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울릉도

섬·산나물 -여기는 울릉도·34

이청산 2008. 5. 8. 16:46

섬·산나물

-여기는 울릉도·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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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엔 아직도 희끗한 눈 자취가 보이고 잦아지는 겨울 찬 기운이 옷 속을 파고들던 사월의 중순 어느 날, 나리분지에서는 ‘제2회 울릉도산나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지역 기관장, 지역민들이며 관광객들이 개막식장을 메운 가운데 무대에서는 나리마을 이장의 개막 선언에 이어 군수, 군의회 의장의 인사, 축사가 진행되었다. 울릉도 특산의 산채는 섬의 자랑이자 섬 경제의 버팀목이라며 이 축제를 계기로 섬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윤택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서 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마술사가 나와 매직 쇼를 진행하면서 축제는 열기를 더해 갔다.

산나물 채취 체험, 산나물 시식회, 산나물 요리 경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끈 것은 개막식 직후에 무대 앞에서 행해진 산나물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행사였다. 10미터는 족히 됨직한 통나무의 속을 파내어 구유처럼 만든 용기에 삼나물, 취나물, 고비, 부지깽이, 더덕, 명이 등 십여 가지의 나물과 고추장에 밥을 넣고 수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주걱으로 함께 비비는 것이다. 풋풋하고도 고소한 나물의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주관자의 신호에 일제히 커다란 주걱을 들고 비비기 시작한다. 검고 누르고 푸른색의 갖은 나물과 고추장 붉은 빛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빛깔 곱게 비벼진 밥은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절로 불러 올 것 같았다. 나누어진 그릇에 퍼 담아 식장의 의자에 앉아 혹은 선 채 그대로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지체가 높은 사람도 남의 시선 같은 것은 전혀 아랑곳할 필요가 없는 순간이었다. 축제는 참여자의 건강과 재미를 도와줄 건강걷기대회며 노래자랑이며 보물찾기 등의 부대 행사와 함께 2백5십만 년 전의 화산 분화구(caldera) 나리분지에서 이틀간에 걸쳐 펼쳐지면서 관광객들에게는 섬 여행 재미에 젖게 하고, 섬사람들에게는 고적하고 고단한 섬 살이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는 시간들이 되게 했다. 위로 받을 때도 있는 섬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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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미와 위로감에 젖어가던 축제의 이튿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느 산비탈에서 산나물을 뜯던 한 아낙네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일행의 신고로 119안전센터 직원들이 출동해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숨졌다는 것이다. 나물 뜯던 아낙네가 생사를 가르고 있을 순간에 축제장에서는 노래자랑과 축하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올해 갓 쉰에 든다는 그 아낙네는 산나물 채취를 생업으로 삼다시피 하고 있는 사람이라 했다. 나물을 뜯다가 실족사하는 일은 이번만도 아니고 올해만도 아니다. 올봄 들어서도 벌써 목숨을 잃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한다.

섬의 농사는 전부가 나물 농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모든 밭에다 부지깽이나물이며 취나물 삼나물 들을 재배하고 있다. 섬이 원래 바다 가운데 떠 있는 하나의 산이라서 평지가 아주 귀한 탓에 밭이란 밭은 모두 가파른 비탈을 일군 것이다. 요즈음은 기계가 좋아 모노레일을 이용하여 농사도 짓고 수확물을 운반도 하지만, 그런 장치가 없으면 비탈에 겨우 몸을 붙여 심고 가꾸어야 한다. 딛고 있는 발이 곧장 미끄러질 것만 같은 가풀막 산밭에서 일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가파른 비탈에서 야생의 나물을 뜯는 일이랴!

섬의 농사꾼들에게는 나물 재배만이 생업이 아니라 채취도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봄 한철에 나물을 채취하여 웬만한 재배농보다 더 많은 수입을 얻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섬사람들이 즐겨 뜯고 많이 나는 산나물들은 여러 가지가 있는 중에서도 명이, 취나물, 부지깽이가 대종을 이룬다. 그런데 이들 나물은 주로 고지대의 서늘한 곳에 많이 나고 자란다. 이들을 채취하기 위해서는 고산 원행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동네를 지나 낮은 비탈을 오르다가 보면 점점 가팔라지는 산허리에 드문드문 취나물이며 명이가 보이기 시작하다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루턱쯤에 오르면 비로소 무리를 지우고 있는 파릇파릇 둥글넓적한 명이 잎사귀가 보인다. 좀더 오르면 잎이 피기 전의 대궁만 굵은 명이도 보인다. 이런 명이를 섬사람들은 ‘뿔명이’라 하는데 잎명이보다 더 향긋하고 쓰임새도 많고, 값도 많이 나간다.

