의 두 번째 섬 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움에 가슴 설레어 하기를 몇 해였던가. 섬을 떠난 지 5년 반 만에 돌아와 그리워만 하던 섬과 다시 해후한 기쁨과 반가움 속에 섬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사랑하여 찾아온 섬과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리워했다, 사랑한다고만 하고 있을 것인가. 단 한 가지라도 섬과 학교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 뜻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 생각이 강박 관념으로 내 속에 자리 잡으려 할 무렵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에서 농산어촌 우수고 육성 대상 학교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선생님들과 뜻을 모아 모집에 응모를 하고, 대상 학교로 지정 받기 위하여 백방으로 애를 썼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드디어 '농산어촌 우수고'로 지정을 받게 되고 십 수억에 이르는 거액의 육성 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교는 의욕으로 넘쳐났다. 학교와 섬의 몇 곳에 경축 플래카드를 걸고 지역민들을 모아 '학교 발전 설명회'를 열었다. 우수고로의 육성을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들에게는 힘 드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지만, 낙도 오지의 낙후된 교육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는 기대감이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선생님들을 독려도 하고 이해도 구해 가면서 아이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개교 이래 처음의 일들이 학교에 하나하나씩 일어나고 있었다. 학부모들도 지역민들도 조금씩 놀라 가는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사에는 다마일까. 학교의 그런 변화들을 고운 눈길로만 보지 않는 몇 섬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말하자면 텃세라고나 할까. 내가 섬을 사랑하여 왔다고 하니, 섬에 오래 눌러 살까봐 시샘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자기네들의 입지가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섬과 학교를 살다가면서도 못한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는데 대한 시기의 눈길도 있다고 했다.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차라리 나는 웃었다. 그저 재미와 호사 삼아 하는 말들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한번쯤 스쳐 가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지역 사람들의 입과 펜을 통해 나와 학교를 음해하고 폄훼하기에까지 이르러 갔다. 안타깝고 처연하고 답답했다.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섬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내 섬 사랑이 짝사랑에 빠지고 있는 것 같아 처연했다.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처럼 부풀어진 것이 답답했다.

또한, 그러나 섬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진실한 입과 따뜻한 펜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았다. 학교가 발전해 가고 있는 모습을 크게 칭찬해 주기도 하고, 커다란 활자로 지면을 장식해 주기도 했다. 어떤 신문에서는 학교의 발전상을 특집으로 구성하여 보도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지역민들이 나에게 주는 것이라며 감사패를 들고 왔다. 운동장에 좋은 체련 시설을 많이 설치하여 학생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 증진에도 크게 이바지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다. 학교를 성원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알겠다면서 기꺼이 받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버리듯 진실하고 따뜻한 말들이 악성의 비어들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 따뜻한 말들이 내 섬 사랑을 지켜주기에 힘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 야속한 말들이 내 학교 사랑의 다사로움을 꺼지게 하지는 못했다. 섬과 학교에 대한 사랑을 잉걸불로 타오르게 한,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학교 구성원들의 믿음이었다. 그 고마운 믿음들이 내 섬 살이를 굳세고 따뜻하게 이어지게 했다.

몇 섬사람들의 나와 학교에 대한 음해, 폄훼와는 달리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은 날로 새롭게 변해 갔다. 교실에는 안락하고 쾌적한 생활환경이 조성되고, 최첨단 교수기기가 아이들의 학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도와 줄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은 모두 진학하고, 취업을 원하는 아이들은 모두 취업했다. 50명 졸업생 중에 진학생은 46명이나 되었다. 섬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 대부분은 육지로 나가지 않고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점점 줄어가기만 하던 학생수가 획기적으로 불어나 수년 이래로 가장 많은 재학생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역민과 아이들로부터 학교가 신뢰를 얻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일인 듯했다. 물론 나 혼자 이룬 일은 아니었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뜻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뜻을 그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내 섬 살이의 보람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비를 하나 세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모교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하면서 가슴에 교훈(敎訓)을 담을 수 있는-. 교훈비(校訓碑)를 세우기로 했다. 반세기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학교에 교훈비 하나 없는 것을 아쉬워해 왔다. 바라보면 자부심이 느껴질 수 있는 듬직한 모양의 돌을 구하기에 애를 썼다. 섬의 어느 해변에서 그런 돌을 찾았다. 돌을 학교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인정 많은 섬사람 박진동 씨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상배 국전 서예가로부터 휘호를 받았다. 섬의 유일한 전각가 김유열 씨가 글자를 새겼다. 빗돌 뒤 조그만 오석에 "우리 학교가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2007 농산어촌 우수고'로 지정 받은 것을 기념하여 이 비를 세운다."라고 새기고, 그 아래에 'ㅇㅇㅇㅇ학교장'하고 내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새기는 일이 망설여졌다. 자칫하면 비박한 유명(留名) 행위로 치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물이나 시설물에 공사 책임자의 실명을 새겨 놓듯, 내가 한 일에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로써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개교 54주년을 맞이한 5월의 교정, 하늘도 푸르고 잎새들도 싱그러웠다. 저동항 앞 바다는 거센 파도가 방파제를 뛰어넘어 몰아치던 며칠 전과는 달리 오늘은 마치 커다란 거울인 듯 잔잔했다. 막을 벗고 우뚝 선 교훈비 앞에 사람들이 나란히 섰다. 모두 학교의 발전한 모습을 축하하고, 더욱 발전해 가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다. 교훈비는 그 기념비가 되었다. 발전된 학교의 모습을 상징하면서 앞으로의 무궁한 발전을 기약하는 빗돌이 되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 아이들은 섬에서도 얼마든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할 수 있고, 선생님들에게도 섬 살이의 보람이 넘쳐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따뜻하고 힘찬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고깃배들이 늘어선 항구를 지나 넓고 푸른 바다 멀리 멀리로 퍼져 나갔다.♣(2008.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