그런 명이를 따러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보면 경사가 완만하여 손닿기 좋은 곳에 있는 것은 이미 나물꾼의 손이 거쳐 갔기 십상이다. 쉬운 자리에 있는 모양도 좋은 것을 그냥 둘 리가 없다. 어쩌다 그런 곳을 발견하면 그야말로 횡재다. 먼 산을 찾아준 길손을 맞아 손을 흔들 듯 나풀거리고 있는 비탈의 명이 잎사귀를 보노라면, 마음도 손도 그 잎사귀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섬의 산이란 모두가 가파른 비탈이라 웬만한 비탈쯤이야 겁을 내서는 안 된다. 나물 줄기를 잡고 아슬아슬 바윗돌을 디디며 손을 뻗쳐 명이 잎을 딴다. 그 아슬한 곳에 때깔 좋고 향기로운 뿔명이도 있기 마련이다. 어렵게 팔을 뻗어 그 탐스런 줄기도 따고 잎도 따려는데, 억! 발을 지탱해 주고 있던 바윗돌의 뿌리가 뽑히면서 중심을 잃은 몸이 아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버린다. 이틀째의 축제가 열리고 있던 날, 목숨을 잃은 그 나물 아낙네도 그렇게 해서 명이가 뿌리박고 있는 섬의 흙 속으로 돌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섬사람들은 바다에서도 산에서도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한다. 목숨을 건 대가로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 참 고단한 섬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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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아내와 나물 행각에 나섰다. 어디를 가면 험하지 않게 나물을 딸 수 있을까. 우리의 나물 행각이야 섬 살이의 재미로 하는 일이다. 좀 따서 반찬거리로 식탁에 올릴 수 있으면 좋고, 좀 낫게 따서 뭍에 있는 형네, 동생네에게 부쳐 섬의 향기와 맛을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다.

지난 섬 살이 때 정들포에서 내수전 쪽으로 오는 산길 길섶 비탈에 명이를 많이 본 기억이 났다. 내수전 마루에 올라 바다와 산의 풍치도 즐기면서 한 시간 남짓 걸어 정들포에 이르면 좋을 일이건만, 걷기에 자신을 내지 못하는 아내를 생각해 차를 몰아 섬의 서쪽을 돌아 태하를 지나고 현포령을 넘어 천부를 거쳐 정들포로 갔다. 요즈음은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정들포 마루까지 찻길이 잘 뚫려 있다. 찻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우고 내수전 쪽으로 걸으며 명이를 찾아갔다.

왼쪽 옆구리에 걸린 푸른 바다와 죽도를 곁눈질하며 걸어 나가니 오른 쪽 벼랑으로 명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몇 잎을 땄지만, 지난날 그 모습이 아니다. 비탈을 온통 덮을 정도로 많이 보이던 것이 지금은 듬성듬성 무리 지어 몇 뿌리씩 서 있을 뿐이다. 이미 많이 따 간 탓인지, 아니면 개체수가 줄어든 탓인지 전보다 현저히 적어 보였다. 변해 가는 섬의 인심 따라 섬의 나물도 줄어들고 있는 것인가. 봄도 중허리를 넘어선 무렵이라 줄기 부분은 세어져 먹거리로 쓸 수가 없기에 보드라운 잎만 땄다. 취나물도 간간이 보였다. 가는 봄을 따 담듯 한 잎 한 잎 따며, 나는 향기로운 밥상을 생각하는데 아내는 서울 아이들이며, 대구 언니네를 생각한다.

한 뿌리의 것을 온통 다 따면 뿌리조차 기운을 잃고 죽어버릴 것 같아 한두 잎은 남기며 땄다. 한 잎을 따기 위해 미끄러지기를 몇 번이나 거듭하며 몇 잎씩 따 나갔다. 먹을 때는 한 입에 몇 잎씩 먹을 것을 이리 힘들게 한 잎씩 따고 있느냐며, 먹고 생기는 힘보다 따면서 쓰는 힘이 더 들겠다며, 아내와 마주 보며 웃기도 했다. 그렇지만 산 좋고 숲 좋은 경치 속에서 좋은 공기 마시며 운동 삼아 따고 있는 일이 몸에도 마음에도 좋은 일 아니겠느냐며 아내와 다시 웃었다.

비탈 벼랑에 올라 명이를 따면서 길 아래 바다 쪽으로 흘러내린 비탈을 내려다보니 무리를 이루고 피어 있는 명이가 보였다. 저 정도의 비탈이면 가서 따면 되리라 짐작하며 길 아래로 내려갔다. 가파른 비탈이었지만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바람에 나풀거리고 있는 명이 잎을 따서 주머니에 차곡차곡 담았다. 주머니의 배가 잠시간에 불러오는 듯했다. 조금만 더 따면 배낭 하나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낭을 채우면 서울 아이들에게도 맛을 보여 줄 수가 있으리라며 힘들여 따 나갔다.

가풀막을 가로질러 어렵게 발을 옮겨가며 이파리를 따고 있는데, 우지직! 밟고 있던 썩은 나무뿌리가 부러져 내리면서 한쪽 발이 아래쪽으로 죽 미끄러진다. 미끄러지는 발에 밀려 비탈에 박혀 있던 커다란 돌덩이가 쿠당탕! 비탈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순간 아내 생각이 번쩍 났다. 외쳐 부르니 멀찍이서 소리가 들려왔다. 내 아래쪽에 아내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은 것이며, 아내가 나의 아래쪽에 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내를 다시 불렀다. 이만큼 따도 되었으니 이제 그만 가자고 했다.

욕심이 눈을 가리고 마음을 덮어 나물만을 따라 가파른 비탈에 또 서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지난 날 감동스러웠던 기억을 찾아 다시 온 지금의 섬 살이가 그 때 그 모습, 그 인심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 아프게 살고 있으면서 몸마저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처연한 일이 될 것인가.

나물 배낭을 메고 돌아오는 산길을 걸으며 아내와 나는 생각했다.

욕심 없는 섬 살이가 되게 해야 할 것이라고-.

환상과 미몽에 젖지 않는 섬 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2008.4.26)

-여기 는 울릉도·34